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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경심 Apr 03. 2021

송두리째 날아간 일상

      

왜 모두 기뻐하지 않을까

당연하다는 사실들

아버지가 계시고 어머니가 계시다

손이 둘이고 다리가 둘

가고 싶은 곳을 자기 발로 가고

손을 뻗어 무엇이든 잡을 수 있다

소리가 들린다

목소리가 나온다

그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아무도 당연한 사실들을 기뻐하지 않아

당연한 걸 하며 웃어버린다

세 끼를 먹는다

밤이 되면 편히 잠들 수 있고 그래서 아침이 오고

바람을 실컷 들이마실 수 있고

웃다가 울다가 고함치다가 뛰어다니다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두가 당연한 일

그렇게 멋진 걸 아무도 기뻐할 줄 모른다

고마움을 아는 이는 그것을 잃어버린 사람들뿐

왜 그렇지 당연한 일     


 위 글은 일본의 의사 이무라 가즈키오가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의 죽음을 응시하며 쓴 글 중 하나이다. 이 글을 읽을 때마다 내가 일하면서 만난 어느 환자분이 떠오른다. 그분은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모두 절단할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한 분이었다. 대게 이런 분들은 침대에 누워 꼼작 못하고 대소변을 받아내면서 수개월을 보낸다. 그러다 휠체어를 탈 정도로 회복되면 내가 근무하고 있는 물리치료실에 치료를 받으러 온다. 이들은 많은 환자들로 북적대는 3차 병원에서 어느 정도 치료가 끝나고 나면 개인 의원에 장기 입원 치료를 받으며 3차 병원에 수시로 진료를 보러 간다.

 하루는 앰뷸런스를 타고 3차 병원에 진료를 보고 온 그 환자분이 싱글벙글 웃으며 물리치료실에 왔다. 어찌나 행복한 표정을 짓던지 궁금해서 무슨 좋은 일이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환자분이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 진료 보고 오는 길에 505호 사람들이랑 남한산성에 들렀다 왔어요. 처음 외출하는 거예요. 처음. 육 개월 만에. 허허허.”

 병원 생활 육 개월 만에 첫 외출이라니. 매일 보는 환자로써만 생각했지 이 분이 외출을 언제 했었는지 따위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놀라움을 뒤로하고 환자분께 나가서 맛있는 것도 좀 드셨냐고 물었다. 환자분은 조금 민망해하며 말했다.

 “아뇨, 시간이 없어서 국수 한 사발씩 먹고 왔어요.”

 그러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원래 환자들이 이렇게 외출하면 안돼요. 이거 비밀로 해줘야 돼.”

 그 말을 마친 환자분은 이내 세상을 다 얻은 양 싱글벙글 웃으며 자리를 떴다.     


 그 환자분처럼 큰 사고가 난 건 아니지만 나에게도 일상이 송두리째 날아간 적이 있다. 열흘 동안 다섯 번의 공황발작을 겪은 뒤부터였다. 다섯 번째 공황발작은 근무 중에 일어났다. 안 그래도 공황 발작으로 며칠 결근한 상태였기에 결국 그날로 퇴사했다. 이후 나의 체력은 바닥이 나버렸다. 마치 신생아가 된 것처럼 낮에도 자고 밤에도 잤다. 이러다 정말 폐인이 되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기운을 내어 동네 한 바퀴를 도는데 십 분도 안 되어 힘이 다 빠져버렸다. 가까스로 집에 도착해 초주검이 되었다. 이십 분을 걷고 네 시간 동안 일어나지를 못했다. 나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만 같았다. 직장에서 앞으로 쓸 일 년치의 체력을 미리 끌어다 쓴 건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기운이 없을 수가 있을까. 약물 치료로 공황발작은 잦아들었지만 쉽게 회복되지 않는 체력으로 인해 아이와 놀아주지도 잘 챙겨주지도 못했다. 미안한 마음에 울적한 기분과 무기력함으로 힘겨운 날들을 보냈다.


 다행히 체력은 차츰차츰 좋아져 한 달 만에 처음으로 낮잠을 자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집에서 차를 타고 이십 분 거리에 있는 수영장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일이었다. 아이가 수영을 하는 동안 기다리는 것조차 힘이 달렸다. 의자에 기대어 앉아 아이를 기다리는데 옆에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는 엄마들이 눈에 들어왔다.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이따금씩 한꺼번에 터지는 엄마들의 웃음소리가 나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지극히 일상적인 상황인데도 그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아이를 수영장에 데려오고 데려가는 일을 겨우 해내고 있는 내가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이런 생활이 영원히 이어질 것 같아 또 절망했다.      


 체력이 회복되면서 신랑과 함께 마트에 장을 보러 갈 수도 있게 되었다. 장을 다 보고 마트 화장실에 들렀다. 조명이 고장 났는지 어두워 음침한 분위기가 풍겼다. 빈칸으로 성큼성큼 걷는데 바닥 타일이 깨져있었다. 깨진 타일을 밟는 순간 화장실 바닥 전체가 울렁거리는 걸 느꼈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았지만 나는 분명 그렇게 느꼈다. 몇 발자국 더 내딛는데 바닥이 땅으로 꺼져버릴 것 같았다. 결국 화장실 가는 걸 포기했다.     


 나의 지금이 불만족하고, 힘들고 버거울 때 앞서 말한 그 환자분의 행복한 얼굴을 떠올리려 노력했었다. 만약 내가 양쪽 다리를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그 환자분처럼 웃을 수 있었을까? 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하는 환자분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이제는 거기에 더해 나의 지난날을 떠올린다. 공황장애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고 일상을 송두리째 잃어봤다. 이런 경험은 나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달리 갖게 해 주었다.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해 주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사실은 모두 기적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해 주었다. 이무라 가즈 키오가 쓴 것처럼 고마움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잃은 사람뿐이라는 게 실감 났다.

 지금은 코로나 19로 인해 전 세계인 모두가 일상을 잃었다. 내가 공황장애를 극복해 낸 것처럼 언젠간 우리도 다시 일상을 되찾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는 우리 모두가 지난 힘겨운 날들을 생각하며 일상을 좀 더 감사하며 지내면 좋겠다. 기뻐하고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잃어버린 사람들뿐이라지만 한번 잃었다가 되찾은 사람의 기뻐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은 훨씬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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