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있는 동안 외교 모임을 통해도시 중심부 프랑스 가정에 가 볼 기회가 종종 있었습니다. 주로 은퇴하신 분들의 집이었는데... 현대적이고 미니멀한 깔끔함 보다는 엔틱하고 고급스러우며 귀족적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파리 중심부 층고 높은 오스만 건물에 사시는 분들은 예전에 프랑스에서 '한가닥' 하셨던 분들인데요, 그분들의 집에 초대받아식사를 함께 했던 기억은 '황송한' 추억입니다.
프랑스도 젊은이들이나 한창 아이들 키우는 부부들은 정신없이 팍팍하게 살아가지만, 정부가 노후를 확실하게 챙겨 주기 때문에노인층, 특히 부유한 파리 거주 은퇴자들은 실로 풍요로운 노후를 보냅니다. 사시사철 절기마다 프랑스 전역에서 생산되는 풍성한 먹거리를 챙겨 먹으며, 파리의 다채로운 공연, 전시, 행사들로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지요. 아름다운 파리의 고급 저택에서 친한 이들과 와인과 담소를나누며 우아하게 사는 나날들~"노후는 저렇게 보내야 해!"라는 부러움을 느꼈지요.
1. 파리 7구 은퇴 외교관 저택
고급 주택일 수록 집의 층고가 매우 높아요
붉은 계열에 따스한 노란 조명
집의 디테일, 소품 하나하나가 앤틱했던 공간
저녁 테이블 차림
다이닝 룸. 인상적인 벽지와 조명
앙트레 : 아스파라거스 두 종류에 신선한 마요네즈
프랑스 동부의 알자스로렌 지방음식으로 저녁 모임이 있던 날, 독일과 마주한 그 지방 소시지와 양배추 요리인 슈크루트를 먹었는데, 놀랍게도 이날의 스타는 앙트레로 나온마요네즈였어요!평생 오뚜기나 하인즈 마요네즈만 먹어온 저에게, 신선한계란을 분리해서 Dijon 머스터드를 넣어 바로 그 자리에서 만드는 프랑스식 전통 마요네즈는충격적인 맛!'마요네즈 싫어했는데 이렇게 맛있는소스였다니... 고소하고 부드럽고 고급진 맛!' 프랑스 할머니가 "첨가물 범벅인 미국마요네즈는 못먹지!" 단호한 선언! (설마 케첩도 토마토로 신선하게 바로 만드나? 이런 생각도 들었는데,프랑스에서 케첩은 감히 정찬에는 끼지 못하는 근본 없는 미국 소스랍니다. )
2. 6구 봉막쉐 백화점 근처 오스만 주택
봉막쉐 백화점 근처에도 층고 높은 오스만 주택지들이 많습니다.
파리의 고급스러운 대저택들 중에서도 외곽의 신축 (30 ~ 50년 이하는 신축으로 구분^^)들과 몇백 년 된 정통 오스만 주택들은 매우 다릅니다. 시내 오래된 주택들은 거의 문화재 들이기 때문에 유지. 보수비가 만만치 않아요. 주기적으로 건물 외벽 때 벗기는 작업이 필수이고, 배수관 하나 바꾸려 해도 행정적 절차가 복잡하다고 합니다. 주로 상속으로 소유권이 이어지는 이런 건물들은 겉도 아름답지만 안에 들어가면 층고도 높고 공간도멋있습니다. 단, 삐걱거리는 마루와 낮은 수압이 세월의 흔적을나타냅니다.
문을 열자 정장 차림인 남자 외교관들과 우아한 실크 옷에주얼리를 주렁주렁 장착하신할머니들이 맞이해 주시던 곳. 추운 날씨여서 패딩 입고 갔던 제 착장이 민망했던 밤이었어요. 파리 명문가에선 체온 유지 보다 체면 유지에 더 신경 써야 했던 것을.....!
이 집의 주인이신 80대 프랑스 할머니께서는 브로치크기의 보석을 귀걸이로 하고 계시던 분. 동양풍 도자기가 있길래 "동아시아 도자기 같은데 어느 나라 건가요?"라고 물었더니, "선조 때부터 있던 건데 아마 청나라 도자기 일거야."라는 답을....!(la dynastie Qing) 캬.....청나라!질문에대답해 주신 것이지 집주인 할머니께서 집 안의그림이나 조각, 소장품들 언급은 아에 안 하시더군요.
전불어가 부족해서 조금이라도 더 알아들어 보려고 최선을 다해 경청했는데, 초집중 경청 자세가 마음에 드셨는지 계속 저만 보고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는 척 미소를 짓느라 집에 갈 때 즈음엔 입가에 경련이바르르...
식사를 하면서 주로 이루어지는 대화는 최근 파리의 유명한 공연이나 미술 전시. 혹은 제철인 과일이나 식재료, 음식.... 휴가나 여행 간 이야기.. 아주 가끔 시사적인 주제.. 전 주로 조용히 웃으며 열심히 귀 기울이는 경청의 끝판왕이 됨이요. 인상적인 점은 프랑스 노인분들은 자식 자랑을 별로 안 하신다는 것. 내 삶만으로 충만해 자녀까지 화제가 뻗어나가지 못하는 느낌이랄까요?
꽃피는 파리의 봄
어느덧 서울에도 봄이 왔습니다. 회색빛 도시 서울로 돌아와 대단지 아파트의 국민 평형에 살며 하루하루 분주하게 지내는 지금도... 가끔 눈을 감으면 파리의 봄 풍경이 떠오릅니다. 어디를 보아도 아름답고 고풍스럽던 빛의 도시. 형형색색 봄꽃으로 장식된 거리에 카페 테이블들이 밖으로 나오고, 여러 봄맞이 연주회 소식이 들려올 그 도시에서 여유와 풍유를 즐기며,우아한 노후를 누리고 계실은퇴 어르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