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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경심 Mar 24. 2021

어느 날, 공황이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시댁에서 분가한 뒤 새로운 동네,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기도 전에 나에게 또 다른 위기가 닥쳤다. 몸이 천근만근인 상태인 채로 주말 벅찬 스케줄까지 마친 날이었다.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얼마나 지났을까. 옆에 누워 있던 신랑이 뒤척이다 나를 살짝 건드렸던 것 같다. 순간 눈이 번쩍 뜨이더니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마치 이제 막 백 미터 달리기를 마친 사람처럼! 무시무시한 공포가 순식간에 나의 온몸을 감싸 안았다. 온 세상을 집어삼킬 것만 같은 검은색 안개가 나를 깊은 곳 어딘가로 끌고 들어갔다. 침대에 등이 닿는 느낌이 사라지고 나는 한없이 아래로 아래로 한줄기 빛도 없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가 만약 여기서 정신을 놓는다면 나라는 존재는 없어지고 전혀 다른 자아가 나를 차지할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극도의 공포로 몰아넣었다. 심장은 계속해서 두 방망이질 쳤다. 손이 덜덜덜 떨렸다. 경련이 온몸으로 퍼져 발작을 일으킬 것만 같았다.

  ‘일어나야 해. 이렇게 그냥 있다가는 나는 미치고 말 거야. 내 의식은 사라지고 말 거야.’

 나는 온 의지를 다해 거실로 나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가운데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것만 같아 아이가 잘 자고 있나 확인했다. 아이의 무사함을 확인하고도 성난 심장은 진정할 생각이 없었다. 숨이 가빠졌다. 내 머릿속에 아주 미세하게 남은 이성이 지난 여행 때 비행 공포증으로 처방받아 놓은 신경안정제를 생각해 냈다. 떨리는 손으로 약을 입에 털어 넣고 소파에 웅크리고 누웠다. 숨이 가빠 심호흡을 했다. 초여름인데도 불구하고 한기가 느껴져 담요를 덮었다. 이따금씩 허벅지에서 경련이 일어났다. 심장은 이후 이십 분가량 미친 듯이 뛰더니 서서히 가라앉았다.  

 ‘하... 나는 대체 어디를 다녀온 걸까?’     


 공황발작이 오기 몇 주 전부터 소화가 잘 안 되더니  위경련이 수차례 있었다. 자다가 누가 내 뱃속에 손을 넣어 내장을 뒤트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져 깼었다. 그런데 그 고통의 시간 이십여분을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쩡했다. 내과에서는 별다른 이야기도 없이 약만 처방해주었다.  음식을 제대로 못 먹어 몸무게가 순식간에 오 킬로 그램이나 빠졌다. 그러다 공황발작이 일어난 것이다. 그 길로 한의원에 가서 기력을 보충해주는 한약을 지어왔다. 속이 계속해서 안 좋아 내과에서 위내시경도 찍었다. 심전도도 찍었다. 아무 이상 없었다. 영양제를 맞았다. 아무 효과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의 시간을 보내고 주말이었다. 신랑과 아이가 산책을 나가고 집에 나 혼자 남아 있을 때였다. 나는 급하게 눈으로 핸드폰을 찾았다. 내가 혼자 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얼른 119에 전화를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러나 핸드폰을 가지러 가기도 전에 나는 쓰러졌다. 거실 바닥으로 몸이 붙어 녹아버리는 것 같았다. 심장은 다시 미친 듯이 뛰었다.

 ‘빨리 전화를 걸어야 해. 이러다 심장마비가 와서 죽을지도 몰라.’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마치 중력이 세 배는 높아진 행성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핸드폰이 있는 곳으로 손을 뻗어 보려 했지만 손가락 하나 들기에도 엄청난 괴력이 필요했다. 결국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십여분이 지나자 미친 듯이 뛰던 심장은 제 속도를 찾았고, 중력은 다른 행성이 아닌 지구의 중력으로 돌아왔다.      


