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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온 Sep 26. 2023

작은 촉감이라도

반죽을 비비는 순간에는 그나마

요즘 아침마다 빵을 굽는다.


나를 오랫동안 알던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면 내가 언제 제빵을 배웠는지 의아해하겠지. 배운 적은 없다. 그냥 어느 날 내 입에 들어갈 음식을 최대한 내 손으로 만들고 싶었고 자연히 빵 만드는 법을 깨닫게 됐을 뿐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반죽이 힘들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죽을 뭉개고 뭉치는 건 딱히 힘든 일도 아니고 의외로 시간이 많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물론 몇 번의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빵의 반죽을 완성하는 건 효모균이다. 흔히 빵 만드는 법을 얘기할 때 몇 g의 밀가루에 몇 ml의 물, 몇 g의 이스트에 소금 몇 스푼을 얘기하곤 하는데 난 여전히 그런 건 모른다. 단지 효모균들이 가장 잘 번식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줄 뿐이다.


따뜻한 환경에서 만든다. 내가 느끼는 걸 효모도 느낄 테니까. 설탕을 충분히 준다. 반죽을 부풀리려면 효모들도 일을 해야 하는데 걔네도 밥은 먹어가면서 일해야 하니까. 목마르지 않게 물도 줘야지. 반죽이 부푸는 시간을 보며 지금 조건이 효모들에게 일하기 좋은지 나쁜지 가늠해 본다. 냄새를 맡았을 때 느긋한 냄새가 나면 충분히 시간을 준다. 반대로 뭔가 다급하고 시큼한 냄새가 나면 밀가루와 설탕물을 조금 더 주고 조금 시원한 곳에서 쉬는 시간을 준다.


반죽을 만들다 보면 땀이 뚝뚝 흐르는 건 체력적으로 힘들어서가 아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몰입해서 반죽을 느끼다 보면 내 몸에서도 열이 난다. 컨디션이 나쁜 날은 좀처럼 반죽의 상태를 가늠하기 힘든데 무리하지 않고 나에게도 여유를 주며 감을 찾아간다.


모양을 잡은 반죽이 충분히 부풀면 오븐에 넣고 너무 급하지 않게 굽는다. 급하게 구우면 겉만 너무 단단해지니 온도를 천천히 올려가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컨디션으로 굽는다.


내가 만든 빵을 먹다 보면 여러 가지를 알 수 있다. 물을 좀 더 넣을 걸 그랬나, 설탕물을 조금 더 줬어도 됐을까, 버터는 빼도 되겠는데, 빵 크기를 조금 더 키워야겠다 등. 단순히 칼로리와 영양비율을 맞춰 먹는 과정이 아닌 오늘의 나를 느끼고 다듬는 시간 같다.


사람의 아침은 눈뜨면서 시작하는 되지만 어쩌면 전날 밤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책상 위에 작업할 일들을 미리 올려두는 일도, 반죽 준비를 해놓는 일도 전날 밤 이뤄지고 내가 몇 시에 얼마나 편하게 잠들었는지에 따라 다음 날 몇 시에 어떤 컨디션으로 일어날지가 정해진다. 내가 전날 준비만 잘해놨다면 다음 날의 나는 준비된 흐름만 조용히 조용히 따라가며 수월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런 방법으로 나는 하루하루를 생각보다 수월하게 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착각도 해가며 밤에 최소한의 불빛만 켜둔 채로 다음 날을 준비해 본다.


이렇게 해놓으면 아침에 조금 더 편하지 않을까. 쓰레기봉투는 지금 신발장에 두면 내일 나가면서 까먹지 않겠지. 노트를 미리 펴놓고 두어 줄만 미리 써놓으면 내일 이어서 쓰기 수월할 것 같은데. 너무 늦었다. 이번에는 여기까지만 해놓자.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낫겠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평소보다 두 시간은 늦게 일어났다.


이젠 익숙해졌다 생각했던 반죽이 도무지 부풀지 않았다. 몇 번을 뭉개고 다시 기다리는 사이 안 그래도 촉박했던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갔다. 마음이 급해져 빵도 아닌 무슨 밀가루 덩어리 같은 무언가를 식사로 싸들고 나왔다.


집에서 나오기 전에 보내야 했던 서류도 하나 깜빡했고 아침부터 급하게 움직이며 아침식사도 대충 먹었더니 괜히 더 허기가 지며 결국 평소보다 빵을 일찍 먹어야 했고 괜히 졸린 오후 내내 커피를 입에 달고 있었다.


유독 주변에 짜증을 냈고 하는 일마다 잘못 읽고 잘못 쓰길 반복했다. 하릴없이 옆사람과 얘길 나누다 급하게 밀린 일을 몰아서 하는 바람에 서류를 보내고 나서 내가 뭘 보냈는지 기억해내지도 못했다. 머릿속엔 퇴근하고 어디 놀러 가서 기분전환을 하고 싶다는 생각들이 둥둥 떠다녔다.  


퇴근 시간을 한참 남겨놓고 여유 시간이 생긴 덕에 혼자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반죽을 하는 상상을 해봤다. 차갑다. 반죽이 차가울까. 아니 발밑이 차갑다. 가을이 오며 창문을 항상 열어놨더니 집에 조금 서늘해졌었다.


