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가져보라는 말을 해본 적이나 들어본 적이 있을까.
난 다른 사람들에게 몇 번 해봤던 것 같다. 어디서 들어본 적도 있는 듯하다. 웃긴 건 그걸 실제로 해본 적은 없었는데 누구랑 대화해도 답답한 느낌이 가시질 않으니 결국 자신과 대화하게 되는 순간이 왔다.
오랫동안 서로 싸움을 반복하다 결국엔 서로 씩씩대며 도장을 찍은 이혼이 아닌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두절된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이혼이었기에 내가 해야 했던 일은 그저 상황을 견디고 받이 들이는 것 밖에 없었는데 온갖 가능성과 생각, 추측, 불안들이 한데 뒤섞여 내 의식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있었다.
우울과 불안으로 가볍게 워밍업을 한 후 공황까지 직선으로 달려가는 동안 정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어느덧 정상치 복용량의 4배를 넘어간 안정제로도 막을 수 없었다. 압력밥솥 같았다. 어느 날 실수로 약 먹는 걸 깜빡했다가 나는 그날 내가 죽는 줄 알았다.
결국 나는 모든 활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는데 사람 일이 참 웃긴 게 그렇게 돈 한 푼 벌지 않아도 어떻게든 돈이 생기긴 하더라. 예전에 떼였던 돈이 갑자기 돌아온다든지, 예전에 사놓고 잊고 있었던 물건이 마침 필요했던 금액에 팔린다든지, 1년 넘도록 연락도 없던 사람이 갑자기 내 집 주변으로 출장 오며 숙박비를 낼 테니 며칠만 재워달라고 한다든지.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신이 있는 건가 싶은 순간들이 말하자면 끝도 없다.
그것도 한계가 오긴 와서 어느 순간에는 정말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었다. 돈이 없어지면 그냥 죽자는 마음이었는데 양육비를 포함해 당장 내야 하는 돈들이 코앞에 닥치자 공포가 엄습했다. 가장 최악이었던 건 내 정신건강이 회복되지 않은 데다 그동안 몸을 험하게 썼던 탓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한쪽 다리마저 절고 있는 그야말로 점입가경이었다.
당시 나는 침대에 나와있을 수 있는 시간이 서너 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 시간을 넘기면 불안증세나 공황발작이 시작돼 도망치듯 다시 침대로 돌아가야 했다. 그 삶을 원하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내 경험으로는 끔찍했던 시기였다. 근데 이제는 정말 땡전 한 푼 없어서 집 보증금이라도 빼야 할 판이었다. 그럴 수도 없었지. 이사하는 게 공짜도 아닌데.
주변에 연락해서 돈을 빌려볼까. 최악이다. 그냥 곱게 죽자. 와 이제 진짜 어떡하냐. 여기까진가.
솔직히 그 정도로 몰리면 뭔가 숨어있던 궁극의 힘 같은 게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는데 그런 건 위인전이나 만화에나 나오는 얘기였다. 현실은 침대 안에 웅크린 채 한숨과 욕지거리를 뱉어내는 게 고작이었다.
당시 거의 1년이 다 되도록 소송이 늘어진 동안 하도 이곳저곳에 징징거렸더니 어디 하소연할 곳도 더 이상 없었는데 그렇다고 가만히 이대로 혼자 침몰하려니 너무 억울했다.
방법이 있다면 당연히 찾고 싶었고 어떻게든 상황을 바꿔보고 싶었지만 나는 방향을 잡을 수 없었고 대체 나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장렬히 싸우다 죽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이렇게 말라가야 하나. 비참했다.
그래, 당사자한테 물어보자. 왜 지금 이 꼴이 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좀 물어보자.
어떻게 고민하던 나는 메신저를 켜고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돌이켜 당시를 회상해 봐도 뭐 하는 짓인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그것밖에 없었다.
무슨 말부터 시작할까 하다 그냥 직진으로 돈이 없다는 말부터 했다. 잠시 후 답장이 왔다. 왜 없냐. 잠시 고민하다 다 썼다고 솔직히 불었다. 거의 틈을 주지 않고 정확히 얼마가 있냐는 건조한 물음이 도착했다. 아, 진짜 내 말투 건조하구나. 나랑 얘기하는 사람들이 가끔 혀를 내두르던 게 이거였구나. 새삼스러웠다.
어느 정도 가늠해 본 후 다음 달 생활비까지는 있다고 말하자 그 후엔 어떻게 할 거냐는 쉼 없는 물음이 들어왔다. 재밌게도 나는 내가 떠올리기도 전에 나름의 대책들을 늘어놨다. 아, 내가 계획이 있는 인간이었구나.
그렇게 한 시간가량 대화는 이어졌다. 놀라울 정도로 방향성이 제멋대로였지만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문답이 오고 가는 걸 구경하듯 보고 있었다. 물어보는 나와 대답하는 나, 그걸 지켜보는 나까지 세 사람이 있었다.
계속 대답을 이어가던 나는 이윽고 피곤했던지 머리가 아파 쉬고 싶다는 말을 했고 신들린 듯 볶아대던 나는 뭐가 풀렸는지 좀 쉬라는 말과 함께 불쌍한 나를 놓아줬다.
폰을 끄고 난 후 나는 두통과 두근거림이 가라앉은 걸 느꼈다. 분명 걱정거리들이 많았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고 나는 오랜만에 안정제 없이 깊은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서서히 다시 두근거림이 시작되는 걸 느끼고 다급히 메신저를 켰다. 기다렸다는 듯 무슨 일이냐고 묻는 내게 나는 오늘이 법원에서 가사조사를 받는 날이라는 얘길 했다. 아 오늘이 가사조사일이었구나.
