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만 원하는 남자, 모든 걸 달라는 여자.
우리 이러려고 만나는 거야?
그녀는 연애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남자 친구에게 이렇게 쏘아붙였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이러려고'는 쑥스럽게도 '자는 것'을 의미한다.
"너무 속상해요. 그의 눈에서는 저와 침대에서 뒹구는 상상을 하는 야한 눈 빛만 느껴져요"
만나면 일상의 대화를 즐겁게 한참 나누고, 이쁜 꽃 축제도 가보고 싶은데, 남자 친구는 카페에서 팔짱 끼고 내 이야기를 듣는지 마는지 영혼 없는 대답만 30분째 하다가 '그건 알았고, 자 이제 가자' 하는 느낌으로 뭔가에 쫓기든 성급하게 결국, '자러 가는 곳'으로 자신을 이끌더라는 하소연을 했다.
"이 남자, 과연 저를 사랑하긴 하는 걸까요?"
대체 내가 어디까지 너에게 주기만해야 하는 거니?
그는 드디어 폭발했다고 말했다. 그 오랜 시간을 아낌없이 진심을 다해 노력했지만, 그녀는 늘 받기만 한다라는 느낌이었다. 짝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당당히 공표된 연인 사이에서 물질적, 감정적 소비의 불공평함이 드디어 임계점을 돌파하여 쪼잔해 보이는 걸 감수하고, 그는 입 밖으로 그 서운함을 내뱉었다고 했다.
"내 영혼이 소진되는 걸 느꼈지만, 참고 참고 또 참았어요. 대체 어디까지 제가 해주기만 해야 할까요?"
그의 그녀는 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고 연애 초기부터 그에게 공표를 했다고 한다. 그러니 이해해달라고 했단다. 그녀를 얻기 위해서 무슨 조건이라도 못 받아주랴. 그래서 그러마 했다고 한다.
그러나 본격적 연애가 시작되고 시간이 흐르다 보니 고맙다, 사랑한다, 보고 싶다 등 여느 연인들이 (의무적이라도) 속삭일 수 있는 표현 하나 잘 못할 뿐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대접 받기만 원하는 그녀의 태도에 종종 서운함을 느끼는 때가 있었단다.
"이 여자, 아직도 마음을 열지 못한 걸까요?"
두 남녀 각자의 하소연을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들었다. 그들의 투덜거림을 한참 듣다 보니 오래전, 우연히 서점 구석에서 읽게 된 <여자는 모든 것을 원하고, 남자는 단 한 가지를 원한다>란 책이 떠올랐다.
이 책의 논점은 간결하고 확실하다. 남자는 '자는 것'이 여자를 만나는 목적의 모든 것이고, 여자는 '자신만을 향한 모든 애정'이 남자를 만나는 목적이라 쓰여 있다. 이에 대해 남녀 모두의 반박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여하튼 좀 오래된 이 책은 그렇게 기술하고 있다.
어찌 보면 해당 책의 내용은 위에 카운슬링을 진행했던 두 남녀의 원색적인 불만과도 어느정도 일치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아주 공감이 떨어지는 이야기와 주제로 책을 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극적인 내용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남녀 본성에서 비롯 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현실이기도 하니까.
고민에 빠진 남녀 서로가 각기 원하고 있는 부분은 무척 간결하지만 그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남녀 성향 차이의 복잡한 심리적 거부감의 원인을 알아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부터 내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두 남녀 고민들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분석을 해보기로 했다.
(개인적 견해라 다소 공감이 안되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라는 것을 미리 말해둔다)
: 이 남자는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걸까?
사실 남자 입장에 솔직히 말해준다면, 욕정과 사랑을 구분하기 조금 힘들다. 둘은 매우 비슷하지만 분명 다른 심리적 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육체적 호기심에 대한 욕정 하나만으로 여자들의 감정을 후려치는 남자들도 분명 많이 있다. (그런 남자들을 주변에서 꽤 많이 보아왔다) 그러나 그에 만만치 않게 일련의 남자들은 좋아하는 여성에 대한 '정복'의 성취를 빨리 느끼고 싶어 '자는 것'에 대한 집요한 집착과 노력을 마다하지 않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정복'이란 것은 육체적 관계를 통해 지속적인 마음까지 얻어낼 수 있다는 단편적인 생각을 말한다.
