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일까

by 나자영

퇴근하는 길에 아는 사람을 우연히 마주쳤다. 이번에도 또, 우연일까?


생각보다 나는 자주 아는 사람을 길에서 마주친다. 주변 사람들과 이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면, 그리 흔한 일은 아니라고들 한다. 내가 마주친 사람들은 대부분 10여 년 만에 보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에 만나고 그 뒤에는 단 한 번도 안 봤던 사람들. 벌써 세 번째다. 그것도, 세 번 모두 같은 동네에서 말이다. 작년 여름에 아는 사람을 횡단보도에서 우연히 마주쳐서 연락해서 밥을 같이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새해에는 백화점에서 또 다른 사람을 마주쳤는데, 상황이 안 도와줘서 아는 척을 못했다. 아는 사람을 모른척하는 이유의 주인공인 그. 그때 그에게 다가가서 인사도 못하고, 메일만 보내고는 답을 못 받아서 가끔 생각이 났었다. 특히 그를 봤던 그 장소에 가면 요즘에도 문득문득 생각난다. 이 날도 그 장소로 향하고 있어서 잠시 그를 생각하고 있던 찰나, 또 다른 아는 사람을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마주쳤던 것이다. 이번에 만난 사람에게는 용기 내어 다가가 인사를 했다. 통화 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언니는 나를 알아보고서 너무 신기하다고, 우리 이렇게 같은 동네에 가까이 있었는데 몰랐었다고, 한참을 방방 떠서 이야기했다. 이 언니는 최근 다른 지인 결혼식에서 잠시 스치듯 보고 연락처만 주고받았던 터라, 서로 이야기를 더 못 나누어 아쉬웠었다. 그렇다고 연락을 따로 할 핑곗거리도 없고 뭐해서 그냥 카톡 프사가 올라오는 걸 보는 정도의 사이. 그런데 이렇게 마주치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언니도 너무 신기하다며, 이건 우리가 만나라는 뜻인 것 같다며, 우리 꼭 보자고 약속까지 했다.


신기하면서도 얼떨떨하고 이게 과연 모두 우연일까 싶다. 횡단보도에서 마주친 사람도, 백화점에서 본 사람도, 이번에 퇴근길에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본 사람도, 모두 그때 그 시절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다. 내가 각자 그 세 사람을 아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넷이 모두 같은 시절을 보낸, 모두 서로 아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다시 생각을 정리하고 쓰고 보니 정말 놀라운 일은 맞는 것 같다. 흔히 있는 일은 아닌 게 분명하다. 우연은 아닐 텐데 그러면 왜 나는 그들을 여기서, 지금 보게 되는 걸까. 이렇게라도 옷깃을 스쳤던 사람들을 모두 보고 그 시절의 나와, 그 시절의 사람들과 화해를 하라는 하늘의 뜻인 건지, 이제는 도무지 모르겠다.


사실 세 사람 모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지만 10여 년 동안 시간이 멈춘 듯 만나지 않았던 것은, 내 안에 어딘가 있는 불편함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들과 함께한 그 시간과 공간들 속에 결코 나는 편하지 않았다. 그들이 좋고 싫고를 떠나서 그때에 환경이 어려웠고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많다. 그 시절에 셀 수 없이 많은 상처들을 입었고, 함께한 공간에서 추억도 많았지만 아픔도 많았다. 그리고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렸고 지금은 내가 많이 달라져 있어서 여기서 오는 괴리감도 있다. 새로운 모습의 나를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솔직히 겁도 난다. 횡단보도에서 만난 사람과의 약속 장소로 갈 때 어딘가 긴장이 됐던 것처럼.


최근 퇴근길에서 만난 언니와 연락을 다시 해서 조만간 만날 것 같다. 대화를 하다 보면 그전에 봤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오겠지. 이렇게 연을 이어가는 것도 신기하다. 다시 이어질 연들이 과연 또 얼마나 오랜 시간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살다 보면 내가 특별히 원치도 않았고 생각지도 못했던 연들이 이어지기도 하고, 붙잡고 싶었던 연들은 실이 녹듯 서서히 멀어지기도 하는 것 같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다른 건 다 통제하더라도 사람이 절대 통제하지 못할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바로 '관계'일 것이다. 점점 느끼는 바이지만, 인간관계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온전히 신의 영역인 것 같다. 신의 영역을 인정하고, 나도 이어지고 멀어지는 연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살아가기를 바라본다.


오랜만에 암울했던 나의 일상 속에 재밌는 이야기들이 꽃피울 것 같아서 신이 나는 요즘이다. 이 감정이 조금은 오래 머물러 주기를, 하루를 시작할 때 나에게 힘이 되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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