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이 나를 살린다

by 나자영

요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없던 위염이 생길 지경이다. 정치는 정치대로 머리가 아프고, 회사는 회사대로 골 때린다. 결국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나를 둘러싼 환경들, 관계들이 나를 힘들게 만든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관계가 너무 어렵다. 시간이 지나도 관계는 계속 힘들 것 같다. 내가 처음에 판단을 잘 못했나 싶을 정도로 요즘에 사람들이 너무 여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 친구를 만드는 것 픽션인 것 같다. 퇴사한다면 모를까. 나는 경쟁하기 싫은데 상대방은 자꾸만 경계하는 것이 느껴지면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말 한마디 한마디 속에 의중을 알 수가 없다. 그러면 대화가 대화가 될 수 있나. 그래서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다. 그저 형식적인 얘기들만 오고 간다. 함께 하는 하루 8~9시간이 숨 막힌다. 그렇게 하루동안 숨을 안 쉬었다가, 회사 문을 나설 때 그제야 숨을 내쉰다. 순간순간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이게 무슨 짓인가? 그만두고 다른 데 알아볼까? 하루에 수십 번 아니 아마 수백 번 이런 질문들이 머리에 가득하다가 퇴근하고 반복한다. 그런데 그만두면 누가 월세 내고 누가 나를 키우나? 내가 나를 키워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죽지 못해 살고 있는 내 모습, 우리들의 모습이 너무 서글프다.


그렇다면 이렇게 한탄스러운 매일 속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뭘까?


결국 루틴이 나를 살린다. 억울하고 분한 요즘 내가 그래도 이성의 끈을 놓지 않고 겨우 부여잡고 살 수 있는 것 정해져 있는 그놈의 지겨운 습관들 때문이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 창문을 열어 새로운 날의 새로운 공기를 맡는 것.

깨끗이 씻고 나를 정돈하고 아침을 챙기는 것.

지하철에 올라타 칸과 칸 사이에 있는 벽에 기대어 책 한 권을 꺼내어 몇 장이라도 읽는 것.

회사까지 걸어가며 파란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는 것.

회사에 도착해서 텀블러를 세척하고 물 한잔을 마시는 것.

... 그리고, 하루동안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

퇴근하고 누구보다 빨리 집으로 돌아와 잠시 냉장고 앞에 앉아서 멍 때리는 것.

하루동안 몸에 묻은 먼지들, 마음에 쌓인 먼지들을 털어내고 씻어내는 것.

나를 위한 저녁 한 끼를 챙기고 부모님께 안부 전화 하는 것.

전날의 그릇은 물기를 닦아서 정리하고, 저녁 먹은 그릇은 곧바로 설거지하고 주변 정리를 하는 것.

바닥 청소를 한 번 하고 돌돌이로 마무리하는 것.

책상에 앉아 은은한 배경음악, 따뜻한 차와 함께 오늘의 성경필사를 하고 단톡방에 인증샷 올리기.

잘 준비를 하고 침대에 누워 내가 좋아하는 영상 하나를 골라서 보고 밤 10시에 잠들기.


때로는 하기 싫은 일들, 집안 살림들이 나를 살리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챙겨야 할 집이 있기에.

내가 키워야 하는 내가 있기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빠더너스 문상훈처럼 태교 하듯 살아보자.

오늘은 속으로, 또 입 밖으로 나쁜 말들을 하고 소리도 질렀는데, 오늘만 그러고 내일부터는 그러지 말자.

다시 나를 잘 보살피고, 좋은 것만 먹이고, 좋은 것만 보여주고 들려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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