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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경심 Jun 01. 2021

5-7  누구의 삶도 완벽하지 않다

 

 전 직장에는 직원 식당이 따로 있었다. 입원실이 있었기에 영양사 선생님도 있었다. 영양사님은 수려한 외모를 가졌고 옷차림은 늘 정갈하고 세련되었다. 직원들이 식당에 점심식사를 하러 오면 늘 밝은 미소로 맞아 주었다. 영양사님은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집안’의 며느리였다. 근무시간도 굉장히 짧았다. 직장에 돈벌이를 위해 나오기보다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나오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같이 일하는 K가 시무룩하게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오늘 영양사님 입고 온 옷 보셨어요? 죄다 명품이에요. 그렇게 엘레강스한 모습이랑 치료사복을 입고 있는 제 모습을 보니까 위화감까지 느껴지는 거 있죠.”

 그 말을 들어서였을까. 무지하게 바빴던 오전 근무를 마치고 식사를 하러 간 날이었다. 간호사 선생님들도 무척 지쳐 보였다. 업무에 시달려서 하나같이 머리도 조금 헝클어져 있었고 표정들도 안 좋았다. 그런데 영양사님은 여전히 여유롭고 밝은 미소로 우리를 맞이했다. 같은 직장 맘인데 그날따라 영양사님과 우리 모습이 확연히 비교되었다. 우리가 불쌍하게까지 느껴졌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가을 어느 날 영양사님은 자리를 비우고 아이와 함께 한 달간 미국에 다녀온다고 했다. 그리고 한 달 뒤 몰라보게 살이 빠져서 나타났다. 직장 동료가 말했다.

 “요즘은 몸매 관리도 있는 사람들이 잘해. 시간 있지 돈 있지. 못할게 뭐 있어?”

 동료의 말을 듣고 점점 불룩해지는 내 뱃살을 보면서 참으로 씁쓸했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며 같은 한 끼를 먹는데 누구는 명품 옷에 미국 여행에 다이어트까지. K가 말하는 위화감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계절이 바뀌고 크리스마스를 막 지난 어느 날, 연말이라고 전체 회식을 했다. 먼저 갈 사람들은 먼저 가고 마음 맞는 몇몇 여직원끼리 2차로 호프집에 모였다. 그 자리에는 영양사님도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영양사님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는 말을 했다. 지난번에 미국을 다녀온 것이 아니라 암 수술을 하고 왔다고. 직원들에게 공개적으로 말하기가 껄끄러워서 미국 여행으로 얼버무렸다고. 그러니까 ‘있는’ 사람이라서 미국을 한 달이나 다녀온 것이 아니었다. ‘있는’ 사람이라서 몸매 관리를 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영양사님의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고 위화감을 느낀 것은 생사를 오가는 암 투병의 한 단면이었다. 마음고생, 몸 고생으로 정말 힘든 시기를 보냈을 영양사님을 두고 그런 생각을 했던 내가 진심으로 부끄러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타인의 겉모습만 보며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짐작한다. 돈이 많은 것과 행복도가 비례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비교한다. SNS에 요약된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나와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그들의 삶 전부는 아닐 것이다. 희로애락이 없는 삶은 없다. 단지 형식과 형태만 다를 뿐. 인생을 많이 살아 본 어른들은 ‘사는 거 다 똑같다’는 말을 한다. 이제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알 거 같다. 영양사님을 생각하니 책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의 한 구절이 유난히 가슴에 와닿는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며 타인의 삶의 무게를 짐작하지만,

타인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듯,

우리의 눈에 비친 타인의 모습도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각기 다른 상처와 결핍을 가졌으며, 손상되지 않은 삶은 없다.

그렇기에 당신이 알아야 할 분명한 진실은

사실 누구의 삶도 그리 완벽하지는 않다는 것.

때론 그 사실이 위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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