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적인 남자와 즉흥적인 여자

ISTJ vs ENFP

by 이수정

이 둘은 서로의 다른 점에 끌려서 연애를 했고, 결혼도 했다. 또한 아이 두 명을 낳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점이 하나 없는 것 같았지만, 제일 중요한 한 가지.. 같이 있으면 즐거웠다. 그의 행동과 말과 유머가 그녀에게는 취향 저격이었다. 그렇다. 이것은 우리 부부의 이야기이다.


우리 남편은 객관적인 팩폭러이다. 그리고 나의 잘못된 점을 바로 잡아주기 위해 특명을 받고 어딘가(?)에서 파견된 사람 같다. 집에서 하는 이런 실수를 직장에서 하면 안될 것 같으니 본인이 바로 잡아 주겠다는 것이다. 나는 기어코 괜찮다고 해도 본인은 안 되겠단다. 처음에는 반항도 했고, 부정도 했고, 도망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내 붙잡혔고 나의 잘못을 인정했으며, 후에는 나만 잘못한 것은 아닐 거야.. 남편의 실수 하나하나를 매의 눈으로 살폈다. 실수가 하나라도 포착되면 매가 아니라 한 마리의 독수리, 아니 사자 마냥 으르렁 돼야 속이 시원했다. 그러나 우리의 지적과 싸움은 한 명이라도 웃음이 터트리는 사람이 지는 게임 같은 것이었다. 지적이 싸움이 된 날엔 나는 동굴 속으로 숨어서 다음날까지 말을 하지 않으려 했으나.. 남편은 내가 누워있는 방에 들어와 기어코 웃기고 나서야 안심된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그렇게 싸우는 시간보다 웃고 장난치는 시간이 더 많았다.


한 에피소드를 풀자면, 남편과 나는 4 교대 근무를 하고 있는데 내가 주간근무를 하는 날이면 남편은 야간근무를 들어가야 되기 때문에 내가 적어도 1시간 반 이내에는 집에 도착해서 육아 교대를 해 줬어야 했다. 즉흥의 대명사인 나는, 주간근무를 마치기 2시간 전.. 같이 근무하는 직원 두 명과 ‘따릉이(서울시 공유 자전거)‘얘기를 하였다. 직원 한 명이 말했다.

“저는 따릉이로 출퇴근하는데, 우리같이 육아하는 사람들은 시간도 아끼고 운동도 되고 너무 좋아요. 부장님도 한번 타보세요.”

“아 진짜요? 정말 좋네요~ 말 나온 김에 오늘 타고 퇴근해 볼까요 “

나는 핸드폰 어플에 그 직원이 알려준 대로 따릉이 어플을 다운로드하고, 하루치를 결재할 수 있지만, 오늘 하루만 타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고 한 달 치를 결재하였다. (하지만 이 날 하루만 타고 한달동안 탄 적이 없다.)그리고 네이버 지도 어플을 켜서 자전거 모양 이모티콘을 눌러 한강을 따라 집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검색해 보았다. 1시간 25분이라고 떴다. “오? 이 정도면 갈만 한데?”


이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착착 진행되어 갔고, 옆에서 우리 얘기를 듣던 다른 직원은 본인도 오늘 ‘따릉이‘를 타고 퇴근하겠다고 힘을 보태었다. 갑자기 엔도르핀이 확 돌았다. 그런데 후에 생각해 보니, 우리 직장은 용산구에 있었고 처음 따릉이로 출퇴근한다는 직원 1의 집은 성동구, 오늘 따릉이로 퇴근할 거라던 직원 2의 집은 같은 용산구에 있었다. 우리 집만 ’ 도봉구‘라는 사실을 별로 크게 생각하지 않던 나는, ’오히려 운동 더 되고 좋아’라고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주간 근무를 마치고 따릉이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따릉이 어플을 켜고 맘에 드는 따릉이 한대를 골랐다. 그리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남편에게 카톡을 했다.

“여보 나 오늘 따릉이 타고 퇴근할게. “

그 말만 덩그러니 남기고, 나는 폰을 가방에 넣어 버렸다. 남편이 출근하기 전까지 집에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한강의 야경과 강바람을 맞으며 달릴 생각을 하니 한껏 신이 난 생태였다. 그리고 처음 탄 따릉이 사진을 찍어 sns에 업로드하였다.


용산구 한남대교 근처에서 출발한 나의 따릉이는 동호대교, 성수대교를 건너 중랑천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가는 길에 여유롭게 내려 반짝이는 한강다리 사진도 찍고 셀카도 남겼다. 강바람이 나의 머리카락과 볼을 쓰다듬어 주었다. 가는 길에 좋아하는 노래도 듣고, 엄마랑 이어폰으로 통화도 하였다. 하지만 좋은 시간은 잠시뿐, 자전거 타는 시간이 한 시간..한시간 반을 넘어가고, 두 시간을 넘어갈 때쯤 카톡으로 대답이 없던 나에게 남편의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전화받을 힘도 없었지만, 일단 받았다.


“아니 지금 자전거를 타고 집까지 오는 게 말이 돼? 그리고 나 출근 늦어서 팀장님한테 전화까지 했잖아. 꼭 이렇게 무슨 일이든 해봐야 알겠어??!”

(참고로 남편은 출근시간에 여러 변수를 생각해서 남들보다 30분 일찍 출근하는 사람이다.)

남편이 불 같이 화를 냈지만, 나는 대꾸할 힘 따위 남아 있지 않았다.

“헉헉 여보 미안해.. 지금 석계역쪽인데 진짜 조금만 가면 다 왔거든? 근데 나 너무 힘들어…”


내 다리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페달을 돌리고 있었다. 감각을 상실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 따릉이 보관소가 있다면 냅따 따릉이를 주차시키고 택시를 탔을 것이다. 하지만 중랑천에는 따릉이의 집이 없었다. 나는 일단 화가 난 남편을 달래고, 더욱 힘차게 페달을 밟아 집까지 겨우 도착해 풀린 다리를 붙잡고 현관문을 열었다. 따릉이를 한번 탈 때 ‘2시간’으로 설정했던 어플에서 22분이 초과 됐으니 초과분이 자동 결재 되었다고 알람이 와있었다. 집까지 오니 따릉이로 퇴근한 시간은 2시간 22분이었다. 총 20킬로를 따릉이를 타고 달렸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다리가 풀려 거실에 주저앉은 나를 보고 남편은 한번 쳐다보고는 급하게 출근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황당한 나의 에피소드… 남편은 그 후로 따릉이만 보면 PTSD가 올 것 같다고 하였다. 따릉아.. 너는 아무 잘못이 없어.. 너는 하던 대로 하면 돼.. 반성은 내가 할게..


(+)그 후 있었던 일

참고로, 내가 처음 선택한 따릉이는 ‘새싹‘따릉이로 밝혀졌다. 새싹 따릉이는 초등학생이나 저학년이 타는 따릉이로 안장이 일반 따릉이 자전거보다 낮아서 성인이 타면 힘들다고 한다.


내 sns에서 따릉이 사진을 본 직원 1 왈: 부장님 왜 새싹 따릉이를 빌리셨어요..???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