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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경심 Mar 28. 2021

축하합니다, 당신은 공황장애입니다

공황 증세로 일주일간 호되게 고생한 끝에 결국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내가 겪은 엄청난 공포는 다름 아닌 공황발작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수년 전 읽은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 작가가 굉장히 자세히 묘사해 놓았기 때문이다. 첫 공황발작을 하던 날 그렇게 생각했었다. 아, 파울로 코엘료도 공황장애를 겪었구나.


 00 신경정신과. 익숙한 간판을 보며 기분이 참 씁쓸했다. 다시는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한 달 남짓 우울증 약을 먹고 난 뒤 일 년여만이었다. 간호사에게 이름을 말하고 대기 의자에 앉았다. 나보다 어려 보이는 여성과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남성도 앉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너무나 멀쩡해 보이는 저들은 어떤 문제가 있어서 온 것일까. 신경정신과에 첫 방문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저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나는 이런 곳에 올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이런 마음이 나의 괴로움을 더하는 줄 몰랐다.


 진료실에 들어가 그간 있던 나의 증상들을 이야기했다. 의사 선생님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약을 처방해 주었다. 약은 두 달 정도는 복용해야 한다고 했다.  나 스스로 자율신경계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꼭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처음 의사 선생님의 말대로 약은 두 달만 먹으면 되는 줄 알았다. 하루빨리 정신과 약을 먹는 사람이 아니고 싶었다. 증상이 많이 호전된 것 같아 의사의 처방도 없이 내 마음대로 약을 끊었다. 그러자 다시 공황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불안과 초조함, 밤에 심장 튕김 증세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러다 평생 약에 의존해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공황발작의 기전을 알고부터는 조금 안심할 수 있었지만 공황장애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암담함이 나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사람이 아무리 힘든 일을 해 나간다고 해도 그 끝을 알 수 있으면 견뎌낼 수 있다.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는 암담함 앞에서는 의지가 꺾이기 마련이다. 약을 먹지 않으면 바로 나타나는 신체 증상들 때문에 나는 절망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약을 먹기 시작했다. 내 마음대로 약을 끊은 건 오히려 약을 먹는 기간을 늘리는 어리석은 짓인 줄 그땐 몰랐다. 약을 먹으면 졸음이 쏟아졌다. 정신도 몽롱하고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그렇게 몽롱한 상태로 누워 지내는 하루하루 동안 나는 오롯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쉬는 날이면 친구들과 놀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지금 집에서 아빠한테 무슨 일이 생겼으면 어쩌지?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겼으면 어쩌지?’

 그런 생각이 들면 나는 놀다 말고 집으로 달려가 아빠 엄마가 잘 있는지 확인했다. 밥때를 놓칠 만큼 노느라 정신없는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참 예민하고 불안한 마음을 가진 아이였다. 성인이 되어 심리 관련 서적을 읽다가 당시 나는 분리불안을 앓고 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만 해도 아이들의 감정이 중요시되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나는 어떤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늘 감정 바탕에 불안감을 깔고 있는 성인이 되었다. 아마도 산후 우울증도 공황장애도 이러한 나의 기질이 작용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나의 공황장애는 소설의 복선처럼 이미 나의 삶 속에서 예고되고 있었다.      


 복선 1.  아이가 돌 즈음 신랑과 함께 외출했다가 아이와 나만 먼저 들어온 적이 있다. 집에 도착해 잠든 아이를 침대에 눕혀 놓는데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나의 생각은 재앙 속으로 급격히 빨려 들어갔다. 밖에 불이 났나? 옆집에 불이 났나? 우리 집으로 불이 번지면 어쩌지? 그러다 가스가 폭발하면 어쩌지? 그렇다면 아이와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지금 아이를 안고 피해야 하나? 끝없이 이어지는 재앙적인 생각에 너무 불안해졌다. 급기야 119에 전화를 걸었다. 심장이 두근댔다.

 “여기 00 아파트인데요, 사이렌 소리가 들려서요. 혹시 근처에 불이 났나요?”

 소방대원이 확인을 한 뒤 대답했다.

 “아, 거기 출동 한 건이 있긴 한데, 불이 난 건 아니고요, 누가 좀 다쳐서 출동한 겁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러나 두근대던 심장이 가라앉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복선 2. 아이가 이십 개월 즈음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일을 하던 중 종종 까무러칠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빈혈인가 싶어 검사해봤는데 아무 이상 없었다.      


복선 3.  아이가 사십 개월 즈음 정직으로 일하게 되었다. 나의 직장은 점심시간에 잠시 누워 쉴 수 있었다. 그러다 가끔 까무룩 잠이 들기도 했는데 종종 어떤 소리에 화들짝 놀라 깨어 심장이 크게 두근댔다. 잠결에 놀랐나 보다 했지만 두근거림은 수 분이 지나야 안정되었다.     


복선 4. 밤 여덟 시 즈음 자판기 커피를 마신 날밤 잠을 한숨도 못 잤다. 심장이 계속 두근거렸고 머릿속에는 무서운 생각들로 가득 찼다.      


복선 5. 비행기 공포증이 생겼다. 비행기를 타고 있는 내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추락하는 장면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지난날들을 돌이켜보니 나는 이미 많은 불안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공황장애를 앓은 계기로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나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나아가 타인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공황장애입니다.’는 정신과 의사 최주연의 책 <굿바이 공황장애>의 프롤로그 제목이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죽을 만큼 힘든 공황장애가 축하할 일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공황장애를 극복하고 4년이 지난 지금은 그 말이 너무나 이해 간다. 공황발작은 죽음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지만 실제 죽었다 살아난 느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공황장애는 나에게 전혀 다른 삶을 살게 해 주었다. 실제 죽음의 문턱을 넘어갔다 돌아온 사람들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달까. 공황장애는 나를 돌아보게 해 주었고 나를 사랑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만약 지금 공황장애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너무 절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황장애는 나의 문제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기회,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기회로 생각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문제를 만났을 때 그것을 헤쳐 나가지 않고 피하면 문제 해결은커녕 일이 더 커지는 것처럼 공황발작이 일어날 때 나의 의식을 신체 반응으로 직면하지 않고 재앙적인 생각으로 몰아가면 더욱 불안해진다. 공황발작이 시작되면 이제는 직면하라. 오로지 지금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라. 심호흡을 하라. 분만 견뎌보자는 생각으로 실천해보라. 미친 듯이 뛰던 내 심장이 다시 속도를 줄이는 것을 지켜보라. 물론 쉽지 않겠지만 이렇게 공황발작을 직면하는 횟수를 늘려 가다 보면 공황발작 횟수와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 죽을 것 같은 공포, 미칠 것 같은 공포. 그것은 실제가 아니다. 우리는 죽지도 않을 것이며 미치지도 않을 것이다. 공황의 최악은 그저 공황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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