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뢰렉신 Mar 19. 2019

우리가 미래에도 같이 있을까?

미래가 정해져 있다면 우리는?


1. 프롤로그

저녁 식사 후, 서점에 들렀다가 베스트셀러 구역에 놓인 책을 한 권 펼쳐 들었다. 

무슨 내용이길래 이 책베스트셀러이지? 하며 촤르륵 책장을 넘기며 책 바람을 쐬다가

엄지 손가락에 걸리는 한 페이지가 있어 내용들여다보았다.


흔히 말하는 '썸'이란 것은 좋아하는 감정이 있다는 '확신'과 '의심' 사이의 투쟁이야. 확신과 의심이 밀물과 썰물처럼 교차하는 법이지. 그러다 의심의 농도가 점차 옅어져 확신만 남으면 비로소 사랑이 시작되는 게 아닐까?

이기주 著, '언어의 온도' 중에서


내용은 '사랑'에 대한 지인들과의 대화. 

그중 위에 쓰인 하나의 단락이 마음에 들었다.


'의심'은 어쨌거나 사람 간의 관계에서 '확신'보다 빈번하게 발생하는 행태이다. '확신'이 없기 때문에 뻗어나가지 않고 다양한 '의심'의 가지로 갈라진다. 이 두 가지 정을 게이지의 min과 max로 적용하면 관계의 척도가 가능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의심 쪽으로 감정 게이지가 치우치면 치우칠수록 썸은 결국 옅은 색으로 바래져 감정이 사라져 가는 것일 테고, 확신 쪽으로 게이지가 올라가면 명확한 컬러를 가진 감정으로 발전되어 '사랑'이라는 하나의 붉은 꽃으로 활짝 피어나겠지.



시작되기 전의 남녀들은 왜 '확신'을 주는 행동과 말에 인색하고 '의심'을 사는 행동과 말에서 본인 스스로의 자존감을 세우려 할까?


감추려 하는 본능을 내세워 상대의 마음을 애달프게 하는 재미가 그렇게 좋을까? 나는 그러는 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내 마음과 머릿속에서 뭉게 피어오른 상대에 대한 감정을 조건 없이 표현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솔직함으로 찌르면 거기에 응수하는 태도는 반반이었다. 급격히 나에게 딸려오는 사람도 있었고, 부담스러워 거리감을 가지려는 사람이 있었다.


어쨌든 나는 딸려오는 사람과의 썸이 연인으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고, 거리감을 느끼고 나를 한번 밀어낸 사람에게  더 이상 집적(?) 대지 않는 예의를 가졌다.


때로는 후에 내가 거리감을 두니까 다시 딸려오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난 한번 김샌 감정을 되살리는 인내심이 없었다. 지나간 버스에 손 흔들어봤자. 기사는 백밀러로 흥, 하고 콧웃음 치며 브레이크 대신 액셀을 더 세게 밟을 거라는 걸 왜 모를까.




2. 시작

썸을 타는 단계서부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친구가 있었다. 얼굴이 화려하게 생긴 친구였고 패션은 항상 트렌드세터처럼 세련되었다. 직선의 직선처럼 말을 했고 인디언 춤을 추듯 제스처가 부드러웠다.


나는 그녀의 그런 유니크한 성격과 외모에 미친놈처럼 끌려들어 가기 시작했고, 몇 번의 우연한 만남과 한 번의 의도된 만남으로 그녀와 나는 짧은 썸을 끝내고 바로 '연애 테크'를 타버렸다.


별다른 의심 하나 없이 바로 확신 크리를 맞아버린 셈인데, 우리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를 둘이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천생연분이지 않을까 하는 진부한 이야기는 처음부터 꺼낼 생각이 없었다. 다만 우리가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처음부터 서로에게 돌진한 이유를 만남의 과정부터 떠올리며 되짚어 보았다.





3. 과거

군 제대 후 복학하자마자 용돈이나 벌 생각에 짬을 내 학교 후문 근처 모퉁이 작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때였다. 아침 8시가 되면 항상 '안녕하세요'인지 '은녕하세요'인지 작은 목소리로 딸랑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와 창가 바 테이블 구석 자리에 구부리고 앉아 커피와 샌드위치를 시켜먹던 여자 손님이 있었다.


키가 좀 크고 의상이 늘 올블랙이라 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기억이 나는 손님이었는데, 원체 손님에게 아는척하는 성격이 아니었던 내가 유일하게 말을 걸어보고 싶은 손님이었다.


그날도 그녀는 여지없이 바 테이블 구석에서 창밖을 보며 커피를 홀짝이고 있길래, (이상한 확신으로) 오늘쯤은 말을 걸어볼까 하는 용기가 생겨 다른 테이블을 정리하는 척 다가가 슬그머니 한마디 던졌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요?"


