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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온 Sep 11. 2023

아프다는 말

이유 없이 화가 날 때

다친 동물들은 예민하다. 건강했고 자신감 넘쳤던 개체들일수록 다쳤을 때 더 사나워지고 예민해진다. 


약자가 돼버린 자신을 들키고 싶지 않은 건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외부 자극에 대한 감도를 올리는 건지 구체적인 우선순위를 매길 순 없지만 아픈데도 여느 때처럼 웃으며 남들을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초인이거나 모종의 이유로 통증을 느낄 수 없는 사림이리라. 


이제 말의 순서를 바꿔본다. 기분이 나쁜가. 오늘따라 저 사람의 말투가 묘하게 거슬리는가. 이전부터 어떤 일이 계속 마음에 안 들었는데 오늘은 정말 못 참겠다는 생각이 드는가. 분명 어제까지의 나는 기분 좋게 카페도 들렀다 오고 여느 때처럼 식사를 하면서도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오늘의 내가 너무 비참하고 덧없게 느껴지는가. 갑자기 평소에는 생각도 들지 않던 음식들이 떠오르며 지금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이 초라하게 느껴지는가. 


혹시 내가 지금 아픈가, 하는 걱정을 한번 해보는데서 많은 걸 알 수 있다. 사실 세상도 타인도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확 좋아지지도 않고 반대로 그렇게 확 떨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한 사람의 컨디션은 그럴 수 있다. 마치 방금 전까지 잘 굴러가던 차가 기름이 떨어지거나 엔진과열이 오면 손 쓸 여유도 없이 멈춰버리듯 사람의 컨디션 역시 어느 임계점을 넘는 순간 거짓말처럼 바뀔 수 있다. 


단서는 여러 가지가 있다. 평소보다 단 걸 더 찾고 있다던지, 오늘따라 모든 일들이 잘 안 풀린다던지, 대단하지 않은 실수인데도 그 실수가 자꾸 불안하게 느껴진다던지. 이 순간들이 왔을 때 혹시 내가 아픈가? 나 지금 몸이 안 좋은가?라고 생각하는 순서를 당겨본다면 자신의 컨디션을 빠르게 점검할 수 있다. 


내 경우엔 장이 예민한 편이라 좋지 않은 음식을 먹었을 때, 혹은 너무 급하거나 과하게 먹었을 때 복통이 생기는데 이게 워낙 만성이다 보니 스스로 느끼지는 못하고 있지만 사람이 묘하게 예민해진다. 이미 얼굴이 찌푸려져 있고 모든 말에 예민하다. 최근에는 조금 나아졌지만 난 오랫동안 큰 체구로 무리하게 육체활동을 하다 한동안 무릎과 발목이 좋지 않았었는데 누가 옆에서 별 뜻 없이 행동을 보채는 듯한 말을 하면 예민하게 반응하곤 했었다. 신체능력이 떨어지고 나니 서둘러 움직이는 것에 대해 환멸이 들었었다고 해야 하나.  


만약 정말 세상이 오늘따라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고 상대방이 돌아버린 거라면 쉽다. 한걸음 떨어져 상황을 지켜보면 된다. 십중팔구 내가 손쓸 수 있는 상황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내 한 몸에 대한 거라면. 그로 인해 비롯된 거라면. 내 몸 역시 쉽게 바꿀 수 있다. 다만 어디가 어떻게 좋지 않은 건지 명확하게 알기까지의 시간이 걸릴 뿐. 그러려면 잠시 숨을 고르고 혼자 조용히 기다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스트레스 호르몬들은 위급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방어기능이다. 당신이 길에서 호랑이를 만났을 때 살 수 있는 확률이 가장 높은 행동으로 아무 생각 없이 평소보다 높은 신체능력으로 그 상황에서 도망칠 수 있는 몸을 만들어준다. 피는 빠르게 돌고 시야는 좁아진다. 그저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벗어날 때까지 그 상태는 계속된다. 


호랑이는 없다는 걸 몸에게 차분히 알려준다. 나는 안전하다는 걸 몸이 믿지 못한다면 위협이 없다는 것만이라도 알 수 있게 기다려준다. 숨소리가 가라앉을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준다. 내 경우엔 내 차에 앉아 그 시간을 보낸다. 


