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아빠와 초딩 자매의 좌충우돌 육아일기 (1)
주말 아침.
늦잠에서 깬 두 딸은 아침부터 핸드폰을 달라고 난리다. 이 놈의 핸드폰은 정말 애물단지다.
아무리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주는 것은 안 될 것 같아서 평소와 달리 단호하게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핸드폰부터 보는 것은 좋지 않아. 안 돼."
제발 토 달지 않고 말을 잘 들어주었으면 싶었다. 잠깐 뾰로통한 표정을 하더니 이내 알았다고 한다. 다행이다. 그런데 정말 1분이나 지났을까? 다시 핸드폰을 달라고 한다. 차라리 TV를 보라고 만화 채널을 틀어줬다.
"싫어. TV는 재미없어. 너무 유치해. 그럼 아빠가 재밌게 놀아줘!"
이제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이면서 TV만화가 유치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매일 보는 핸드폰 속 이상한 쇼츠 영상들보다는 나은 것 같은데 말이다. 아내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아이들을 어떻게 달래지 생각하다가 내 입에서 나온 말은 겨우...
"문제집 가져와. 공부하자."
이런 상황에서 공부를 하라고 하다니. 나도 그냥 꼰대 아빠가 되어가나 보다. 공부하라고 말해놓고 아차 싶었다. 그런데 의외로 아이들은 군소리 안 하고 책상 앞에 앉았다. 웬일이지 싶으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아빠 밥 차릴 때까지 이거 네 페이지씩 풀어~알았지?"
잠시 후...
몬가 느낌이 이상했다. 아이들이 너무 조용했고, 그냥 느낌이 쎄했다.
슬쩍 아이들을 봤는데,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작은 딸은 쫑알쫑알 떠들면서 문제를 풀면서 "아빠, 이거 맞아?"하고 질문도 던지고는 했다. 큰 딸은 고개를 좀 푹 숙이긴 했는데, 그냥 잘하고 있으려니 생각했다. 평소에도 작은 딸보다는 큰 딸이 묵묵히 더 잘 따라주었기에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이때 큰 딸이 뿜어내는 어두운 기운에 좀 더 예민했어야 했다.
다시, 얼마 후...
아주 작은 소리지만 주방에서도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큰 딸이 흐느껴 우는 소리를 말이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부랴부랴 큰 딸에게 달려갔지만, 딸은 이미 고개를 숙이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답이 없었다. 하긴, 나도 어릴 때 울고 있을 때 엄마아빠가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핸드폰 안 줘서 그래? 공부가 어려워? 아빠가 말 안 들어줘서 서운해서 그래? 아빠가 화난 것처럼 말해서 그래? 아니야, 아빠 화 안 났어~~"
울고 있는 딸 앞에서 나 혼자 열심히 떠들었다. 무엇 때문에 울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으니 내가 여러 가지를 말하면 그중에 하나 맞는 답이 있으면 고개를 끄덕일 것 같았다. 그러나 딸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나마 내 품에 안겨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품에 안은채 딸이 진정해서 말을 하기를 기다렸다.
"아빠! 언니 울어? 왜 울어?"
눈치 없는 작은 딸이 큰 소리로 물어봤다. 그 말이 자극이 되었는지 큰 딸은 더 큰 소리로 울면서 짜증을 냈다. 온몸으로 방을 튕기고 방바닥에서 발을 굴렀다.
"언니가 공부가 조금 힘들었나 봐. 둘째는 괜찮아? 문제마저 풀고 있어. 아빠가 조금 있다가 봐줄게."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 같자, 아내가 와서 큰 딸에게 한 마디 하려 했다. 나는 눈짓을 하며 하지 말라고 제지했다. 아내는 답답해했다. 사실 아내가 울지 말라고 왜 그러냐고 한마디 하면 큰 딸은 눈물을 멈추고 식탁으로 가서 밥을 먹을 것이다. 우리집 서열 1순위는 아내다.
오냐오냐 하는 내가 문제인 건가 싶어졌다. 그래도 휴일 아침부터 집안싸움이 나게 둘 수는 없어서 품에 안고 딸을 좀 더 달랬다.
"이제 좀 괜찮아? 마음이 진정이 돼? 아빠가 서운하게 했어? 왜 우는지 말해줄 수 있어?"
딸은 계속 묵묵부답이었다.
5분쯤 더 기다렸을까? 딸이 입을 열었다.
"공부가 힘들어..."
에휴... 결국 그 문제였다. 하지만 이 다음 대화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좀 막막했다. 공부가 힘들다고 공부를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공부가 원래 재미없는 거라고, 힘들어도 그냥 하는 게 공부라고 말해준 뒤에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었다. 딸의 대답은 하루에 한 문제만 풀게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긍정도 부정도 못 하는 나를 보면서 딸은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일단 아이가 울음을 멈추고 웃는 것에 안도하며 다음 말을 계속 생각했다. 그러나 딸은 내 품을 떠나 식탁으로 가버렸다.
난 결국 아무 말도 못 했다.
이날 공부는 결국 나보다 쎈(?) 엄마의 노력으로 하루 목표량을 채울 수 있었다.
공부가 어렵다는 아이에게 뭐라고 말을 해줘야하는지 폭풍 검색을 좀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