"아.. 공기요"


"네? 공기가 보여요?"


먼지가 빛에 반사되어 금가루처럼 반짝이는 창가 앞에서 그녀는 그렇게 무심코 말했다.

다소 엉뚱하게 '공기'를 보고 있다는 답변은 들은 나는 그녀에게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 참고 물었다.


"공기가 지금 어떻게 보이나요?"


"음... 지금 어수선하게 흔들리며 부유하듯 떠다니고 있어요. 이거 사진으로 찍을 수 만 있다면 참 좋을 텐데 형태를 말로 설명하기 힘들거든요"


뭐지 뭐지 뭐지... 뭐지!

나는 그녀의 엉뚱함에 아니.. 그녀의 상상력에 무한한 호기심이 생겨 무작정 대화를 이어가고 싶어 졌다. 그래서 공기의 형태에 대해 서로의 이야기가 터져 나왔고 그렇게 연결된 대화는 이내 서로의 신상을 캐기 시작하게 되었다.



'진. 미. 래'


이것이 그녀의 이름이었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그녀의 이름이 너무 맘에 들었다.


"아.. 이름이 정말 퓨처스럽네요! 이름이 정말 맘에 들어요! 진. 미. 래!"


소리치듯 터져버린 나의 호들갑에 그녀는 약간 당황된 듯이 얼굴을 숙이며 이렇게 말했다.


"음.. Future의 미래가 아니라... 모음 '여''이'를 써서.. '미례' 예요... 조금.. 촌.. 스럽죠..."


"아.... 미... 례... 군요.. 미례.. 헤헤 그래도 부르는 발음은 똑같죠!"


이름으로 인한 잠시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그녀와 나는 순식간에 즐거운 미래에 도착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의 움찔 거림인데 이런 움찔거림은 자주 오지 않는다.


뭔가 좋은 미래에 대한 냄새가 느껴질 때만 나도 모르게 코가 씰룩거리고 어깨가 들썩거리는 움찔거림이 있었다. 그렇게 기분 좋은 미래의 향기에 취해 우리는 몇 번의 만남으로 더욱 친해졌고, 그 후 쭈욱 만나기 시작하게 되었다.  



나의 썸의 진행은 항상 단도직입적으로 결과가 이어졌는데, 그 현실에서의 태도가 서로의 미래를 상상하게 만들고 그 상상 속의 미래를 얻어내기 위해, 현실에서 나를 더욱더 바쁘게 움직이고 또 행동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을 상상할 수 있다. 그것은 상상이지만 현실로 다가올 수 있는 미래이기 때문에 이를 예측하고 구성해 본다는 것은 대단히 고차원적인 자의식을 운용하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을 한다는 것은 과거에 대한 생각도 있지만 미래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한다.


왜냐하면 과거는 현재를 점검을 하는 차원에서 떠올리지만 미래는 현재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게 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생산적인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미래지향적인 생각을 좀 허탈하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미래는 정해져 있다'는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 파생된 이야기이다.


그가 말하기를 우리 세계의 과거, 현재, 미래는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즉 과거는 사라지고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논리이다.


이 지구는 사실 4차원의 세계인데 단지 3차원의 시각을 가진 인간은 시간이라는 축을 거쳐야 4차원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이 논리가 진실이라면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운명이란 것은, 미래라는 것은 정해져 있다는 말이 설득력을 가질 수도 있다.



여하튼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런 아인슈타인 물리학적 근거를 살짝 믿고 있었고, 미래에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을 현실에서 마주치게 된다면 분명히 의식이 될 정도로 묘한 느낌이 들 것이라 생각했다.


예를들어 그런 미래의 운명적 사람이 내 근처에 있다면 나도 모르게 코가 찡긋거린다던지, 재채기가 나온다던지, 심장이 벌렁거린다던지 하는 물리적 움찔거림이 나도 모르게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미례를 만났을 때가 딱 그랬었다. 평소 내가 안 하던 행동 또는 평소 내가 하지 않던 말들을 그녀에게 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왜 그랬지? 내가 뭔가에 씌었었나 할 정도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미례 역시 처음 나와 부딪치고 내 존재를 알게 되면서 자신도 평소 그러지 않는 행동과 말을 나에게 했다고 한다.


우리는 그때 서로에게 왜 그랬을까를 따져보 딱히 나온 결론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우리는 미래에 만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현실에서 움찔거림을 참지 못해 그랬을 거야 하고 아인슈타인 논리를 들이대며 깔깔거리며 웃어버렸다.





4. 현재

지금의 우리는 과거에 비해 어떤 모습으로 서로에게 존재하고 있을까?


