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아빠와 초딩 자매의 좌충우돌 육아일기 (10)
내 감정에 충실했다.
다만, 그게 내 아이에게 '화'를 내는 못난 행동이어서 문제지.
감정은 죄가 없다고, 내가 느끼는 감정은 옳다고 하는데
내 감정이 옳은 것과 내가 내 아이에게 화를 내는 건 전혀 다른 문제겠지.
내 감정에 충실해서 화를 내놓고도 죄책감과 자책에 휩싸인다.
아이가 상처받았으면 어쩌나... 아빠랑 멀어지면 어쩌나... 이 어색함은 어떻게 풀어야 하나 싶은.
공부하라는 잔소리가 아이와의 다툼이 되는 경험은 이미 여러 번 했다. 그래서 나름 어느 정도 포기했다.
평일에는 그래도 학교도 갔다 오고 학원도 갔다 오니 집에서 놀기만 하는 건 어느 정도 봐주는 편이다.
지들도 힘들겠지... 싶어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주말이다.
특별히 아이들과 외출을 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하루 종일 핸드폰 앞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차라리 큰 화면으로 TV를 보면 좋은데 핸드폰이 더 좋단다.
"주말에 놀기만 해도 되는데 좀 이것저것 다른 것 좀 하면서 놀아"
라고 잔소리를 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싫어"
라고 시선은 여전히 핸드폰에 고정시킨 상태로 영혼 없는 대답만 한다.
안 되겠다 싶어서 아이들을 억지로 앉히고 메모지를 한 장씩 줬다.
놀더라도 하다못해 시간표라도 짜고 놀아보자고 했다.
핸드폰 보는 시간... 게임하는 시간... 놀이터...TV보기... 장난감 놀이... 등
그냥 노는 걸로 채워보자고 했다.
책 읽기, 일기 쓰기, 운동하기... 이런 걸 넣자고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 다툰 적도 많아서
방법을 바꿨다. 계획표를 노는 것으로만 채우면 그 정도는 해주겠지...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아마 더 많이 내려놓고 더 많이 포기했어야 했나 보다.
작은 애는 그래도 꾸역꾸역 채우는데 큰 애가 반항이다.
고개를 푹 숙이고 끙끙 거리는 소리만 내며 몸을 가만히 두질 못 한다. 나중엔 머리를 땅에 처박고 싫은 티를 온몸으로 표현한다. 저렇게 싫을까....
지금 생각해 보니 아이에게는 계획표를 짜는 것 자체가 공부하라는 잔소리로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눈치 빠른 아이라 계획표를 짜라는 아빠의 마음속에 공부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온몸으로 싫은 표현을 하는 아이를 보면서 나의 생각은 거기까진 미치지 못했고, 나의 온몸에 화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화를 내면 안 될 것 같아서 나는 외투도 걸치지 않고 밖으로 일단 나갔다.
화내는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밖에서 걷기 시작하자 어느 정도 화가 가라앉는 듯 보였다. 그런데 이날 따라 쉽게 잘 가라앉지 않았다.
이 정도도 못 하나 하며 딸을 원망하던 마음은 어느새 '아이를 이 정도도 못 하는 사람으로 키운 건가 하는 나에 대한 원망과 비난, 자책, 무기력감으로 변해 있었다.
나의 무능을 바라본 것 같은 생각이 들자 가라앉을 것 같던 화는 갑자기 더 큰 불이 되었다. 나는 산책하던 발걸음을 급히 돌려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을 느끼면서 '이건 아닌데.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집에 돌아왔고 아이에게 큰 소리를 쳤고 아이는 울었고 아내는 말렸고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와야 했다.
이번에는 외투는 챙겼다.
그리고 나는 2시간가량을 동네 도서관에서 혼자 씨름했다. 내 감정과...
내 감정이 채 추슬러지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아이가 받았을 충격과 상처가 걱정되었다.
내가 평소에는 별다른 잔소리도 안 하고 화를 잘 안 내는 아빠다 보니 어쩌다 이렇게 화를 내면 아이가 더 무서워한다. 아이 입장에서는 갑자기 아빠가 돌변해서 화를 내는 헐크 같았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 아이에게 간신히 미안하다고 말을 했다. 하루 이틀쯤은 말도 안 하고 지내고 싶은 유치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래도 일단 아이 마음에 박힌 상처를 보듬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장난스러운 얼굴로 웃어 보이더니 이내 다시 핸드폰을 본다.
나는 그냥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길게 뻗어버렸다. 이제는 나를 달래야 할 시간이다.
나는 왜 화가 났는지... 그 화 속에 나는 무엇이 부족했던 것인지... 이 화는 앞으로도 일어날 것 같은데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별별 생각이 다 밀려왔다.
강의 영상도 찾아보고, 술도 마셔봤지만 기분이 영 풀리지 않는다....
그러다 결국 나를 달래려 브런치를 쓴다. 내일은 혼자 산에라도 좀 다녀와야겠다. 마음이 쉽게 추슬러지지 않는다. 아이 때문이 아니라... 화를 낸 나 자신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