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온 Sep 17. 2023

부모가 가지는 권리

어느 누구도 당신에게서 빼앗아갈 수 없는

이혼을 겪으며 밝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일은 몇 안 되겠지만 내 경우 가장 어두웠던 기억들은 대부분 아이와 관련되어 있다.


조금 지저분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이혼 소송을 준비시키며 변호사 사무실에서 가장 먼저 시키는 일 중 하나가 아이를 확보하는 것이다.


아이를 확보하는 일은 양육비와 더불어 상대에게 정신적으로도 큰 충격을 줄 수 있기에 소송을 유리하게 가지고 가는 큰 무기로 여겨진다.


흔히 이를 두고 이혼전문 변호사들을 비난하지만 세상에 수요 없는 공급은 없다. 만약 이혼을 겪어보지 않은 부부라면 한 번쯤 본인은 경솔하게 이혼을 입에 담았던 적이 있었는지 잘 되짚어보라. 섣불리 이혼을 생각하던 그 작은 생각들이 모여 수요를 만들어내고 이혼변호사들의 업무들을 결정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신이 만약 불리한 소송에 처했다면 이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 역시 이혼전문 변호사들이며 주변 어느 누구보다 당신의 싸움에서 가장 앞에 서주는 이들이기도 하다.


나 역시 아이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이성을 잃었었고 정상적인 판단력 자체가 요원했었는데 그 시간 동안 차분하게 나를 보호해 주고 내가 다시 이성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이 변호사 사무실 사람들이었다.


같은 서초동 바닥 사무실들끼리 붙다 보니 서로가 서로의 수를 너무 잘 알고 있었던 탓에 지난한 대치상태가 길어지던 어느 시기가 있었는데 일이라는 건 항상 예기치 못한 순간에 벌어진다.


소송이 시작되던 초기 심리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내는 연락이 되지 않았지만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이야 처가밖에 없었고 심리상담소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동선 주변에 처가가 있었기에 그날 별생각 없이 처가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그 순간 처가 앞 공원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고 조심스럽게 다시 쌓아가고 있던 내 이성은 완전히 무너졌다. 소송이 시작됐으니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절대 경거망동하면 안 된다고 말했던 변호사들의 말을 가까스로 기억해 내곤 다급하게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으나 하필 그 순간에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멀리서 발만 동동 구르며 전화를 계속 돌려보던 중 갑자기 장모는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 순간 참지 못하고 아이가 향하는 곳으로 걸어갔다.


나를 발견한 처가부모들은 다급히 아이를 차로 숨기려 했으나 나는 아이를 끌어안고 대체 지금 다들 무슨 짓을 벌리고 있는 거냐고 소리치며 내 차로 가려했다. 울음으로 바뀌기 전, 오랜만에 나를 봤던 아이의 얼굴에 잠깐 스쳤던 반가운 미소를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고 그 후로 오랫동안 가시처럼 내 안에 박혀있었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가려고 했지만 처가부모들은 상처 내는 걸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내 몸 여기저기를 붙들고 늘어지며 나를 막았다. 오랫동안 제대로 먹거나 편히 쉬지 못했기에 나는 두 사람이 나를 막는 걸 뿌리치지 못했는데 결국은 큰 소란에 동네사람들이 모두 몰려와 우리를 뜯어말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경찰들이 왔고 장모는 경찰들에게 내가 이혼 소송 중에 아이를 무단으로 납치하려 한다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경찰들은 나를 강제로 제압했다. 7명 정도 몰려와 말할 틈도 없이 밀어붙이니 나는 속수무책으로 아이를 뺏기고 어느 순간 장모는 아이를 데리고 사라진 상태였다.


형사들이 조금 늦게 도착해 조사가 시작됐는데 황당하게도 그 순간이 나에겐 아이를 돌려주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으며 처가부모나 경찰들이 아이를 달라고 할지라도 내가 친부모이기에 거부할 권리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조금 나쁘게 얘기하면 나는 당시 납치혐의를 받더라도 결국은 친부모이기에 법원에서 따로 어떤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타인에게 아이를 양도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 사실은 그 소란이 끝난 후 늦게서야 연락이 된 변호사를 통해 알게 됐는데 그렇게 또 충격을 받은 나는 일주일 가량 일어나지 못한 채 앓아누웠었다.


내 자식을 내 손으로 놔줬다는 사실에 어처구니가 없어 이성이 완전히 날아간 채로 울고 뻗길 반복했었다.


정말 종이 한 장 차이이긴 하지만 사실 이혼소송 중 배우자와의 관계와 자녀와의 관계는 묘하게 구분되어 있다.


