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줄 아는 벙어리'
기억을 더듬어본다
몇년전의 기억
5년 차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혹은, 나라는 사람이 점점 사라져 가던 시기였다. 새로운 일들과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위축되고 하루하루 나라는 사람이 사라져 가는 것 같았다.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어려움이 극대화되었다. 어떻게든 감추고 살았던 결함들이 통제 범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사무실에 앉아 간단한 업무로 통화를 할 때도 상사에게 보고를 해야 할 때도 무언가를 물어봐야 할 때도 입을 열려고 하면 가슴이 조여 오고 입안이 너무 무거워서 입을 열지 못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숨이 막혔다.
하지만 회사는 침묵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말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모니터 오른쪽 구석엔 항상 메모장이 켜져 있었다. 뱉어야 할 말들을 시나리오로 적고, 상대의 대답을 상상하며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린 뒤에야 겨우 한마디를 뱉어낼 수 있었다. 해야 하는 말이 마치 폭탄과도 같이 느껴져서 끌어안은 채로 시간이 갈 때면 들리지도 않는 초침이 딸깍딸깍 들리는 것 같았다. 초조했다.
사람들 틈바구니에 앉아있어야 하는 회식은 너무 무서운 시간이었다. 집에 돌아와 밤새 울면서도 참석을 못 하겠다는 말을 할 수 없어서 갔다 와서 울며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모두가 나를 주시하고 비웃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있었다. 그리고 나 자신이 너무 비루해서 말하는 순간 모두가 비웃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말을 꺼낼 때마다 나를 조롱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영상이 되어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나를 주인공으로 한 비극적이고 초라한 영화가 수시로 상영되는 그 한가운데에서 자괴감은 점점 더 커져갔다
집안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족들은 내가 하는 긍정적인, 즐거운 이야기는 기꺼이 들어줬지만 힘들고 무거운 이야기는 알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 그저 나약한 인간으로 비칠 뿐이었고 집안에서도 내가 하는 말들은 아무에게도 닿지 않았다. 닿을 수 없다는 걸 알았으나 그땐 그것까지 생각하며 괴로워할 여력이 없었기에 생각하는 걸 접었다.
상담실에서의 침묵도 이 모든 것들의 연장선 위에 있었다. 답답하리만치 말없이 앉아있던 건 내 안에 눌리고 엉켜 거대한 덩어리들에 비해 말이라는 통로가 너무 좁아서 무엇을 어떻게 꺼내 들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라벨을 붙여서 감정을 꺼내야 하는지 생각을 표현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말할 줄 아는 벙어리인 채로 일상을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