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심이 뭔가요 먹는건가요
저번 연재일에 썼던 남편과의 작은(?) 에피소드 글이 꽤 관심을 끌어 오늘은 남편과의 다른 일화를 풀어 볼까 한다. 남편은 나의 매력을 그렇게 생각한다.(구체적으로 물어보진 않았다.) 나이 답지 않게 때 묻지 않은 순수함.. 이것은 여자아이들의 작고 귀여운 ‘에쿵‘느낌의 순수함이 아니다. 남편의 표현을 빌리자면 초등 3-4학년 정도의 남자아이들의 순수함이라고 한다. 참고로 우리 첫째 아이가 초2이다. 이것은.. 그렇다. 나랑 첫째랑 수준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남편 앞에서는 아이가 된다. 남편은 나를 본인이 챙겨야 되는 큰딸 정도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큰 딸이 본인보다 두 살이 많다는 것이다. 족보가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가 없다. 그런데도 남편은 나를 꽤나 귀여워한다. 나랑 제일 닮은 것이 ‘오리’라면서 지나가다가 오리만 보이면 사진을 찍어 보내고, sns에서 오리 릴스가 보이면 나를 태그 해서 보라고 하고, 오리가 세상에서 제일 귀엽다고 한다. 그리고 종이에 내 얼굴을 그리면서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캐릭터처럼 생겼지? “ 하면서 웃곤 한다. 처음에는 저 사람.. 뭐 하는 거지 싶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그만의 애정표현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남편 앞에서는 누구보다 ‘나 자신’이 된다. 꾸밈없는 나 자신. 자유로운 나 자신 그대로가 된다. 이런 모습이 나는 좋다. 10년 가까이 나의 여러 모습(안좋은 모습가지도) 봐 왔을 것인데, 남편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남편은 변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결혼 전 연애할 때도 처음부터 잘해주면 나중에 처음처럼 안 해주면 실망하지 않겠냐고 한결같음을 유지하는 사람이었다. 이를 테면 거창한 데이트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옆 동네에 살던 우리는 근무가 마치면 만나서 동네 산책을 하고, 걸어서 영화관을 가서 영화를 보고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그리고 공원에서 포켓몬을 잡으러 다녔다. 고등학생의 연애가 아니고 이것은 30대 초반의 연애였다. 그런데 나는 좋았다. 그 사람과 손잡고 걸을 수 있는 모든 길이 편안하고 행복했다.
이 나이에 이런 사람을 이 타이밍에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내가 만난 남자들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었다. 나는 그동안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 조금은 수동적인 연애를 해왔었는데, 이 남자는 내가 끌어도 끌려오지 않는 오묘한 남자였다. 그래서 더 마음이 갔는 지도 모르겠다. 연애를 할 때도 우리 집에 와서 같이 빨래를 돌려주고 개켜주던 사람, 같이 살던 내 친구가 개인적인 일로 힘들어할 때는 같이 영화를 보라며 본인의 카드를 내밀던 사람.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섬세한 사람이었다. 연애할 때 보다 결혼하고 더 좋다고 느낀 점은 방문만 열면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20분을 걸어가서 그를 만나야 되는 것이 아닌 당장 방문만 열면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남편은 본인의 루틴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연애 할때 내가 갑자기 찾아가서 ‘까꿍 나왔지롱’하는 것을 그리 반기지 않았다.
처음 그의 집 앞에 서프라이즈로 찾아 갔을 때 그때는 남친이던 남편이 했던 말이 아직도 생각난다.
“나 운동 가야 되는데..”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의 성향을 알고 나서는 이해를 하게 됐다. 그리고 존중을 해주었다. 그의 루틴을 지켜주고, 나는 나대로 내 친구들과 만나서 놀았다.(노는 건 포기 못해)
결혼을 하고 보통 신혼부부들이 그러는 것처럼 우리는 퇴근 후 야식을 자주 시켜 먹었었다. 치킨을 신나게 먹고 배가 불러 누워있는데 몇 분 지나서 남편이 라면을 끓이는 것이었다.
“여보 왜 라면을 또 먹어? “
“아 내일 운동하려면 든든하게 먹어야 돼서. “
알고 보니, 내가 치킨을 너무 빨리, 많이 먹어서 남편이 몇 조각 먹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났던 것이다. 그런데 남편은 먹는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없이 내가 먹는 것만 지켜보았다. 아니면 ‘저 정도로 배고파하는데 그냥 먹게 두자‘ 이런 마음이었을까.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그때마다 남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배부르게 먹는 것을 보고 있을 뿐.. 이것은 아부지의 마음인가. 나중에 남편의 마음을 헤아린 나는.. 요즘 적게 먹고 있다. 다이어트 이슈도 있고.
갑자기 남편이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여보 당신은 먹는 거에 비해서 정~~~ 말 안 찌는 거야. 먹는 거 한번 봐봐.“
이것은 팩트폭행을 넘어 중범죄에 해당한다. ‘마음상해죄‘라고 들어보았는가. 아무튼 맞는 말이라 반박은 못하였다.
내가 임신했을 때가 생각난다. 첫째를 임신해 있을 때 남편과 같이 퇴근하고 집 근처 이마트에서 장을 보고 들어 오는 길이었다. 나는 ‘엑설런트’라는 네모난 고급 포장지에 싸인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었다. 그런데 그날 이마트에는 그 아이스크림이 없었고, 시간도 늦어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서 들어왔다. 다음 날 저녁, 남편은 퇴근길에 그 아이스크림을 공수해 왔다. 이마트에 들렀는데 ’ 엑설런트‘ 아이스크림이 없어서 다른 편의점 및 마트를 몇 군데 들렀다가 온다고 늦었다는 것이다.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렇게 남편은 내가 먹고 싶었던 것, 갖고 싶었던 것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가 사 오곤 했다. 그날 있었던 일도 잘 잊어버리던 나는 그런 남편이 고마웠다. 그런데 또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편은 생색을 잘 내지 않는다는 것. 그것 또한 더 고마운 부분이었다.
앞으로는 내가 좀 더 세심히 챙겨줘야겠네. 글을 쓰다 보니 내가 너무 막장 아내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네. 그 정도는 아닌데..
우리 부부 잘 살고 있습니다. 저 육아도 열심히 하고 근무도 열심히 하고 사람답게 살고 있습니다. 어필 아닙니다.
여보 지금 사는 게 힘들다면 당근을 들어..
남편과의 에피소드는 할 말이 많다. 남편은 더 할 말이 많을 것 같기도 하고?
남편은 오늘 주간 근무라 새벽 출근을 했다. 여보 근무 잘하고 있지? 항상 고마워. 사…사… 사는 동안 많이 법시다..(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