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간절히 바란다면 더더욱

by 이영훈

지난주에 쓰던 글이 따로 있었다. 가만히 읽고 있노라면 힘이 주욱주욱 빠지게 되는 좌절감과 실패에 대한 글이었는데, 나조차도 쓰던 중간에 너무 우울해져서 그만뒀던 것 같다. 아니 사실은 이후에 찾아올지도 모르는 성공과 행운을 내심 바라고는 있어서, 내 실패에 대해 인정하는 글을 쓰면 그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잘라버리게 될까봐 그랬다. 그 덕분인지 어제까지만해도 진행형이었던 하나의 실패담이 오늘에서야 성공담이 되어 전혀 다른 글을 쓰게 되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석사생에게 있어서 수업 조교를 한다는 건 학비도 해결하고 경력도 쌓고 영어실력도 향상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 중 하나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학과에서 수업 조교를 모집하는 공고가 대량으로 올라왔길래 급하게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다듬어 한 열 개 정도의 수업에 지원서를 냈다. 처음엔 내 전공이랑 관련 있는 수업 두세 과목에만 지원하려고 했는데, 이게 하나 둘씩 지원서를 내다 보니 더욱 간절해지더라. 그래서 결국 있는 말 없는 말 지어내며 꾸역꾸역 지원서를 늘려갔다.


지난주에 쓰던 그 글은 수업 조교에 대한 것이었다. 열 중에 여덟이 탈락이었다. 나머지 둘은 무소식이었지만 처음부터 바라지도 않던 자리였다. 어느새부턴가 간절히 바라는 일이 있어도 누군갈 향해 기도하거나 하는 일이 없이 그냥 덤덤해졌다. 점점 바라는 건 많아지는데 그때마다 공들인 기도가 죄다 허사로 돌아가면 괜히 애꿎은 누군가만 탓하게 되니 그냥 덤덤해질 수 밖에.


그러던 차에 무소식이었던 둘 중 하나로부터 합격 소식이 날라온것이다. 합격 메일을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았는지 모른다. 꿈은 반대라던데 어쩐지 지난 밤 꿈자리가 사납더라니. 어쩐지 오늘 아침 시리얼과 우유가 양이 딱 맞더라니. 어쩐지 오늘 길이 안 막히더라니. 별 말도 안되는 일들을 갖다 붙이면서 갑작스레 찾아 온 행복을 정당화하기에 바빴다. 아무리 갖다 붙여도 부족한 느낌이 들어 룸메에게 소고기를 사줬다. 어느 정도 값을 지불하지 않으면 오늘의 성취와 행복을 댓가로 언제라도 나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박주영 세레모니 자세를 한 채로 허공에 고맙다는 말만 연신 내뱉었다. 그냥 미친놈의 혼잣말 같아 보이지만 나름 그 순간에 홀리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기도라고 하고싶다. 뭔가를 바랄 때가 아니라 뭔가가 이뤄졌을 때 기도 같은 걸 하게 된 건 꽤나 큰 변화인 것 같다. 간절함이 다시 삶의 원동력으로 쓰일 때가 오면 이것도 금세 바뀌겠지만, 당분간은 이런 수동적인 기도를 할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욕심을 비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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