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떠났다'
열린 창문 틈사이도 들어오는 바람에 여름이 가버렸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여름의 끝자락이라며 아직 여름이 가지 않았다고, 그렇게 붙잡아 두던 여름이 갔다.
여름을 보내기 전날 친구들을 만났다.
추천받아 가게 된 어둑한 펍안에서 은은한 불빛아래 음식들이 나왔다.
알배추찜, 닭다리살 오븐구이, 크림머쉬룸 파스타 등등
알배추의 달큰함이 혀끝을 감쌌다.
음식들을 입에 넣으며 큰소리로 웃고 떠들었지만
중간중간 불이 꺼지듯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는 찰나들이 스쳤다. 웃음과 웃음 사이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있는 것 같은 순간이 지나갔지만 즐겁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카페에서 딸기라떼를 마시고 마감시간이 되어 자리를 나설 때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어둑한 도로를 잠시 같이 걸었다.
영화가 끝나 스크린이 내려가듯 나는 아래로 저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었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상투적인 이야기를 잠시 주고받고 헤어졌다.
그게 올해 나의 마지막 여름밤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여름이 떠나감을 눈치챈 지금, 차가운 바람의 감촉을 기분 좋다고 느끼면서 우습게도 눈물을 흘린다.
날카로운 금속의 감각을 찾게 되는 괴로움이다.
여름이 가버린 것이 마치 내게 남은 푸르름이 이젠 다 떠난 거 같아서인 걸까
꽃이 피지 않았고 잎사귀 또한 무르익은 적이 없는데 스러질 일만 남은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헐벗은 고목이 되는 것뿐이라고
누군가는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
또다시 여름은 온다고
그러니 여름을 다시 기다리라고
그 사실이 더욱 절망스러운 건 이번 여름이 마지막이길, 작년처럼 올해도 바랐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