따라서 '자려하는' 남자들의 심리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육체적 관계를 하나의 훈장처럼 생각하여 다수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경험' 콜렉터로서의 욕망.
사랑하기 때문에 육체적 관계도 빨리 맺고 자주 맺어 '내 것'이라는 심리적 만족을 공고히 하고 싶은 욕망.
이 포인트에서 여자들은 이렇게나 밝히는 이 남자가 전자인지 후자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 사람은 과연 내 육체의 호기심만 풀기 위해 '자는 걸' 목적으로 삼는 걸까? 아니면 나를 확실한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자는 걸' 수단으로 삼는 걸까?
이를 어떻게 구분해 낼까 하는 것이 많은 여성들의 번뇌와 고민의 대상일 것이다. 아마도 여성들은 '준다'라는 관념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남자는 '갖는다'라는 관념으로 따지고 들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성평등 관점에서는 대단히 '남성우월주의' 심리가 강한데, 유교 사상이 뿌리 깊게 내린 우리의 현실일지도 모른다. 물론 여성인권이 많이 성장한 요즘 많이 희석되어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우리의 남녀 사이에서는 그런 풍토가 강하게 깔려있다.
이쯤에서 여자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짜증 나게도) 왜 남자는 여자보다 '자는 것'에 더 집착하는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은 '남자는 씨를 여러군데 뿌리려는 본능이 있어서'라는 올드한 해석말고,
잘 알려지지 않은 '후회'란 정서를 바라보는 남녀의 차별적 심리성으로 신선하게 해석해보겠다.
남자는 '하지 못한 것'에
후회를 더 많이 하고
여자는 '한 것'에 대해
후회를 더 많이 한다
라는 심리 연구 결과가 있다. 이 후회란 정서는 마음을 갉아먹는 부정적인 정서인데 '아, 그때 내가 왜 그렇게 했을까?'하고 이불 킥을 날리는 '후회'란 마음이 남녀가 '성'을 바라보는 태도를 진화시켰다.
즉, 과거의 저지른 잘못을 돌아보면서 미래에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하는 각성의 심리적 메커니즘이 '자는 것'에 대한 행위의 태도에도 발동되었을 것이라는 심증적 결과이다.
해석해보자면 남자는 훗날 '한 관계'보다 '하지 못한 관계'를 땅을 치며 후회하기 때문에 앞으로 '하지 못한 관계'를 최대한 줄이려는 방향으로 진화를 했고, 반대로 여자들은 '하지 못한 관계' 보다 '한 관계'를 더 많이 후회하기 때문에 '한 관계'가 지나치게 많이 발생하지 않도록 진화한 것이다.
그래서 남자는 기회(?)만 있으면 '자려 하는 것'이고, 여자는 좀 더 확실해진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쉽게 '안 자려하는 것'으로 보수적 심리 태도가 발전되었다. 이 진화된 심리론이 늑대 같은 남자들의 본성을 합리화시킬 수는 없지만 어쨌든 영향이 아주 없지는 않다는 것이다.
자 이제 여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의 답을 말해보고자 한다. 그놈의 자식(?)은 왜 그렇게 '자는 것'에 대한 집착을 갖는 것일까? 과연 나에 대한 사랑의 갈구인지 아니면 가벼운 식사 한 끼의 욕정인지 그것을 구분 해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남자 입장에서 말해주는 그 방법은 이거 하나뿐일 것 같다.
적당한 핑계를 대고 그와 '자는 것'에 대한 행동을 절제 및 통제시켜보는 것이다(물론 일시적이다) 그 관계를 멈추었을 때도 그가 당신을 여전히 좋아하고 있다면 그것은 욕정이 아니라 사랑일 것이다. 그러나 멈추었을 때 연락이 뜸해지거나 서로 소원해진다면 그것은 욕정을 위한 만남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남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인지 욕정의 대상으로 여기었는지 구분해 보려면, 관계를 끊었을 때 본인의 심리와 행동의 변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자는 것'이 멈춰졌을 때, 그녀가 시시하게 생각되고 바로 다른 타깃의 여자가 눈에 들어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욕정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자는 것' 행위가 이루어진 이후, 만나면 평소와 똑같이 즐겁게 이야기하고 애정스러운데, 유독 또다시 '자는 것'에 대해 소극적으로 바뀌는 남자가 있다.
