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 안에서]01. 상담N년차지만, 말하는건 어려워

by 늦울림

'여전히, 무슨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



나는 N 년째 상담을 받고 있는 장기 내담자이다


상담을 받는다고 하면 흔히들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가서 하고 싶은 이야기 전부 다 털어놓고, 공감받고, 후련한 마음으로 돌아올 거라고!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나는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른다.


오늘도 그랬다.


"이번 주는 어떻게 지냈나요?"


이 질문에 침묵으로 답을 한다.



처음 상담을 시작했을 당시를 떠올려 본다


나는 제 발로 상담치료를 하겠다고 상담 센터에 찾아간 것과는 대조적으로 정말 말이 없었다


당시 첫 상담 선생님은 (처음이라고 한 이유는 현재 선생님과는 다르기 때문) 자유롭고 편하게 이야기해보라고 했지만 앉아서 입을 떼기가 힘들었다.


그냥 앉아서 머릿속에 죽고 싶다는 생각들만 가득했다


'죽고 싶다, 죽을까'


'다 그만하고 싶다'


그 어떤 말도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감정도 생각도 말로 내뱉는 것이 곤욕스럽고 입을 열어서 하는 말들은 대체로 다 부족하며 못마땅했다. 당시에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기억이 나냐고 묻는다면 지금도 자세하게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여전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를 때가 대부분이라서.



항상 그런 스스로가 늘 답답하고 괴로웠다. 때로는 말을 할 줄 아는 벙어리라고 생각했다.


하얀 책상과 하얀 의자에 앉아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끄덕이다 나오는 시간이 반복될수록 나는 자괴감을 얻어들고 상담실을 나오는 아이러니를 반복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안에 있는 이 답답하고 무거운 덩어리들을 조금이나마 꺼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기대감은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과정에 대한 회의감 속에서 사라져 갔다.


발버둥 칠수록 마음속에 돌멩이가 차곡차곡 쌓여가는 느낌이 들었다. 늪에 빠진 사람이 허우적대면 더 밑으로 빨려 들어가듯 나도 그러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 몇 년째 상담을 계속 받고 있는 건지를.


다행스럽게도 거기엔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런 시간들을 거쳐서 분명 지금은 조금쯤은 스스로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고


어느 정도 내 생각을, 감정을 꺼내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문장으로 첫 글을 시작하고 있다. N년차라는 단어가 무색하게도, 나는 아직도 내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잘 모르는 내담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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