이혼소송으로 이후 양육권과 친권이 아예 한쪽으로 가버린 상황이 아니라면 친부모가 자녀에 대해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는 유효한데 법원에서 어떠한 명령이 떨어지더라도 그 부분에 대해 강제성은 없다. 일종의 권고조치다. 물론 법원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추후 판결에 불리하게 작용할 여지는 있지만 이혼소송은 형사재판과 다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무조건적으로 우선권을 가지고 있지도 않으며 형사처벌과 관련된 어떤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어느 한쪽이 불리하지도 않다.


법원에서 내게 한 달에 두 번이라는 면접교섭권을 줬지만 나에겐 아이를 볼 수 있는 횟수와 시간을 더 요구할 권리가 있으며 양육권자인 상대에게는 그걸 거부할 수 있는 권리 역시 있다. 하지만 강제성은 없다. 서로 협의를 통해 조정할 수 있으며 법원에 추가적으로 요구를 할 수도 있다. 이혼소송 중 법원의 역할은 일종의 중재자이자 서로의 주장에 공증을 서주는 입장이라고 하면 설명이 쉬울까.


이를 깨닫고 난 이후로 나는 면접교섭 시간을 늘리거나 시기를 조정하는 등의 요구를 아내에게 별 악감정 없이 할 수 있었고 모두가 가능했던 건 아니었지만 사유가 명확하고 아이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선이라면 아내는 별 마찰 없이 면접교섭 내용을 조정해 줬다.


결국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경험으로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미리 알았더라면 그렇게까지 내가 충격을 받고 상황을 놓아버린 채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진 않았을 텐데, 조금은 아내를 덜 미워했을 텐데,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는 주장들을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조금은 덜 돌아갈 수 있었을 텐데, 어쩔 수 없이 누구도 내게 미리 알려줄 수 없는 부분이었다.


나는 아이가 없어졌다는 사실에 내가 다 잃었다고 생각했었고 끝을 알 수 없는 상실감에 극단적인 생각도 하루에 수십 번씩 하며 이따금씩 행동으로 옮기려는 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했었다. 이는 다시 분노로, 미움으로 변해 상대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며 결국 나 자신이 상처 입는 악순환을 반복했었다.


내 마음이 편하고자 하는 의도가 우선이지만 내가 어떤 식으로든 아내에게 미움을 가진다면 이는 아이에게 전해진다. 아이가 엄마와 함께 지내고 있는 상황이라면 아이가 감당해야 할 부담을 더욱 가중된다. 쉽게 말해 나는 아이를 잠깐 보는 동안 아이에게 엄마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면 끝이지만 아이는 그 감정을 입은 채로 엄마와 함께 다시 몇 주를 지내야 한다. 아이에겐 공포이자 고통이 될 수 있다.


자신이 부모로서 떳떳하다면 자신이 가진 권리와 한계를 명확히 구분해야 주장하고 물러서는 선을 찾을 수 있다.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해소는 그렇게 시작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당당해지는 만큼 아이가 본인과 지내는 시간 동안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다.


정말로 양육권을 주장하고 싶다면 가장 우선시 되는 건 아이의 결정이다. 시작이자 끝이다.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부모로서의 권리를 상기하고 품위를 지키되 아이를 우선한다면 아이는 부모를 따른다. 자신이 얼마나 상대를 미워하는지와 아이의 결정은 전혀 관련 없다. 순간 어떻게 편법을 쓰더라도 결국 아이들은 철저히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한다.


배우자와의 관계는 어쩌면 소송을 끝으로 마지막일 수 있지만 아이와의 관계는 그렇지 않다. 이혼 후에도 남는다. 정말 어려울 수 있겠지만 내가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이 얼마나 큰지 증명하는 건 한번 재고해 봤으면 좋겠다. 그래봐야 소송과 함께 끝날 사이다. 대부분의 이혼이 미움으로 남는 건 당시 본인의 태도가 판결로 남기 때문이다.


만약 그 순간을 조금이나마 더 나은 쪽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앞으로 자랄 아이에게 내가 어떤 사람으로 남을지를 고민하는 쪽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두고두고 후회할 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에너지를 쌓아갈 수 있는 쪽은 아이와의 관계다.


이혼을 겪는다 할지라고 당신이 부모로서 가지는 권리는 누구도 뺏지 못한다. 앞으로도 영원히 짊어질 족쇄이자 책임이고 마지막 기회다.


부디 이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위로이자 희망이 되길.

이전 16화 양육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