그것은 목표를 달성하여 시들해진 것이 아니라 잠자리의 케미가 맞지 않는 것을 발견하였거나 여자가 억지로 하는 소극적 태도와 혹은 회피하는 느낌을 주었을 때이다.
아마 그날 이후 남자는 겉으로 티는 내지 않겠지만 향후 이 연애를 지속해야 할까?라는 장고(長考)에 들어간 상황일 확률이 크다.
'자는 것'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동성 친구도 아니고 이성 관계이기 때문에 연애에 있어 '자는 것'에 대한 의미는 여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남자들에게는 굉장히, 훨씬, 아주 많이 중요하다.
이렇듯 '내가 이 여자를 계속 만나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게 만드는 중요 요소이기 때문에 가볍게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해서 남자는 다 늑대이고 발랑 까진 종족일까?
아니다. 여자보다 조금 더 본능적이고 육체적 즐거움을 인생에 큰 의미와 행복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연인과 침대 위에서 뒹구는 상상만으로도 남자는 정말 무. 한. 한. 행. 복. 감을 느낄 수 있는 종족이다.
그것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다른 그 누구보다도 더 깊게, 깊숙이 그리고 내밀하고 은밀하게 서로와 연결될 수 있다는 기쁨에 도취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 이 여자는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걸까?
밀당인지, 본인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남자는 하소연했다. 밀당이라면 적당히 했으면 좋겠고,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말해주면 그대로 해줄 수 있을텐데 하고 답답해했다.
그렇다면 왜 여자들은 애매모호함으로 남자의 마음을 까맣게 타들어 가게 만들까?
가부장적인 진화론 이야기는 지겹긴 하지만 납득이 좀 가는 부분만 또다시 끄집어 내보자. 진화학 적으로 어떤 사람이 자신과 사랑에 빠질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개념이 오래 기간에 걸쳐 발전되어 왔다.
이는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2세를 후세에 남기기 위한 본능적 행보인데, 이를 통해 좋은 상대를 고르고 만나기 위한 뇌 속 사랑의 메커니즘이 진화되고 형성되어져 갔다.
그렇다면 여자는 언제 사랑에 빠지는가?
남자가 단편적인 시각적 판단으로 사랑에 빠지는 확률이 높은 반면, 여자는 시각, 청각, 체감각 등 복합적인 감각을 매개로 한 기억들을 통해 애착이 형성되고 '사랑을 해야 할 사람'으로 판단한다.
즉, 여러 감각들을 통해 쌓이게 된 그 사람의 정보를 수집, 분석, 재형성하여 그 사람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그 이미지를 통해 나를 지켜줄 사람, 내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결정지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와 달리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 시간은 물리적으로 조금 더 길게 느껴질 수 있다.
이런 사연들을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남자가 애타게 구애를 하고 시들해질 무렵,
여자의 애정이 비로소 고개를 든다
물리적 타이밍 관점으로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구조도를 보면 이 허다한 사연들에 고개가 끄덕거릴 수밖에 없다.
남자는 조급하게 들이대고 결과를 빠르게 예단하는 반면, 여자는 들이대는 남자의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고 자신에게 제공되는 그 남자의 다양한 정보들을 모아 분석한 후, 애정이란 감정의 결정체를 형성하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 때문에 남자가 여자보다 빨리 포기하고 다른 대상으로 애정의 활시위를 당기는 시점에 여자는 이제야 정보 분석이 끝났고 이제야 좀 애정이 형성되어 남자를 받아들여야겠다 결심한다. 그리고 이제야 좀 다정하게 연락도 받아주고 작은 애교도 부려본다.
