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도하 이연구 변호사
1) 불법행위에 대한 적용 가부
법인격부인론이 계약에 관하여 적용된다는 것에는 이론이 없다. 불법행위의 경우에는 법인격부인론의 적용을 부정한 견해도 있으나, 법인격부인론이란 원래 거래법상 상대방의 신뢰를 보호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법인격의 남용에 따른 부당한 결과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볼 때, 불법행위에도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2) 보충적 적용
법인격부인론은 그 근거를 민법의 일반조항인 신의성실의 원칙 위반이나 권리남용금지에 두고 있으며, 영미의 판례법에서 발전된 이론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신중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 법리는 상법(회사법)이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는 주주의 유한책임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의 법규정이나 사법이론에 의하여 해결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보충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3) 법인격부인의 역적용
채무자가 자신에 대한 강제집행을 면탈할 목적으로 전 재산을 출자하여 영업의 형태·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회사를 설립한 경우에, 채권자가 회사에 대하여 채무자의 책임을 묻는 것을 법인격부인의 역적용이라고 한다. 원래 법인격부인론은 회사의 법인격을 부인하고 그 배후에 있는 자(주주)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인데, 법인격부인의 역적용이란 거꾸로 개인의 채무에 대한 책임을 회사에 대하여 추궁하는 것을 말한다.
위에서 채무를 면탁할 목적으로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는 것은 채권자 사해를 위한 회사설립이라고 한다. 합명회사와 합자회사 및 유한책임회사의 경우에는 채권자 사해를 위한 회사설립취소·무효의 소가 인정되는데(상법 제185조, 제267조, 제287조의6, 제552조 제2항) 주식회사와 유한회사의 경우에는 이러한 소가 인정되지 않는다. 채무자인 주주가 가진 주식에 대하여 강제집행을 할 수는 있으나, 재산을 직접 강제집행하는 것과는 달리 환가하기가 쉽지 않고 회사재산에 대한 채권자보다 후순위에 머물게 되므로 그 효용이 감소된다. 또한 민법상 채권자 사해행위에 대한 취소권은 단체법상의 행위인 회사설립에 대하여는 인정되기 어렵다. 그러므로 법인격부인론의 역적용을 인정하는 견해가 설득력이 있으며 다수설이다.
이와 관련하여 판례는 “기존회사의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기업의 형태·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신설회사를 설립한 경우에, 신설회사의 설립은 회사제도를 남용한 것이므로 기존회사의 채권자에 대하여 별개의 법인격을 갖고 있음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고 하면서 신설회사의 법인격을 부인하여 기존회사와 동일한 회사로 보았다. 전통적인 법인격부인론에 따르면, 기존회사의 법인격을 부인하여 그 책임을 그 배후자인 주주에게 귀속시킨 다음, 그 주주의 책임을 다시 신설회사에 추궁하는 순서로 진행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판례에서는 2단계의 법인격부인과 법인격부인의 역적용을 검토하지 않고, 지배주주가 기존회사의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기업의 형태·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신설회사를 설립한 경우에 기존회사의 채권자에 대하여 별개의 법인격을 갖고 있음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고 하여 법인격부인의 한 유형으로 처리하고 있다.
회사의 법인격이 부인되면 특정한 당사자 간의 법률관계에 한하여 회사의 독립된 법인격이 일시적으로 부인되고 회사와 그 배후에 있는 사원은 동일한 것으로 취급된다. 그러므로 회사의 채무는 바로 사원의 채무가 되어 회사가 채무를 변제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사원이 개인재산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또한 회사가 파산한 경우에 사원이 회사에 대하여 채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채권은 회사의 자본금으로 취급되어 다른 일반채권자가 우선변제를 받게 된다.