함께한 시간이 쌓이고 쌓여 벌써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항상 같이 마주 앉아서 일상의 많은 이야기와 각자의 생각들을 공유하고, 서로의 감정과 태도를 존중해주고 있으며, 서로 해줬으면 하는 행동들을 먼저 실천에 옮기고 배려받고 배려해주는 자세가 몸에 베었다.


간혹, 우리 서로 너무 사랑하고 있는 거 아닌가? 이러다 둘 중 하나가 갑자기 세상에서 없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할 때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으로 오기까지 마냥 좋은 나날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번쩍이는 호기심으로 하루 24시간이 모자를 정도로 서로를 탐닉하는 시간이 끝이 나자, 뭔가 맞지 않는 구석이 하나하나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시점부터 가파르게 올라가던 감정의 그래프는 정점을 찍고 내리막을 치더니 드디어 리즈너블 한 라인을 그리는 시기가 왔다. 어찌 보면 이것이 어느 정도 가식이었던 부분이 사라지고 진짜의 모습끼리 맞붙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소위 말하는 '내게 맞추길 바래' 하는 기싸움이 시작되었다. 이제 본연의 서로의 모습으로 부딪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의 성향이라는 것이 언제까지나 감추거나 숨길 수 없다. 심성이나 습관은 서로의 일상이 계속 공유가 되면 드러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쿨한 연애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새롭게 부딪히며 드러난 서로의 면모를 가지고 어쩜 그렇게 유치 팔색 한 꼬질한 트집을 잡기 시작했는지, 가끔 떠올리면 '풋'하고 혼자 웃음이 터지곤 한다.



서로에게 매우 신경질 난 어느 하루, 우리는 더 이상 부정적인 생각을 증폭시키지 않으려 찌질하고 유치한 불만이라도 까놓고 말하자고 했다. 그제서야 서로에게 자잘한 불만들 중에 가장 큰 게 무엇인지 털어놓기 시작했다.


우선 내가 먼저 말했다.


"나는 네가 비교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는 종종 너의 주변 남자들 또는 너 취향적 남자들과 내 일상의 습관이나 성향에 대해 비교를 할 때가 있어.

그게 내가 기분 좋을 때는 웃음 코드로 넘기는데, 그렇지 않을 때는 매우 자존심 상하고 화가 나"


그랬다. 그녀는 자주는 아니지만 내 습관이나 말투 또는 일상적인 행동 패턴에 대해 곧잘 자신이 알던 남자들과 비교를 했다. 장난같이 지적하지만 그것은 분명 본인에게 거슬리거나 마음에 안 드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런 장난스러운 지적들이 쌓이고 쌓이다가 내가 컨디션 안 좋은 날은 아주 불쾌하게 들렸다. 그러나 꾹 참았다. 처음부터 그런 말들에 대해 기분 나쁘다는 말을 못 했기 때문에 이제 와서 그런 부분을 문제 삼으면 왠지 내가 속 좁은 남자가 되는 거 같아서였다.


그녀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너는 표현에 너무 인색해.

말하지 않아도 알지만 때로는 말로 꼭 듣고 싶기도 해. 전에 안 해봤던 행동이라고 어색해서 못하겠다 하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그 안 해봤던 행동을 내게 보여줬으면 좋겠어. 그래야 내가 더 사랑받고 있고 더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란 게 느껴져"


그렇다. 나는 이전 사람들에게 주로 받기만 했었던 연애 관습이 남아있어 그런지, 지금의 내 애정 표현 정도면 괜찮다 또는 잘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있었다. 어쨌든 이전보다는 안 하던 표현과 행동을 하긴 하니까. 그래서 그녀가 부족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건 내 기준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기준에서는 한참 모자란 함량이었을 내 애정 표현력이 그녀를 종종 서운함과 불안에 빠트렸던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맞지 않는 건가? 또는 좀 더 서로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는 건가 하는 깊은 '각성'에 빠질 수도 있었는데 인연은 인연이었는지, 슬기롭게 서로에게 맞춰주는 노력을 해야 한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겨우(?) 10% 정도의 안 맞는 부분 때문에 90% 잘 맞는 즐거운 우리를 잃어버린다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기 때문이다.



연애하는 사람들이 종종 딜레마에 빠지 트집 소스가 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지 못해?
vs
다른 점을 맞춰주는 노력도 못해?