그런데 이게 웬일? 들이대던 남자는 갑자기 시큰둥해져 있다. 그제야 여자는 분노하며 '이 사람 금방 변했네. 날 좋아하는 게 겨우 그 정도였니'하며 변해버린 남자에게 크게 실망하고 다시 일생일대의 굳은 다짐을 한다.
'다시는 쉽게(?) 내 마음을 안주리'
이 전략적 타이밍을 잘 알면서도 남녀는 자주 어긋난다. 머리로는 이론을 알지만, 여자는 신뢰가 쌓이기 전에는 마음을 열지 못하는 신중함과 애정 정립에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려는 관성이 있고, 남자는 빠른 판단과 단기 집중력으로 늘 가슴이 벌떡 일 준비가 되어있고 시야는 항상 다른 이성들에게 관대함으로 열려있기 때문이다.
여자는 연애 중에도 계속 여러 감각을 통해 습득된 정보와 기억으로 '자신이 사랑받고 있는 중'인지, '이 사람은 신뢰할 수 있는지'에 지속적으로 확인한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고민남의 연인은 아무래도 일반적인 여자들보다 좀 더 신중한 타입일 수 있다.
그리고 신뢰감을 받아들이는 깔때기가 아직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뭐든지 한번 더, 혹은 여러 번 더 생각하여 남자가 전달해주는 다양한 정보들을 태스킹화 하여 지루하게 해석하고 있을지 모른다.
또한 애착이 형성되자마자 자립성을 잃을까 봐 불안하여 좀 더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케이스일 수도 있다. 자존감이 강한 여자일수록 연인이 된 후, 상대방에게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애착 안정기에 접어들면 자신의 자립성에 대한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상대에게 구속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상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위에 설명했던 이유들로 하여금 여자의 애매모호한 태도가 형성되고 이를 통해 고민남처럼 남자는 미치고 팔짝 뛰는 것이다. 간이고 쓸개고 다 내주고 어렵게 그녀를 내 것으로 만들었다 생각했는데, 왜 또다시 이 여자는 내게 가시밭길이 열어 주는 것일까.
이쯤 되면 못해먹겠네 라는 남자들의 아우성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남자들은 이 한 가지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 것.
그것에 가장 근본은 '신뢰'이다.
여자는 썸을 탈 때나, 연인이 되었을 때, 심지어 결혼하고 나서도 끊임없이 남자에게 '신뢰'를 요구한다. 지겹지만 진화학 적으로 남자는 믿을 수 없는(?) 종족임이 드러났고, 그 불신스러운 남자들 중에서 나에게 약속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면서 아이와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신뢰'있는 배우자를 얻으려 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신뢰를 주지 못한 것은 남자란 종족이었고 그로부터 여자들은 자신을 보호하고 선택의 결과가 나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려는 태도가 애매모호함으로 남자들에게 비추어졌을 뿐이다. 고로 남자들은 할 말이 없다.
어쨌든 여자가 마음을 여는 단계는 분명 남자와 다르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남자와 달리 여러 가지 감각을 통한 기억과 정보를 통해 남자의 가치를 판단하고, 남자가 진행하는 애착 단계와 타이밍 상 어느 정도의 갭 차이를 가지고 애착 형성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 메커니즘을 숙지하고 또 복기하여 인내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은 조급한 남자들은 원하는 여자의 마음을 얻기 힘들 수밖에 없다.
: 둘 다 각자의 입장에서 불만을 토로했지만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사실, 남녀 관계의 발전은 '트집'이란 소스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 사람은 변화가 생기면 이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자발적으로 생기는데, 특히 갈등 같은 대립의 상황이 펼쳐지면 어떻게든 타협을 통해 서로에게 적응하려는 본능이 발동한다.
이때 서로의 감정이 (치명적으로) 상하지 않을 만큼의 조절된 오해와 갈등이라면, 타협을 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어두운 터널에 갇혔다가 머리를 맞대 함께 헤쳐 나온 동반자적 기분이 들어 좀 더 배려하고 각성된 연인으로 한 단계 발전이 된다.