법원이 법인격부인론을 적용하여 실체법적으로 회사와 사원 또는 자회사와 모회사를 동일하게 취급하더라도, 회사에 대한 판결의 효력(기판력과 집행력)이 바로 사원에게 미치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절차의 명확성·안정성의 요청에 따라 회사에 대한 판결의 기판력과 집행력의 범위를 사원에게 확장할 수는 없다. 회사에 대한 판결의 기판력과 집행력을 가지고 그 사원에게 강제집행을 하기 위하여는 곧바로 승계집행문을 부여받을 수는 없고 그 사원을 상대로 별도의 소를 제기하여 집행권원(執행權原, 구 채무명의)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회사채권자는 회사와 함께 사원(주주)를 공동피고로 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소송에서 법인격부인론이 긍정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그만큼 법원이 제시하는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나 법인격부인이 인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특히 개인 재산과 법인 재산이 완전히 혼융되는 경우 법인격부인 이론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여 채무자의 배후에 있는 책임재산을 실질적으로 확보할 필요성이 있다. 아래는 법인격 부인론이 인정된 대표적인 판례이다.
[판례1] 대법원 2001. 1. 19. 선고 97다21604 판결
회사는 그 구성원인 사원과는 별개의 법인격을 가지는 것이고, 이는 이른바 1인 회사라 하여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회사가 외형상으로는 법인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이는 법인의 형태를 빌리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아니하고 그 실질에 있어서는 완전히 그 법인격의 배후에 있는 타인의 개인기업에 불과하거나 그것이 배후자에 대한 법률적용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함부로 쓰여지는 경우에는 비록 외견상으로는 회사의 행위라 할지라도 회사와 그 배후자가 별개의 인격체임을 내세워 회사에게만 그로 인한 법적 효과가 귀속됨을 주장하면서 배후자의 책임을 부정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되는 법인격의 남용으로서 심히 정의와 형평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 할 것이고, 따라서 회사는 물론 그 배후자인 타인에 대하여도 회사의 행위에 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판례2] 대법원 1995.5.12. 선고 93다44531 판결
A회사와 B회사가 기업의 형태·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하고, A회사는 B회사의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설립된 것으로서 A회사가 B회사의 채권자에 대하여 B회사와는 별개의 법인격을 가지는 회사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거나 법인격을 남용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도, 권리관계의 공권적인 확정 및 그 신속·확실한 실현을 도모하기 위하여 절차의 명확·안정을 중시하는 소송절차 및 강제집행절차에 있어서는 그 절차의 성격상 B회사에 대한 판결의 기판력 및 집행력의 범위를 A회사에까지 확장하는 것은 허용되지 아니한다.
※ 승계집행문이란 집행권원에 표시된 당사자 이외의 사람을 채권자 또는 채무자로 하는 강제집행에 있어서, 그 승계가 법원에 명백한 사실이거나 승계사실을 증명서로 증명한 때에 한하여 법원사무관 등이나 공증인이 내어주는 집행문이다(민사집행법 제31조 제1항).
[판례3] 대법원 2002. 10. 11. 선고, 2002다43851, 판결
승계집행문은 판결에 표시된 채무자의 포괄승계인이나, 그 판결에 기한 채무를 특정하여 승계한 자에 대한 집행을 위하여 부여하는 것인바, 이와 같은 강제집행절차에 있어서는 권리관계의 공권적인 확정 및 그 신속·확실한 실현을 도모하기 위하여 절차의 명확·안정을 중시하여야 하므로, 그 기초되는 채무가 판결에 표시된 채무자 이외의 자가 실질적으로 부담하여야 하는 채무라거나 그 채무가 발생하는 기초적인 권리관계가 판결에 표시된 채무자 이외의 자에게 승계되었다고 하더라도, 판결에 표시된 채무자 이외의 자가 판결에 표시된 채무자의 포괄승계인이거나 그 판결상의 채무 자체를 특정하여 승계하지 아니한 한, 판결에 표시된 채무자 이외의 그 자에 대하여 새로이 그 채무의 이행을 소구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판결에 표시된 채무자에 대한 판결의 기판력 및 집행력의 범위를 그 채무자 이외의 자에게 확장하여 승계집행문을 부여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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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3. 5. 이글의 모든 저작권은 이연구 변호사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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