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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경심 Apr 07. 2021

내가 직장 상사에게 상처 받은 이유

     

 공황장애를 앓게 되기까지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작용했지만 그중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은 직장상사에게 받은 상처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뭐랄까. 대화를 나누다 보면 대화의 폭이 참 좁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었다. 뉴스도 안 봤고, 영화도 안 봤고, 여행도 안 다녔고, 책도 안 읽었다. 아이들 성적, 저녁 반찬 이야기들, 본인의 집값이 얼마나 올랐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대화 주제의 대부분이었다. 그녀는 자주 검색창에 자신의 집값을 확인했다.


 어느 날 내가 독서 토론회를 간다고 했을 때 그녀는 놀란 토끼눈을 하며 말했다.

 “생각할 게 얼마나 많은데 그런 걸 해요?”

그녀는 순식간에 나를  쓸데없는 짓을 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또 어느 날 그녀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내가 착각하고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지켜보고 있다가 말했다.

 “그러니까 신중해야 해요.”

 그녀는 순식간에 나를 경솔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내가 즐거웠던 이야기를 하면 그녀는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하며 시무룩해졌다. 그녀 앞에서 내가 즐거웠던 이야기나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점점 꺼려졌다. 나는 자주 나의 부정적인 이야기만 하게 되었다. 그럴수록 그녀는 기분이 좋아졌고 나는 피폐해져 갔다.

 그녀는 또 말을 뱅뱅 돌려했다.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그냥 이야기하면 좋을 텐데 계속해서 내 입에서 자기가 원하는 말이 나오도록 유도했다. 그게 정말 사람의 피를 말렸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면 대답을 회피했다. 결국 내입으로 그 말이 나오게 한 뒤 그 일이 잘 되면 좋고 안 되면 내 탓이 되었다. 어떤 일을 자기가 원하는 데로 바꾸고 싶지만 자기가 책임은 지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나의 개인적인 일들에 대한 질문도 많이 했다. 나는 그것이 나의 치부일지언정 바보처럼 다 대답해주었다. 질문에 답을 하고 나서 내가 같은 질문을 하면 그녀는 대답해 주지 않고 그저 웃음으로 때웠다. 자신은 어떤 편린의 치부도 내보이지 않을 거지만 너는 너의 모든 것을 나에게 말해줬으면 하는 못된 심보였다. 그래야 본인이 나의 이야기를 듣고 위로받고 기분이 좋아지는 거니까.

 그녀와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상처투성이가 되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하고 싶은 말이 불쑥불쑥 올라올 때마다 꾹 참고 입을 닫았다. 사적인 대화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위경련이 왔고, 얼마 뒤 공황장애까지 왔다. 당시 개인적으로 안 좋은 상황들과 맞물려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스트레스의 지수가 폭발하자 몸이 반응했던 것이다. 약물치료와 갖은 노력 끝에 공황장애라는 지옥에서 조금은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1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가 있었다.      


 그렇게 1년 뒤, 그녀와 함께 일했던 당시를 돌아보니 내가 참 어리석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리고 입을 닫고 지내며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 나를 보며 나라는 사람은 사람과 대화하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명심보감의 치가 부문에 북송 대학자 사마광의 이야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봉인차설삼분화(逢人且說三分話) 미가전포일편심(未可全抛一片心)

불파호생삼개구(不怕虎生三個口) 지공인정양양심(只恐人情兩樣心)     

 사람을 만날 때는 장차 말을 10분의 3만 말하고 진짜 속마음을 전부 털어놓아서는 안 된다. 호랑이 세 마리의 입을 두려워 말고 오직 사람의 두 개의 모습을 가진 마음을 두려워하라.      


  다른 사람이 나의 생각처럼 나를 대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옛날이나 지금이나 말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같았다. 사마광의 이 구절을 보고 나는 그야말로 순수한 마음으로 말을 했지만 상대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주었다.


 나는 늘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할 말과 못 할 말의 구분을 하지 못했다. 누구에게나 나의 속마음을 쉽게 털어놓았다. 10분의 3이 아니라 10 전부를 말했다. 그게 나의 패턴이었다. 내가 직장 상사에게 상처 받은 것은 아무에게나 내 마음을 털어놓은 죄, 말을 섞지 않아야 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 죄로 인한 것이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나름 자신의 습관을 패턴화 시킨다. 의식적으로 그러는 게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패턴이 생긴다. 만약 그 패턴이 잘못된 패턴이라면 어떤 특정한 환경이나 상황, 사람을 만났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그간 내가 가진 패턴대로 지내오면서 인간관계로 상처 받거나 문제 되는 일이 완전히 없진 않았지만 이번만큼 큰 상처를 받기는 처음이었다. 나의 패턴은 잘못된 패턴이었기에 특정한 사람을 만나고 큰 문제로 나타난 것이었다. 내가 이번에도 나의 잘못된 패턴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아마도 다음에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다.

 

 직장에서 어떤 문제가 생겨 다른 직장으로 옮겼는데 비슷한 문제가 또 생길 때, 친구관계나 연인 관계에서 비슷한 문제로 다투고 이별을 고할 때, 우리는 운이 없다든지, 삼재라든지 하는 생각을 할 게 아니라 나에게 어떤 패턴이 있는지 인지해야 한다. 어쩌면 상대가 정말 못 되고 이상하고 또라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에게 나의 잘못된 패턴대로 대하면 결국 상처 받는 건 나이다. 나처럼 말을 너무 많이 하는 타입이라면 사람을 봐가면서 말 수도 줄일 줄 알아야 한다. 어떤 부탁을 거절하기 힘든 사람이라면 이번엔 정중히 거절하기를 배워야 한다. 나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에게 아무 말도 못 한다면 이제는 받아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어떤 패턴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것을 인지하고 인식하자. 그래야 나의 패턴을 깨부수고 상처 받지 않는 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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