추웠구나. 반죽을 하는 손이 무겁게 느껴졌다. 피곤했구나. 쉬고 싶구나. 나는 그냥 피곤했던 거구나. 오늘 밤엔 반죽을 만들 수 있을까. 모르겠다. 만들어놓은 빵이 하나 더 있으니 피곤하면 굳이 하진 말자. 우선 쉬고 생각해 보자.


그렇게 마음먹자 마음이 편해지며 몸이 조금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집에 도착한 나는 자정까지 계속 반죽을 만지고 있었다. 피곤하지도 아프지도 않았고 그저 조금 더 맛있어진 빵만 계속 상상하며 반죽에 체온을 옮겼다.


자정이 넘어가고 새로 구워본 빵은 놀라울 정도로 맛있었다. 내가 만든 빵을 내가 맛있다고 하는 것도 민망했지만 그래도 맛있어서 다음 날 아침 먹을 빵까지 다 먹어버렸다. 빵을 다시 만들어야 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이었다. 내 손으로 만든 결과물이 맘에 드는 것도,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으면서 스스로 무언가 노력을 해보는 것도, 실패하는 것에 개의치 않고 더 나아지리라 당연하게 믿으며 담담하게 무언가를 해내는 것도.


이래서 마음 다친 사람들이 갑자기 요리를 배우기 시작하는 걸까. 거창한 재료도 필요 없이 밀가루와 효모, 물만 있으면 되니 부담도 없었다.


최근의 나는 이런저런 걱정이 많다. 가장 큰 건 이혼소송을 거치는 동안 받았던 재정적인 타격, 기력이 없어 활동이 줄어든 동안 말도 안 되게 줄어든 육체능력, 시계추처럼 반복되는 융자상환, 아직도 오리무중인 재산분할과 판결의 방향, 앞으로 아이와 살아가야 할 날들, 기타 등등.


이 중 하나만 생각하기 시작해도 중력을 잃고 허공을 부유하고 있는 것처럼 멍해진다.


혹자는 말하죠. 할 수 있는 것부터 차분히 해나가라고.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살고 있어요. 좋든 싫든 할 수 있는 것 밖에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할 수 있는 걸 다 하고 있다면 그 외에는 그저 받아들이라고. 말이 쉽죠. 싸대기가 날아오고 있는 게 뻔히 보이는데 무심하게 가만히 맞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냐고요.


비싼 수업료를 내가며 하나 배운 게 있다면 벌어지는 일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내 계산이나 예측과는 상관없이 무한대의 변수들과 엉켜가며 벌어지고 있고 내 앞에 닥쳤을 때쯤엔 전혀 엉뚱한 무언가가 되어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무엇을 의도하며 대응할지라도 내 손을 다시 떠난 순간부터는 다시 무한대의 변수들과 엉켜간다는 것이다.


무의미해지기도 하고 염세적인 생각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 순간 보잘것없는 일이라도 작게 반짝이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이게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주워본다. 어둠 속에 갇혀 허우적거리지 않으려 조용히 작은 빛들을 모아간다.


이 중요한 시간에 혼자 어느 노래를 계속 흥얼거리며 같은 모양의 빵을 계속해서 만드는 행동들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르겠다. 훗날 내게 이런 시간이 있었다고, 내가 빵을 구울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을 기억이나 할런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모든 것에 의미가 없다면 아무거나 해도 상관없지 않을까. 이왕 아무거나 해도 상관없다면 기분 좋은 일이 그나마 낫지 않을까. 당장을 먹고 싶은 빵을 만드는 일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빨리 질렸으면 좋겠다. 사실 제법 만들 줄 알게 되면서부터는 슬슬 다른 재밌는 걸 떠올리고 있다.


무언가가 재밌어 보인다면 그거부터 하자.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게 되는 일부터 하자. 어차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게 될 테니 그 와중에 즐거운 것만 하자. 뒷감당은 지금 내 알바 아니니까.


어두운 시간을 쭉 지나오며 지금 힘든 이 시간들이 비단 이혼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애초에 아슬아슬하게 쌓아 올리고 있던 시간들이었고 마침 이혼이라는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기다렸다는 듯 와르르 무너졌으리라. 다시 한번 쌓아 올리자. 재료가 나쁘지 않았다면, 단지 방법에 문제가 있었을 뿐이라면 좀 더 낫겠지. 재료가 애초에 나빴다면 다시 만들면 된다. 그래, 몇 번이라도 다시.


지금도 내가 겪고 있는 시간들이 폭탄이 터진 후 아직 가라앉지 않은 먼지들처럼 잔뜩 뿌옇지만 내 손끝으로 무언가를 느끼고 따뜻하게 구워 내 입에 넣는 그 감각들은 참 선명하다.


그런 식으로 주변 많은 것들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너무 멀리 생각했나. 그래, 생생하다는 게 무엇인지부터 시작하자.


당장 대충 아무거나 사서 입에 넣고 싶다는 허기가,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그저 눕고 싶은 피로가. 발효고 예열이고 그저 건너뛰고 싶다는 조바심이 나를 지금 현실에 단단히 매어둔다. 그래 고작 여기가 내가 사는 세계구나. 참 작고 보잘것없다. 좋네. 별 거 없어서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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