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운동할 시간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는 않으니

by 책다람쥐

운동을 하려면 운동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운동을 시작했다고 해서 24시간 외 더 쓸 수 있는 시간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어디선가 산신령이 나타나 "운동을 시작했다고? 그것 참 기특하구나. 옛다, 선물로 1시간을 주마! 마음껏 쓰거라!" 하는 일은 없다는 말이다. 운동 시간은 내가 쓸 수 있는 시간 안에서 조율을 해야만 확보할 수 있다.


퇴근 후 잠들기 전까지의 시간을 100%로 봤을 때, 운동하기 전의 나는 그중 40%를 집안일에 쓰고,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에 30%를, 책 읽기나 수업 준비 등으로 30%를 썼다. 집안일이 꽤나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데, 저녁밥 차리기, 설거지, 청소, 빨래, 장보기 등은 아무리 대충 하려고 해도 안 먹을 수 없고, 안 입을 수 없으니 시간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퇴근하자마자 저녁을 차릴 수 있으려면, 또 아이가 냉장고를 열었을 때 먹을 만한 간식이 있으려면, 미리 장을 보고 배송을 시켜두는 시간이 필요하다. 바쁜 아침 옷장을 열었을 때 바로 입을 수 있는 옷이 눈앞에 보이려면, 시기적절하게 옷 쇼핑을 해둔 나의 시간과 세탁기 돌리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는 나의 시간이 필요하다. 반들반들 윤이 날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그럭저럭 사람이 살 만한 환경을 만들려면, 청소에도 은근히 시간을 써야 한다. 각각은 긴 시간이 아니라고 해도 두세 가지 집안일의 조합은 뭉텅이 시간이 되어버린다.


그다음으로 많이 쓰는 시간은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 이 시간은 줄이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저녁 식탁 앞에서 그날 있었던 일을 나누며 노닥거리는 시간은 내게 너무 소중한 시간이고, 영어책을 읽게 하고 문제집을 풀도록 봐주는 시간은 영어 학원비를 아껴주는 시간이다. 가끔은 영어 외 과목에 대해서도 시시껄렁한 대화가 오가는 이 시간.

"엄마! 태정태세문단세 있잖아. 맨 마지막에 정순헌철고순이 안 외워져."

"음... 그렇다면 삼각관계 이야기를 해줄게. 정순이와 고순이가 헌철이라는 한 남자를 좋아했는데, 헌철이를 사이에 두고 정순이와 고순이는..."

항상 평화롭지만은 않다. 근심 걱정이 밀려오기 일쑤이며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기도 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만 허락된 시간이니 이 시간을 줄일 수는 없다.


결국 손을 대볼만한 시간은 책 읽기에 쓰던 시간뿐이다. 나는 내 안의 독서 진흥 팀장에게 지원 축소를 통보했다. 지금은 문화적, 지적 성장보다 신체 건강이 더욱 시급한 당면 과제라고 설득했다. 허리가 아파서 책 읽기 힘든 날이 생겨난 터라 금방 수긍하는 것 같았다.


책 읽는 시간을 줄이고 그 시간에 운동을 끼워 넣었다. 그 결과 내 독서량은 현저하게 줄었다. 그나마 주말을 이용해서 근근이 책 읽기를 이어가고 있지만 운동에 시간을 쓰지 않던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시간은 한정된 자원이다. 가끔 '내가 좀 더 일찍 운동을 시작했더라면'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랬더라면 운동에 밀려 하지 못한 다른 일들이 왜 없었겠는가. 이건 좀처럼 좋아지지 않는 운동 신경에 좌절한 나를 위로하는 말이 아니다. 힘도 없고 유연성도 떨어지고 스쿼트는 백날 설명해 줘도 아직도 자세가 안 나오고, 그래서 '좀 더 일찍 운동을 시작했더라면 달랐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는데...) 내가 운동을 시작한 시점이 나에게는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 아니었나 싶다.


딸아이가 해보고 싶다고 하여, 둘이 받으면 각각 받는 것보다 저렴하다는 이유로 받기 시작한 PT. 등록한 20회가 종료된 후, 딸아이는 자신의 한정된 시간을 운동보다 다른 데 쓰기로 했고 나는 계속해서 운동에 시간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아직 혼자서는 근력 운동을 이어갈 자신이 없어서 큰 마음먹고 PT도 연장했다. 한 때 같이 PT를 받았던 터라 내가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면 아이는 관심을 가지고 묻곤 한다.


"오늘은 상체 했어? 하체 했어?"

"하체. 근데 나는 왜 이렇게 스쿼트가 안 될까?"

"엄마 그거 알지? 스쿼트, 벤치 프레스, 데드리프트 합해서 드는 무게를 '3대 얼마'라고 하는 거. 우리 사회쌤은 '3대 500'이래. 엄마는 '3대 50'은 돼?"

"맨몸 스쿼트도 잘 안되는데, 나는 '3대 50'도 안 될걸?"


'3대 얼마'에 욕심낼 수 있는 운동 능력자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가. 덕분에 운동을 근근이 지속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할 수 있으니. 덕분에 '3대 50'을 가지고 딸과 함께 낄낄거릴 수 있으니.


딸아이와 나 사이의 이야기거리에 근력 운동이라는 주제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여기에 정확한 자세로 스쿼트 20회를 성공하는 날이 오기라도 한다면, 책 읽는 시간을 줄여 얻은 대가로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굳어질지도 모르겠다.




07-2.png


keyword
이전 06화노안(老顔), 그리고 노안(老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