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여름, 대한민국의 군 안보 체계는 조용하지만 근본적인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국정기획위원회가 국군방첩사령부(이하 방첩사)의 조직 개편안을 사실상 확정하면서,
이제 방첩사는 ‘방첩’만 남고, 수사와 보안 기능은 모두 떼어주는 형태로 재편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방첩사는 군 내에서 ‘보안·방첩·수사’의 3대 축을 동시에 담당하는 막강한 기관이었다.
그러나 이번 개편으로 보안 업무는 국방정보본부와 각 군 정보작전참모부로,
안보 수사 업무는 국방부 산하 조사본부(옛 군 헌병 조직)로 이관된다.
방첩사가 자체 요청했던 ‘조사권’조차 허용되지 않으며, 실질적으로 방첩사는
순수한 정보수집 및 대응기관으로만 축소된다.
이 개편안의 결정적 배경에는 2023년 12·3 불법계엄 사태에의 방첩사 관여 의혹이 있다.
국정기획위는 해당 사안을 계기로, 방첩사라는 조직의 권한 집중과 폐쇄성이
군 내부 민주주의와 견제 원리에 어긋난다고 판단했고,
그 결과가 바로 이번 ‘기능 분리형 개편’이다.
사실 방첩사의 보안 기능은 매우 넓은 범위를 포함하고 있었다.
군·방산업체·연구기관을 대상으로 한 보안 측정(감사),
보안 사고 발생 시 조사 및 재발방지 대책 수립,
기밀 누출에 대한 감시 등 모든 사이버·문서·행위 기반 보안 대책의 총괄이었다.
이 기능은 이제 국방부 본부와 국방정보본부로 넘어가며,
실무는 각 군 정보참모부로 분산된다.
한마디로, ‘보안의 컨트롤타워’였던 방첩사는
더 이상 실질적인 보안 주체가 아니라 관찰자에 가까운 입장이 되는 것이다.
더 큰 변화는 수사 기능의 분리다.
방첩사는 그간 국가보안법, 군사기밀보호법, 내란·외환·반란 등 10가지 안보 범죄에 대해 군사법원법 제44조에 따라 직접 수사권을 행사해왔다.
하지만 이제 이 모든 권한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이관되며,
방첩사는 입건 전 단계의 조사권조차 가지지 않게 된다.
방첩사 내부에서는 반발도 있다.
연간 입건 수가 많지 않다고 해서 수사 업무가 가볍다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2021~2023년 사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입건 13건,
국가보안법 위반 입건 1건이 있었으며,
이 사건들은 단순한 현행범 단속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은밀한 추적이 필요한 사안이었다.
또 하나의 쟁점은 ‘신원조사권’ 유지 여부다.
현재 방첩사는 2성 장군 이하 장교, 4급 이하 군무원에 대해
준법성·직무자세·대인관계 등 전방위적 인물평가를 수행하고 있고,
그 내용은 장병의 인사 평가에까지 반영된다.
그러나 이 ‘세평 기반 인사자료’는 오남용 소지가 크고,
장병들의 인권 침해와 인사권 사적 개입의 통로로 악용될 수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기무사에서 안보지원사로 개편될 당시에도
해당 기능의 폐지가 검토됐으나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막힌 바 있다.
이번 국정기획위 안에서는 신원조사 기능 폐지 또는 축소가 우세한 분위기로 알려졌다.
이번 조치는 군 정보체계의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려는 큰 흐름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보안→방첩→수사’로 이어지던 안보 연계망은 이제 기능별로 분산된다.
그로 인해 기능적 전문화와 권한 분산은 이루어질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정보와 수사의 유기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동시에 존재한다.
실제로 각 기능 간 긴밀한 협조가 없을 경우,
잠재적 위협이 ‘보고→판단→조치’로 연결되는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정기획위는
“민주적 통제가 우선”이라는 원칙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불법계엄 사건에서 방첩사가 어떤 역할을 했든,
그 결과로 조직 개편이 추진된 지금, 군 내부 권력의 균형과 투명성 확보가
국민적 요구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놓쳐선 안 되는 것이 있다.
안보는 정치도, 보복도 아닌 전문성과 지속성의 문제라는 점이다.
방첩사라는 조직이 그간 어떤 실책을 저질렀든,
그들이 맡아왔던 정보전·방첩전의 최전선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보안과 방첩, 수사의 균형 있는 재배치와 협조 체계 없이 이뤄지는 단편적 분리는
오히려 군의 보안 대응 능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번 개편안은 안규백 국방부 장관 후보자의 취임 이후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그 결정은 단순한 조직 변경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방의 정보 체계와 민주주의 간 균형을 어디에 맞출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 될 것이다.
우리는 오늘, 방첩사라는 조직의 변화를 통해
국가안보와 민주주의, 권한과 통제의 균형이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