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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온 Sep 17. 2023

양육권

당신은 아이를 키울 건가요

만약 가정주부의 삶을 택하지 않았다면 아빠가 법원으로부터 양육권을 받아내기란 굉장히 힘들다.


근무시간이 길던 내 경우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가뜩이나 아이와 보낸 시간이 엄마에 비해 짧은 마당에 아내가 아이를 데려간 채로 소송을 시작해 버려서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소송기간 동안 내가 아이와 보낼 수 있었던 시간은 한 달에 두 번 주말뿐이었다. 그와 반대로 아내는 아이와 같이 생활하며 양육권을 서서히 굳혀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게 아이를 엄마에게 보내라고 말했다. 나와 가장 친한 친구들은 되려 본인들이 더 열을 내며 어떻게 해서든 아이를 데려와야 한다고 부들거렸지만 가족들을 포함해 대부분의 어른들은 내게 그냥 애엄마에게 애를 보내주고 사는 편이 훨씬 편하다며 양육권을 주장하는 나를 만류했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는 조금 다른 이유로 만류했다. 앞서 이야기했듯 확률이 낮다는 이유였다. 이번 소송의 사유 자체도 합리적이지 않고 가출을 감행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시작했기 때문에 이혼 소송 자체는 유리하게 진행될지 모르나 양육권은 다른 이야기라고 너무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얘기했다.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헛될 것 같은 좌절감에, 딸을 놓쳤다는 절망감에, 점점 힘이 빠지는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에 너무 많이 울었다.


살면서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게 한두 개가 아니라지만 그래도 내 딸이잖아. 같이 살 수 있게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냐. 


딸과 함께 놀러 다니며 찍었던 사진들과 영수증들을 모았다. 딸을 데리고 병원에 갔던 기록들을 찾고 딸이 좋아하는 음식과 내가 이해한 딸에 대해 장문의 글을 쓰고 육아교육을 들으러 다니며 육아에 대한 책을 읽은 후 독후감을 제출했다.


친구들은 가족들까지 동원해 탄원서를 써 모아 내게 보내줬으며 딸을 키우며 도움이 될만한 물건들을 보내줬다.


나와 내 주변의 노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이 모든 노력들이 다 헛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미안함, 비참함도 같이 쌓여갔었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법원에서 알아주지 않는다면 적어도 나중에 딸에게 보여주리라. 이 많은 사람들이 아빠를 믿어주고 우리가 같이 살기를 응원해 줬었다고. 아빠는 너와 살기 위해 그 어둠 속에서 바득바득 기었다고.


독한 마음은 아니었다. 울고 울다 속이 좀 후련 해 지고 나면 양육권을 주장할 수 있는 다음 준비를 해나갔었다.


의외로 알게 된 사실은 양육권자 지정에 있어 경제력은 그렇게까지 비중이 크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양육권은 철저히 아이를 기준으로 정해진다. 만약 수입이 높은 경우라도 아이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없는 사람이라면 부적격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반대로 상대방에 비해 수입이 현저히 낮은 경우라도 아이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으며 아이와 유대관계도 좋다면 양육권자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상대의 높은 수입은 양육비에 반영되어 높은 양육비가 책정된다. 물론 그에 상응하게 양육 외적으로 다른 권리를 주장할 수는 있으리라.


흔히 사람들은 양육권과 양육비를 묶어 소송에서 이기고 지는 기준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양육권은 아이가 이혼한 부모의 가정 중 어느 곳에서 성장했을 때 더 좋은 환경일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정해질 뿐 상대의 유책사유와는 또 다른 이야기다. 


조금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불륜을 저질러 가정을 파탄 낸 이라 할지라도 아이에게 더 나은 양육환경을 줄 수 있고 아이와 같이 지낸 시간이 더 많은 이라면 양육권자로 지정될 수 있다. 상대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일지 모르나 사실 이 경우엔 유책배우자보다도 부모로서 부적합한 본인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양육권을 가지지 못한 이는 양육비에 대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충분히 이해 간다. 나 역시 소송을 시작한 이래 일상이 망가지며 경제적으로 궁핍해졌던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양육비를 보내야 했다. 당연히 힘들었고 억울했다. 하지만 소송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양육비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양육권 주장에 불리해질까 봐 가진 물건을 팔고 통장들을 모두 정리해 가며 어떻게든 양육비를 냈다. 


아이와 함께하지 못하는 것도 억울한데 돈까지 내야 한다니. 이에 대해 변호사는 건조하지만 명쾌하게 설명해 줬다. 누군가 내 아이를 한 달에 25일가량 밤낮으로 돌봐주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아이가 좋아하는 사람이고 내가 적어도 양육에 대해서는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 월급으로 양육비를 준다고 생각했을 때 그리 높은 금액은 아닐 거다. 내겐 어떤 말보다 빠르게 납득할 수 있었던 설명이었다. 


그렇게 양육비에 대한 거부반응은 줄었지만 아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은 여전히 힘들었다. 사람들은 아이를 맡기고 일에 집중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냉정하게 말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텅 빈 집에서 혼자 눈뜨는 매일이 무기력했고 금세 지쳤으며 무슨 일을 해도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소모적이고 무의미했다. 


난 내 평생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학생시절 공부 역시 내가 좋아하는 과목들만 철저히 공부했었으며 전공과목 역시 이후의 장래와는 아무 상관없이 내가 듣고 싶은 과목으로 정했다. 내가 종사해보고 싶은 분야에만 이력서를 넣었으며 내가 하고 싶은 일로 개인사업을 시작해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정해 내 터전을 잡았다. 가정을 꾸리고자 했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과 결혼해 소중한 아이를 얻었다. 