서로의 갈등과 대치 없이 마냥 둘이 '이래도 좋아요, 저래도 좋아요' 하면서 '우린 서로 아무런 불만 없어요'라고 하는 자화자찬의 관계는 사실 내면 깊숙한 곳에 계속 쌓여가는 불만들을 모른 척하며 좋은 게 좋은 사이로만 쇼잉 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어떻게 서로 다른 가치관과 생활방식으로 살아온 두 사람의 사이에 아무런 갈등과 이견이 없겠는가?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된다 하지만 결국 그것을 잘 지키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어쨌거나 연인 사이에서의 기복 없는 평정심을 가질 수 없게 만드는 다양한 변수들이 있지 않은가.
위 사례에 나온 두 남녀를 보면 각기 남녀 본성의 차이에서 오는 극히 당연한 오해와 불만이 '트집'처럼 자연스레 불거진 것이다. 이들 서로에 대한 불만의 해결점은 결국 둘 다 이렇게 된 원인을 정확히 이야기를 나누고 해결할 수 있는 것과 해결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서로의 타협과 이해가 필요하다.
결국,
만남은 인연이고, 관계는 노력이다
라는 명제를 확실히 납득하고 이해해야 한다.
두 남녀가 털어놓은 하소연의 겉모습은 마치 '자는 것'에만 집착하는 남자와 '받는 것'만 추구하는 여자의 대립인 것 같지만, 그 기저에 깔린 내면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그 둘의 사이에는 '의심'과 '이용'이 연애 판을 어지럽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자는 남자가 요구하는 '자는 것'의 빈번함에 이것이 '사랑'인지 '욕정'인지 의심이 되었고,
남자는 '받기 만'하는 여자의 태도에 이것이 '사랑'인지 '호구'인지 의심되었다.
결국 서로 이용당하기 싫은 감정이 끓어올라 갈등이 증폭되어져 왔던 것이다.
제삼자의 눈으로 보면 남자는 여자에게 한 가지를 원하지 않았고, 여자는 남자에게 모든 걸 원하지 않았다. 정답은 둘 다 어떤 특정한 욕구를 요구한 게 아니라 서로에게 필요한 '신뢰' 게이지를 채워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신뢰'는
서로에게 좀 더 적극적인 행동과
태도를 유발시켜
연애를 더 깊어지게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이다.
이 글의 제목으로 쓴 '남자는 에로를 원하고, 여자는 멜로를 원한다' 라는 자극적인 문장은 사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리고 반대인 남녀도 충분히 존재 할 수 있다. 중요하다라는데는 동의 하지만 절대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옥시토신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있다. 요즘 새로 시작한 TV 드라마의 소재로도 등장하고 있던데, 이 호르몬은 사랑과 관계의 영역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이 호르몬은 행복감을 느끼는 행위의 즐거움과 기억의 반응을 통해 많이 분비가 된다.
특히 남자는 '자는 것'의 행위를 통해 그놈의 '옥시토신'이 더 많이 분출되고 여자는 '배려, 인정, 안정감'을 통해 '옥시토신' 더 많이 분비된다라는 것은 연구 결과를 통해 알려져 있다.
'옥시토신'은 애착과 사회적 맥락에서의 배움과 기억에 관여하는데, 이를 통해 남자는 충실한 남자로 만들어지고 이는 여자에게 '신뢰'를 주면서 여자에게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자는 것'을 실현시키게 한다.
이 '자는 것'을 통해 남자는 또다시 '옥시토신'이 분비되고, 이것이 남자 스스로를 믿음직하게 만들고 다시 그것에 여자의 '옥시토신' 분비를 자극하여 사랑의 감정이 생겨나고... 또다시 '자는 것'을 실행하게 하고.... 남자는 또다시 믿음직해지고...헥헥....여하튼 그렇게 계속 돌고 돌며 반복되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괴론을 던지면서 끝내려 한다.
신뢰는 옥시토신을 낳고,
옥시토신은 사랑을 낳는다.
사랑은 남녀 모두에게 행복을 낳는다.
고로 행복하게 사랑하려면 ,
서로에게 믿음직한 사람이 되어 주는 것부터 시작하자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