받아들이지 못하고, 노력하지 못하는 서로의 태도를 '겨우 그 정도밖에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니?'라는 못된 결론을 내리곤 한다. 이거 만큼 헤어지기 쉬운 합리적 근거도 없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느끼는 그 정도의 차이를 가늠하기 힘들고 평균 점수로 절대 평가할 수도 없는 내용이어서 트집 잡고 아집 부리기 너무 쉬운 감정 논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씌어놓은, 혹은 네가 씌어놓은 서로의 콩깍지가 하나씩 벗겨질 때마다 우리는 좀 더 진실한 서로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그 모습 속에서 실망도 하고 번뇌가 되는 부분도 생겼지만, 결국 우리는 그 모습마저 사랑해야 한다라는 강박과 속박에서 벗어나 차라리 서로에게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우리 서로 납득할 수 있는 상식들은 맞춰나가자


맞춰나가지 않으려면 여기서 관두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그로 인한 감정 소비는 서로의 인생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솔직한 대화를 통해 방안을 찾아보려 노력하기 시작하니까 서로의 여러 가지 성향과 습관들을 알게 된 후에도 우리는 웃을 수 있기 시작했다.


인정할 부분과 개선해야 할 부분들을 속시원히 이야기하고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양보와 배려로 정리 해나가면서, 서로가 나다운 또는 너다운 모습으로 마주하게되어 더 큰 애착이 생기고 더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어쨌든 그런 과정을 거치니 연애 초기에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던 사람이 점점 내 취향과 정서로 체화(體化)되어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딱 내 몸과 정신에 맞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과정이 있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드세보이던 성격이 지금은 녹녹하게 녹아버려 솜털처럼 부드러운 사람이 되었고, 대화 도중에 갑자기 화를 내거나 감정을 폭발시키는 습관이 있던 사람이 지금은 정색할만한 대화가 불거지면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는 사람이 되었다. 또한 무의식적으로 누군가와 비교하던 습관도 거의(?) 사라졌다.


나 역시 그 사람의 취향과 정서에 따라 변화된 부분이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어지간히 말로 애정 표현을 잘 못하고, 한다 해도 어색해하던 내가 어느샌가 좋아한다라는 말과 행동을 아끼지 않게 되었고,


감정의 판단을 '' 아니면 '모' 중 하나만 택하던 양극단적인 내 성격이 그녀에게 불안감을 줄까 봐 무조건 그녀의 조언을 1순위로 따르는 충성스러움을 갖게 되었다.     


서로 애당초 가지고 있던 부족한 부분들이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채워주는 태도로 서서히 변해갔다는 것만으로도 사실 놀라울 따름이다.


서로에게 거친 원석 같던 성격과 태도가 부딪치고 부딪치면서, 대화하고 대화하면서 다듬어져 가고 깎아내기 시작하더니 결국 서로에게 반짝이는 보석 같은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이런 생각을 해본다.


너와 내가 아니라면,
누구와 이렇게 세세한 마음과 일상을
이야기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너와 내가 아니라면,
누구와 이렇게 맹목적인 믿음과 온기를
주고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5. 미래

가끔 나중에도 내가 이 사람과 같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그리고 간혹 실없이 물어보기도 한다.


"저기말야, 너는 10년 후, 아니 20년 후에도 나랑 같이 있을 거 같아?"


그러면 지기 싫어하는


"너는 어떨 거 같은데?"


라고 되묻고는 서로 답변을 미루면서 깔깔거리고 만다.


사실, 이 질문을 하는 기저에는 '나는 당연히 너랑 같이 있을 건데'라는 방백이 깔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알면서도 대답을 미루는 장난을 치곤 했다.


10년 또는 20년 후에 우리는 어떻게 되어있을까? 그건 아주 먼 미래에 대한 생각이지만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건, 내일만큼은 이 사람과 꼭 함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일단 내일,


그녀를 만나 들려줄 오늘의 일상 이야기들이 한가득 있고,


만나면 선물해주고 싶은 책이 있는데 같이 들릴 서점에 구비되어 있는지 인터넷으로 확인해놓았고, 


저녁으로 먹을 식당의 메뉴를 정해놓고 리뷰를 한참 읽어보고 그 맛을 떠올리며 벌써부터 군침을 흘리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집에 데려다 줄 그 골목길의 가로등도 이미 내 머릿속에 환하게 점등되어 있다.


같이 하는 이런 소소한 일상이 내일, 그리고 또 내일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고 그러다 보면 우리는 벌써 10년, 20년 후 미래에 도달해 있지 않을까?





6. 에필로그

나는 미래가 정해져 있던, 안정해져 있던지 그건 사람을 만나는 데 있어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지금이고, 지금에 충실하며 나아갔을 때, 미래의 상황이 내가 노력하고 원했던 대로 펼쳐지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정해져 있는 운명이 아닌 내가 충실했던 삶에 대한 조금 다른 결과물이 나온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납득이 될 것 같다.  


그러면 모든 것이 이치대로 놓이게 된 인연이었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하기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에도 오늘 같을 사람.

그런 사람이
지금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이다.
 :D
이전 04화 남자는 에로를 원하고 여자는 멜로를 원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