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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훈련 중 사고 ‘중대재해처벌법’ 적용할 수 있을까?

by 김재균ㅣ밀리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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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안전을 위한 새로운 도전

2025년 9월, 육군이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바로 군 훈련 중 발생하는 사고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소식은 단순한 법률 적용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가 군 장병의 안전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또 군 조직이 어떻게 변화를 수용할 것인지와 직결된다.


군 훈련은 왜 ‘특수 영역’으로 불려왔나

군은 본질적으로 위험을 전제로 하는 조직이다. 총기, 폭발물, 전투 장비, 야간 훈련, 혹한기·혹서기 훈련 등 그 자체가 일반 산업현장보다 훨씬 더 위험요소를 많이 안고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군 내 사고는 일종의 “불가피한 위험”으로 치부되거나, 지휘관의 관리 소홀 차원에서만 징계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사회적 눈높이는 달라졌다. 산업현장에서 노동자 한 명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안전모 착용, 추락 방지망 설치, 화학물질 관리까지 법으로 강제하는 시대다. 그렇다면 국가가 징집하거나 고용한 군 장병의 생명은 예외일 수 있을까? 이 질문이 바로 이번 연구의 출발점이다.


파주 포병부대 사고가 남긴 교훈

지난 9월 10일, 경기도 파주시의 한 육군 포병부대에서 모의탄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장병 10명이 다치는 큰 사고였다. 이 사건은 군의 안전 관리 실태에 대한 사회적 의문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민간 기업이었다면, 이런 규모의 사고는 당연히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다. 하지만 군에서는 ‘전투준비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사고’라는 이유로, 법적 적용의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군도 법의 보호망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요구가 커진 것이다.


육군의 움직임: 연구용역 착수

육군은 최근 ‘중대재해처벌에 관한 법률의 군 적용 방안’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이번 연구의 목적은 명확하다.

대상과 범위: 군 훈련·교육 중 사고가 중처법 적용 대상인지 판단

사례 분석: 민간기업 판례, 경찰·소방 조직의 적용 방식, 해외 군 사례 검토

책임 구조: 부대 자체 사업과 도급·용역 사업에서 지휘관·발주자·수급자 간의 법적 책임 구분

결국 군 특수성을 반영하면서도 장병 보호라는 대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적용 모델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후속조치 강제화, 조직개편까지 검토

지금도 군에는 ‘전투준비안전단’이라는 안전 전담 조직이 있다. 문제는 이 조직이 안전진단 결과를 내더라도 후속조치 의무가 없다는 점이다. 권고 수준에 그치니, 사실상 유명무실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육군은 이번 연구에서 “안전진단 결과를 반드시 이행하도록 법적 강제성을 부여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더 나아가 군단·사단급 단위별 안전 전담조직 신설 필요성까지 들여다본다. 이는 단순히 법 적용을 넘어서 군의 안전 관리 체계 자체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경찰·소방과의 비교

군과 비슷하게 위험을 전제로 하는 조직으로는 경찰과 소방이 있다. 경찰은 시위 진압이나 범인 검거 과정에서, 소방은 화재·재난 현장에서 생명 위험에 노출된다. 이들 조직 역시 중처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범위를 두고 많은 논의가 있었다. 육군은 이번 연구에서 경찰·소방 사례를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그 과정에서 군 특수성에 맞는 ‘절충형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해외 군 사례 역시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전망이다.


군의 입장과 사회적 의미

육군은 지난 7월 ‘육군 스마트 안전전략 세미나’에서 이미 중처법 판례 분석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번 연구는 그 연장선상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육군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민간기업에 대한 판례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군 적용 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정책연구 용역을 추진하고 있다. 장병들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현장 중심의 안전 정책을 추진하는 데 활용할 것이다.”

이 발언은 단순한 형식적 연구가 아니라, 군 내부에서도 변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앞으로의 과제

물론 현실적인 과제도 만만치 않다. 군 훈련은 본질적으로 위험이 수반되며, 사고 발생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따라서 지휘관이나 간부에게 과도한 형사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는 군 조직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 장병이 국민의 아들이자 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훈련 중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논리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사회 전체가 안전 기준을 높여가는 시대에, 군만 예외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맺음말

이번 육군의 연구 착수는 군 조직이 ‘안전 불감증’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법 적용 여부만이 아니라, 군 안전 문화 자체를 바꾸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장병의 생명과 안전은 국가 안보 못지않게 중요한 가치다. 오히려 튼튼한 안보는 안전하게 지켜진 장병들의 헌신 위에서만 가능하다. 군 훈련 중 사고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는 날, 대한민국 군대는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국민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중대재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중대산업재해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사고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한 경우

동일한 원인으로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한 경우

중대시민재해

공중이 이용하는 시설이나 공중교통수단의 결함·관리소홀로 사망·부상·질병이 발생한 경우


주요 내용

경영책임자(대표이사, 기관장 등)는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인력·예산을 투입하며, 위험요인을 개선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를 위반해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형사처벌을 받는다.


처벌 수위

사망사고: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

부상·질병: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

법인(회사) 자체도 최대 50억 원 이하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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