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 앞둔 군인, 군 관사에 계속 살 수 있을까?

by 김재균ㅣ밀리더스

1. 군 관사, 단순한 ‘집’이 아니다

군 관사는 군인에게 단순히 머무는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군인의 삶을 지탱하는 기반이며, 가족이 함께 안정을 누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보장책이다. 군인의 생활은 언제나 이동과 변화의 연속이다. 부대 전속, 파견, 파병 등으로 생활 터전을 옮겨야 하는 경우가 잦고, 이는 군인뿐 아니라 가족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관사는 단순한 주거 지원이 아니라, 군 복무를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아이들의 학교, 배우자의 직장, 가족 공동체의 안정까지 모두 관사와 얽혀 있다. 이번 사건 역시 바로 그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2. 한 군인의 사연

A 씨는 2000년 임관 후 국군화생방방호사령부에서 오랜 기간 근무했다. 그와 그의 가족은 서울 송파구의 군 관사에서 생활해왔다. 송파구는 교육 인프라와 생활 환경이 좋아 군인 가족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2021년 3월, 그는 다른 부대로 전속되며 관사를 비워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러나 다행히 규정에 따라 중·고등학교 자녀가 있어 퇴거 유예를 받을 수 있었다. 그 덕분에 2024년 2월까지는 관사에 머무를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전역을 불과 1년 앞둔 그는 또다시 유예를 신청했다. “전역 예정자는 유예 가능하다”는 규정을 근거로 했다. 그러나 사령부는 리모델링 공사를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행정소송을 택했지만,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3. 법원의 판단: 원칙과 재량

서울행정법원은 분명히 말했다. 국가는 군인의 안정적 생활을 위해 주거 지원을 제공해야 하지만, 그것이 원하는 지역, 특정 관사에 머물 권리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원칙은 명확하다.

전속 시 기존 관사를 비우고 새로운 부대 관사로 이전해야 한다.

퇴거 유예는 예외적 제도로, 사령부의 재량에 속한다.

특히 송파구와 같은 인기 지역은 수요가 높아 다른 군인 가족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합리적이다.

법원은 “재량권 남용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4. 군인의 삶과 가족의 현실

군인의 인생에서 전속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러나 가족에게는 이것이 곧 이사, 학교 전학, 생활 기반 붕괴를 의미한다. 전역을 앞둔 군인이라면 더더욱 안정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입시를 앞두고 있고, 가족은 군 이후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

A 씨의 사례는 많은 군인 가족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마지막까지 안정적으로 지내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한정된 자원인 관사를 두고, 군은 늘 배분의 문제를 마주한다.


5. 구조적 문제: 수도권 관사 부족

사건의 배경에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수도권 관사 부족이다. 송파구, 용산, 성남 등 인기 지역의 관사는 항상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전속한 군인 가족들이 새로 입주해야 하고,

기존 거주자 중 예외 규정 적용 대상도 많으며,

전역 예정자까지 고려해야 하니, 관사 운영은 언제나 ‘제로섬 게임’이 된다.

리모델링 공사까지 겹치면 선택지는 더 좁아진다.


6. 전역 앞둔 군인과 주거 불안정

전역을 앞둔 군인들은 새로운 삶을 준비해야 한다. 취업, 창업, 이사, 자녀 학업 등 할 일이 많다. 그러나 이 시점에 주거 불안정이 겹치면 부담은 배가된다.

“군 생활의 마지막을 안정적으로 마무리하고 싶다”는 요구는 정서적으로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제도는 원칙을 앞세우고, 한정된 자원을 고려해야 한다. 이 간극이 이번 소송의 핵심이었다.


7. 군의 재량, 그러나 배려는 필요하다

법원은 군의 재량을 인정했다. 하지만 정책적 차원에서 보자면, 재량 속에서도 더 세밀한 배려가 필요하다.

전역 예정자에게 일정 기간 ‘소프트 랜딩’ 지원을 강화할 수는 없는가?

수도권 관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간 임대와 연계한 지원책은 없는가?

군인 가족의 학업 문제를 고려한 장기적 대책은 가능한가?


8. 해외 사례에서 배우는 관사 제도

해외 군대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미국: 군 관사 외에도 주거 수당을 지급해 군인이 원하는 지역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준다.

이스라엘: 전역 시 주거 안정 지원을 포함한 사회 적응 패키지를 제공한다.

영국: 전역 군인 가족에게 일정 기간 ‘전환 주택(transition housing)’을 제공해 민간 생활로의 연착륙을 돕는다.

우리 군의 관사 정책은 여전히 공급 중심적이고, 융통성이 부족하다.


9. 정책적 제언

이 사건은 우리에게 몇 가지 정책 과제를 던진다.

관사 수급 불균형 해소: 수도권 신규 건립, 민간 임대 연계 확대.

전역자 주거 지원 강화: 전역 예정자에게 최소 6개월~1년의 안정적 거주 대안 마련.

군인 가족 배려 정책: 자녀 학업, 배우자 직장 등을 고려한 맞춤형 퇴거 유예 기준 필요.

군인의 삶의 질 중심 관사 운영: 단순한 배정·퇴거가 아니라, ‘군 복무 지속성’을 강화하는 제도로 재설계.


10. 결론: 집 한 칸을 넘어, 군인의 삶으로

송파구 관사에 남고 싶었던 한 군인의 소송은 패소로 끝났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단순히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군인의 주거 안정과 가족의 삶, 그리고 군 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법원은 원칙을 강조했다. 그러나 제도는 인간의 삶을 담아내야 한다. 군인이 안정된 삶을 누릴 때, 비로소 그는 사명에 전념할 수 있다. 관사 문제는 단순한 집 한 칸의 문제가 아니라, 군인의 사기와 국가 안보를 지탱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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