법원에서는 몇 차례에 걸쳐 가사조사라는 절차를 진행한다. 소장에 적힌 내용들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서류에는 다 쓰지 못한 내용들이 있는지 등등 당사자 두 명을 같이 불러놓고 대질을 한다. 상당히 불편한 자리고 내 경험으로도 그랬지만 듣기로도 대부분의 조사관들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고 했다. 이미 한번 조사를 받아봤기 때문에 어떤 흐름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아내를 직접 봐야 하는 것부터 시작해 여러모로 불편한 자리다. 그리고 서로 유리한 얘길 늘어놓는 자리이기 때문에 흔히 언성이 높아지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평소보다 예민했구나. 티브이 보듯 지켜보던 내가 생각했다. 받아주는 나는 어제보다는 훨씬 친절해진 말투로 징징거리는 나를 달래고 있었다. 불안해하는 나는 아내를 마주해야 하는 불편함과 혹시나 감정을 못 이겨 실수를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계속해서 뱉고 있었다.
전날과는 대화의 흐름이 조금 달라졌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 같으면 다그치며 단호하게 밀어붙였을 내가 무던하게 걱정들을 들어주고 있었다. 징징거리던 나는 상대방이 무던하게 계속 받아내자 이내 잠잠해지며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정말로 머리가 조금씩 맑아지는 걸 느꼈다.
돈이 없어도 괜찮다. 돈이 많고 적은 것과 이혼 사유는 전혀 상관없으니까. 아내가 내게 불리한 주장들을 계속 한다한들 우리 변호사들은 유능한 사람들이 여태껏 해온 대로 사실을 계속 밝혀줄 것이다. 만일 내가 오늘 조사에서 불리해지는 상황이 온다면 그건 내가 그동안 부족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니 달게 받아야 하지 않겠나. 무던한 나는 담담하게 걱정들을 하나씩 개어 정리해 나갔다.
무던한 나는 걱정하는 내게 언제라도 불안한 순간이 오면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 빠져나와 자기를 찾으라며 안심시켰고 그렇게 나는 법원으로 가는 걸음을 조금은 가벼이 할 수 있었다.
그날 받은 조사 내용은 엉망이었다.
아내는 내가 결혼을 결심하게 했던 현명하고 차분하던 모습은 어디서 잃어버리고 온 건지 정신질환이 의심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주장들과 이혼이 별거 아니라는 투의 말들을 이어나갔고 아이의 장래에 대해 묻자 애도 나중에 다 이해하지 않겠냐는 어처구니없는 말로 내 이성의 끈을 잘라버렸다.
나는 결국 언성을 높였고 조사는 그때부터 따로 진행됐다. 내 차례가 와서 들어가자마자 나는 조사관에게 혼났고, 혼낼 권한이 있는 사람도 아닌데 왜 그랬는지 아직도 이해는 안 가지만, 조사랑 상관없는 잔소리만 잔뜩 듣다가 조사 시간이 끝나버렸다.
조사 때 말하려고 연습했던 말들과 양육권을 주장할 수 있는 내용들이 너무 많았는데 집에 가다 차를 세우고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울었다. 하지만 묘하게 담담했다. 분한 건 분한 거고, 내가 부족해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부족한 게 죄는 아니니까.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운듯했다.
요즘도 종종 혼자 대화를 할 때가 있다. 괜히 싱숭생숭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그런 날, 며칠 째 마음이 붕 떠있다 보면 어느 순간 아, 나한테 물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고 시간을 내어 메신저를 켠다. 내가 내 손으로 보내는 내용들인데도 내가 모르는 내용들이 오가고 또 그 두서없는 내용들을 놀라우리 만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경험은 늘 신기하다.
누구나 가능할까. 잘 모르겠다. 나도 정신적으로 거의 끝까지 몰리는 순간이 아니라면 나를 찾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아무 때나 해도 먹히는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외부에서 답을 찾다 찾다 막다른 길에 막혀 답답할 때 한 번쯤 시도해 볼 만한 것 같다.
나는 그 일이 있은 후 약 한 달이 되지 않아 갑자기 직장이 생겼으며 뜻하지 않게 경제활동을 시작하게 됐는데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에서 먼저 연락이 온 터라 나는 편하게 당시 내 사정을 얘기할 수 있었고 업무는 내 건강에 최대한 조율된 형태로 진행할 수 있었다.
후에 통장을 확인해 봤던 나는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당시 재정 상황이 안 좋았다는 사실에 놀랐는데 벌어질 일은 어떻게든 형태를 알아서 갖춰가는가 보다 싶은 생각이 든다. 벌어지는 사건들이 그 형태를 갖추기 전까지는 내가 어찌한다 해도 찻잔 속 소용돌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만약 벌어질 일들이 내 기대나 걱정과 무관하게 그저 벌어지고 있을 뿐이라면 나는 조금은 더 담담하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머리로는 그걸 생각해 낼 수 있을지라도 내 안에 있는 걱정투성이의 나는 작고 어리고 미성숙하다.
식물에게 물을 주고 빛을 쬐어주듯 내 안에 있는 나 역시 성장을 위해 관심과 양육이 필요하다. 세상에 나와있는 많은 자기 계발 관련 콘텐츠들은 훈육과 교육에 가까운 태도로 개인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어쩌면 자아는 훨씬 단순하고 자유로운 몇 가지 양분을 통해 스스로 성장하는 무언가에 가까운 듯하다.
내가 만났던 나는 내가 생각해 오던 나보다 훨씬 덜 떨어지고 나약했다. 약하고 붙잡을 손이 필요한 아이. 그저 아이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