  내가 공황발작을 일으킨 당시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 써 보려 노력했다. 그러나 어떤 노력을 해도 그때의 공포를 그대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공황은 그야말로 극도의 공포, 죽음 그 자체였다. 사실 그때 이것이 공황발작이라는 걸 확신하지 못했다. 아니 인정하기 싫었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정신병자가 되었다는 걸 인정하는 것 같아서. (물론 훗날 공황장애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병이란 걸 알았지만.) 직장에서의 스트레스와 과도한 업무, 정기 모임에서 1년에 한 번 있는 1박 2일 여행 도중 한숨도 못 잔 일. 이런 것들 때문에 잠시 몸이 반응했다고 생각했다. 그저 기력이 너무 떨어져서 그랬을 거라고.      


  공황 발작은 지금 내 앞에 호랑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호랑이가 나타난 것처럼 몸이 반응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산에서 호랑이를 만난다면 몸은 살기 위해 이런저런 반응을 일으킨다. 일단 빨리 도망가야 하기 때문에 몸의 큰 근육들로 혈액을 보낸다. 그래서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폐는 산소를 빨리 공급한다. 한편 살아남는데 상대적으로 필요 없는 손끝과 발끝에는 혈액을 많이 보내지 않는다. 이러한 반응들의 결과로 공황발작이 오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숨이 가빠지고, 손발이 저리는 등의 신체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렇게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사람이 살기 위해 반응하는 것은 자율신경계의 작용으로 일어난다.     


 자율신경계는 호흡, 체온, 소화, 맥박, 혈압 등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말초신경계를 말한다. 자율신경계에는 교감신경과 부교감 신경이 있는데 공황 발작 시에 일어나는 신체 증상은 교감신경의 흥분으로 일어난다. 교감신경이 흥분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부교감 신경이 작용하여 심장박동은 다시 안정을 취하고 호흡도 가라앉는다. 체온이 올라가면 열을 식히기 위해 땀이 나고 추우면 몸이 떨리는 것처럼 우리 몸은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항상성이 있기 때문이다.      


 극도의 공포로 죽을 것 같은 공황 발작 증세는 정상적인 생체리듬을 찾으려는 우리 몸의 항상성으로 인해 언제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이것은 불확실한 것이 아니라 확실하고 구체적인 사실이다.


 사람은 불확실성에서 가장 불안을 많이 느낀다고 한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이러한 인간의 불안을 공포영화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우리가 공포영화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귀신 혹은 괴물이 언제 어디서 등장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공포영화에서 귀신이나 괴물이 등장하기 전 카운트다운으로 알려준다면 공포영화는 전혀 무섭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무서운 귀신이나 괴물이 등장하는 때를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확실하고 구체적인 것에서 안심을 한다고 한다.


 언젠가 TV 드라마에서 일식의 원리를 알지 못하던 시대 사람들이 태양이 달에 가려지자 세상이 없어질 것처럼 불안해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지금은 일식이 일어나도 불안해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모두 그 원리를 알기 때문이다. 공황도 마찬가지다. 공황발작이 왜, 어떻게 일어나고, 내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나면 막연했던 공포가 구체적으로 바뀐다.      


  공황은 나에게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르는 엄청난 불확실성으로 극도의 불안을 안겨주었다. 가장 두려웠던 것은 공황발작으로 인해 미치거나 혹은 심장마비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그러나 그럴 확률은 공황장애를 겪지 않은 사람과 같다고 한다. 즉 공황발작으로 인해 미치거나 죽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발작이 일어나는 동안에는 그야말로 공황상태이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안정상태가 온다. 그것을 인지하고 있는 건 공황장애 환자에게 굉장히 중요하다.      

 내가 공황장애라는 공포에서 한발 짝 걸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공황장애의 원리를 이해하고 나서부터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황장애를 이겨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이론을 몸으로 터득하는 데에는 언제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알고 보면 공황발작도 내 몸을 보호하려는 생리적 현상들이라는 걸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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