아이가 생기면서 이전에 비해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이 줄어 적응하는 시간도 필요했지만 어느 순간 아이에겐 부모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고 내가 해야 하는 역할들을 자연히 알게 됐다. 아이를 우선하는 삶에 거부감을 일으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아이와 보낼 시간을 위해 근무시간을 줄이고 수입을 줄이는 과정들이 오히려 홀가분하고 행복했다. 


이전까지 나를 위해 하고 싶었던 일들에 대해 미련 없이 해왔으며 지금의 내 행복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과 아이를 위해 내가 바꿀 수 있는 나 자신에 대한 고민들이다. 저마다 추구하는 행복이 다르듯 지금 나에겐 그게 내 행복이다. 뭐가 더 낫다는 둥 어떤 선택이 합리적이라는 말들은 내게 그저 소음이다. 살면서 후회하는 부분들도 있겠지. 그 후회들 마저 온전히 내 몫이다. 


그래. 하는 데까진 해보자. 내가 원하는 걸 끝내 얻진 못하더라도 미리 포기하진 말자. 그렇게 발버둥 치는 것마저 내 행복이자 아이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리라. 


몇 번이나 무너지는 나를 그 마음 하나로 지탱해 왔었다.  


어느 날 변호사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아내가 양육권과 친권을 포기했다는 전화였다. 아이는 재판이 끝나면 우리 집으로 보내질 거라고 했다. 


믿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변호사는 거짓말하는 직업이 아니니까. 하지만 한동안 할 말을 잇지 못한 채로 가만히 있던 나는 몇 가지 간단한 질문만 확인한 후 전화를 끊었다. 


한참을 혼란스럽게 앉아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받는 친구의 목소리를 듣지 마자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들으면서도 너무 서럽게 울었다. 그 친구는 내가 우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친구였는데 순간 당황해 버벅거리며 무슨 일이냐고 재차 물었다. 


애엄마가 애를 안 키운다고 했다고, 우리 애 불쌍해서 어떡하냐고,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냐고. 


그래 난 어쩌면 아이가 엄마 손에서 사랑받으며 크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스스로 위안해 왔는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해 온 나는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었기에 비겁하지만 엄마와 함께 자라며 나를 좋은 사람으로만 기억해 주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라며 숨어왔는지도 모른다. 


어렵다는 말을 반복하는 친구의 한숨과 함께 그래 이제는 정말 잘 키우는 수밖에 없구나 싶어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래 결국 같이 살게 됐구나. 사람 일은 참 알 수 없다. 애엄마가 아이를 포기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듣는다 한들 내가 이해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저 서로 행복한 길로 걸어갈 수 있길 바랄 뿐. 


듣기에는 누군가 이혼을 하고 누가 애를 키우게 됐다는 이야기들이 간단할 수 있지만 사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이야기고 앞으로도 이어지는 끝없는 이야기다. 


소송이 어떻게 돼 가냐는 질문에 결과는 아직 모르지만 아이와 함께 살 것 같다는 얘길 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걱정부터 한다. 애 키우면서 일할 수 있겠느냐고. 애한테 매여서 살아도 괜찮겠느냐고. 힘들지 않겠냐고. 


역으로 물어보고 싶다. 혼자 살면서 일하는 그 삶은 쉬우냐고. 진정 홀로 스스로를 위해 온전하게 살아가고 있냐고. 그 삶에 완전함을 느끼며 스스로 만족하냐고. 앞으로 펼쳐질 내 삶이 정말 그보다 못할 것 같냐고. 


그저 양육비만 맞추며 살아가던 한 달 한 달이, 아이와 함께 보내는 주말 외에는 흑백사진처럼 색이 느껴지지 않는 일상이, 억지로라도 먹고 힘내보려다 되려 다시 게워내며 울던 기억들은 쉬울 것 같냐고. 


아이 없이 살아가는 삶을 자유롭게 느껴본 적은 단연코 없었다. 그래 누군가에겐 아이에 매여 살아가는 삶이, 아이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던 희생이 구속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 자신이 주저하다 놓쳐버린 수많은 기회들을 아이로 핑계삼거나 위안 삼으며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겠지. 


나 역시 훗날 그렇게 살아갈 수도 있겠지. 그 모든 걸 받아들였다. 나에겐 아직 할 일이 있다. 적어도 내가 아빠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해본 후에야 비겁한 변명을 늘어놓든 스스로를 지금보다 원망하든 그곳으로 가는 걸음을 주저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지금부터 나로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그 길 위에 아이와의 삶이 있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그냥 그렇게 알고 있다. 먼 훗날 아이가 나와 만났던 삶이 너무나 불행했다고 나를 원망한다면 그 고통마저 어떻게든 받아주마. 그때의 내가 아무리 부족한 사람이더라도 그 또한 내가 짊어지고 가리라. 그게 내 삶을 찾아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선물일 테니. 


현실적으로 보면 지금 당장 아이를 보낼 유치원을 찾는 일조차 쉽지 않고 아이를 돌보기 위해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을 그만두고 커리어와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을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조차 받아들였다. 그 길었던 어둠 속에서 아이는 내게 항상 빛이었고 나는 빛을 따라 걸을 뿐이다. 말로 설명하긴 힘들지만 집착이 아닌 내게 주어진 길을 그저 걸어가는 담담함에 가깝다. 


부디 행복하길. 어떤 어려움이 찾아오더라도 끝끝내 행복하길. 이기적인 바람일지도 모르겠지만 네가 정말로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내가 살아가며 가까이서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다면 아빠는 그걸로. 그건 네가 태어나던 그 순간부터 정해져 있었다는 걸 너는 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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