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장님, 졸업식 때 뵐 수 있을까요?”
어느 해 겨울, 사관학교 졸업을 앞둔 한 생도가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은 존경과 애정의 표현이라기보다, 일종의 체념 섞인 농담에 가까웠다. 생도들은 잘 알고 있다. 자신들의 입학을 축하해주던 학교장이, 졸업식 날에는 자리에 없을 거라는 것을.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 사관학교의 현실이다.
육군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 공군사관학교, 그리고 국군간호사관학교까지. 국가가 책임지고 양성하는 장교의 출발점에서, 그 상징이자 교육 철학의 방향타인 학교장이, 정작 생도들의 4년 여정을 함께하지 못한 채 떠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학교장의 평균 재임기간은 1.5년. 생도 교육의 반의 반도 책임지지 못하고 자리를 옮기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행정의 문제가 아니다. 리더십이란 곁에 머물고, 함께하고, 끝까지 책임질 때 비로소 영향력을 갖는다. 특히 사관학교처럼 리더십을 가르치는 기관에서, 수장이 자주 바뀌는 것은 교육의 일관성과 철학, 그리고 상징성을 흔드는 심각한 구조적 약점이다.
미국의 웨스트포인트는 사정이 다르다. 이곳의 학교장은 4년 이상을 기본 임기로 삼는다. 한 명의 리더가 입학생들의 4년을 온전히 함께 책임진다. 중간에 인사를 통해 바뀌는 일은 거의 없다. 그것은 리더십의 연속성에 대한 신념이자, 교육의 무게를 존중하는 제도적 장치다. 학교장은 단지 조직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철학으로 학교를 이끌고, 한 세대의 장교를 길러내는 사람이다.
영국 육군사관학교 샌드허스트 역시 마찬가지다. 영국은 사관학교장을 ‘교육을 설계하는 지휘관’으로 바라본다. 단기성과를 내는 관리자보다는, 철학과 가치를 구축하는 장기 리더로 대우한다. 그래서 샌드허스트는 교육의 연속성이 살아 있다. 장교 후보생들은 매년 바뀌는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그들이 듣는 리더의 목소리는 한결같다.
그런데 왜 우리는, 사관학교의 총장을 ‘교체 대상’으로만 여기는가?
왜 장교 리더십을 책임지는 핵심 교육기관의 리더가, 겨우 1~2년 머물다 떠나야 하는가?
왜 ‘군 인사시계’에 맞춰 교육기관의 수장이 교체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는가?
실제로 대한민국 사관학교의 학교장은 군 인사 원칙에 따라 다른 보직들과 마찬가지로 1~2년 단위로 교체된다. 다음 정기 인사 시기가 다가오면, 학교장도 인사 대상자로 이름을 올리고, 짐을 싼다. 그가 설계한 교육혁신안이 채 적용되기도 전에, 그 자리를 다음 사람에게 넘기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단지 리더가 바뀐다는 사실이 아니다. 리더가 바뀌면서, 사관학교의 중장기 비전이 리셋된다는 데 있다. 새로운 학교장이 오면, 새로운 방향이 생기고, 기존의 계획은 흐지부지되기 십상이다. 교수진은 매년 새로 등장하는 리더십에 적응하느라 지치고, 생도들은 연속성 없는 교육 철학 속에서 길을 잃는다.
더 나아가, 이러한 구조는 교육기관의 정체성을 위협한다. 사관학교는 단순한 병과학교가 아니다. 그곳은 군인의 정신, 리더십, 가치관을 처음 심는 곳이다. 그런 학교에서 리더십 자체가 1.5년마다 흔들린다면, 우리가 육성하려는 장교는 무엇을 보고 성장해야 하는가?
더 안타까운 것은, 지금의 구조가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는 점이다.
‘군은 원래 순환보직이니까’, ‘학교장도 장군이니까’라는 이유로, 이 구조는 지금껏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한 번쯤 물어야 한다. 그 순환이 정말 필요한 순환인가? 아니면 익숙하다는 이유로 반복되는 비효율인가?
사관학교에서 학교장은 단지 관리자일 수 없다. 그는 교육자이며, 리더이며, 철학자여야 한다. 한 기수를 입학부터 졸업까지 함께하며, 그 안에서 철학을 심고 리더십을 보여주는 존재여야 한다. 그것이 군 리더십의 상징인 사관학교 수장에게 우리가 기대하는 최소한의 모습이다.
미국과 영국이 그 가능성을 이미 보여주고 있다면, 우리는 이제 따라가야 한다.
단기 보직이 아닌, 한 세대의 리더십을 끝까지 책임지는 장기적 교육 리더십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장의 임기를 최소 4년으로 보장하고, 군 인사 체계 내에서 ‘교육기관 예외보직’ 제도를 새롭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 사관학교의 리더십은 단기성과로 측정되는 자리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군 인생을 바꾸고, 나아가 군 전체의 미래를 바꾸는 자리다. 그 자리에 ‘짧은 관리자’가 아니라 ‘깊은 리더’를 세워야 하는 이유다. 사관학교 생도들은 4년간 국가를 믿고 훈련과 공부에 모든 것을 바친다. 그 4년을 함께할 수 없는 리더라면, 과연 그 자리에 설 자격이 있는가?
학교장은 마지막 졸업식까지 생도 곁에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 리더십이며, 우리가 지금 바꿔야 할 사관학교 교육의 시작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