그럴 시간이 없다고? 이대로 하루를 버릴 건지 지금 당장 몇 분을 투자할 건지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에 생각해 보라. 내가 하루를 망친다면 그 비극은 하루에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내가 하루를 살릴 수 있다면 그 역시 하루 이상의 가치가 될 수 있다. 


 만약 문제를 점검하는 그 몇 분 동안 정말로 내 몸에서 이상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 몇 분은 망쳐버린 하루 이상의 가치를 낼 수 있다. 내가 아픈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 하나만 받아들이면 이 대박 투자와 수익 회수가 가능해진다. 


나는 평생 내가 아프다는 말을 입밖에 꺼내는 걸 어려워했다. 


나는 어릴 때 잔병치레가 많고 또래보다 약했다. 수시로 병원을 다녔었고 대학병원에도 곧잘 갔었다. 살면서 코막힘 없이 숨 쉬어본 날이 손에 꼽히고 화장실을 나설 때 개운하다는 감정이 뭔지 잘 모른다. 내 치아에 문제가 없어진 건 치아 절반 이상을 임플란트로 바꾸고 나서야 가능해졌고 만성이었던 구내염이 줄어들며 먹고 마시는 행위가 즐거워졌다. 


내 부모님은 내가 아프다는 말을 지겨워해 내가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짜증부터 내셨다. 아침에 내가 피곤하다고 말하면 발로 차서라도 일으켜 세워 제시간에 움직이도록 만드셨다. 자연히 내 입에서 아프다는 말은 힘을 잃어갔고 내 컨디션이 어떻든 외부적인 스케줄이 맞춰 움직이는 것이 습관이 됐다. 


시간이 조금 흘러 성장기가 오고 나는 운동을 시작했으며 또래보다 체구가 커지면서 육체적인 능력이 갑자기 좋아졌다. 미열이 있어 베스트 컨디션이 아니더라도 체력으로 누르는 것이 가능해졌고 남들이 쉬는 동안 쉼 없이 다음 일을 하는 것이 가능했고 또 그게 내 프라이드였다. 


주변 친구들은 공부와 운동 모두 잘하는 나를 부러워했고 나는 그런 나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항상 나를 엄격하게 대했다. 이는 직장생활에서도 이어져 같은 업무시간 내에 나는 항상 남들보다 더 많은 일을 했고 남들보다 더 빠르게 진급하는 것도 모자라 따로 개인사업을 벌일 수 있는 여력 또한 생겼다. 


개인사업을 시작한 후 나는 내가 낸 성과가 내 수입과 직결된다는 것에 희열과 긴장감을 동시에 느꼈으며 주말에 쉰다는 개념이 사치이자 별 볼 일 없는 자기 인생에 대한 무책임 정도로 치부하며 스스로를 더욱 몰아갔다. 


내게 쉬는 시간은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대중교통 속에서나 운전하는 시간, 누워있으면 해이해진다는 생각에 산 캠핑의자에 앉아 스마트 폰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시간이었다. 담배를 피우는 시간 아니면 일을 멈추지 않았고 급기야는 일하면서도 담배를 피울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술을 끊을 수 있었나 싶다. 술을 마시면서는 일을 할 수가 없고 숙취가 남아있는 동안에는 정상적인 폼을 유지할 수가 없으니. 


돌이켜보면 그 시절동안 아파서 드러누워본 적은 없었지만 정말로 아프지 않았던 건지 아픈 걸 몰랐던 건지 이제 와서 알 방법은 없다. 심증만 남아있을 뿐. 그래, 어쨌든 지나왔다면 그걸로 그뿐. 


결혼과 동시에 나는 생활 자체를 조금 여유 있는 환경으로 옮겼다. 


생활비가 적게 나가니 무리해서 일을 해야 할 이유가 줄었으며 아내 역시 경제활동을 했기에 내가 아파서 며칠 쉰다 한들 생존에 아무 위협도 없었다. 매일 두세 가지의 일을 하던 생활에서 점점 하루에 한두 가지 정도의 일만 하는 생활로 서서히 옮겨갔는데 처음에는 갑자기 주어지는 시간이 너무 비는 것처럼 느껴져 오히려 불안했었다. 그러다 간헐적으로 일을 하면 오히려 힘이 남아돌아 일이 더 빨리 끝나니 시간이 더 비는 것처럼 느껴졌다. 


적당히 쉬면서 일을 하면 능률이 올라간다. 이 간단한 사실을 나는 참 늦게 알았던 것 같다. 쉬어본 적이 없으니 알 방법도 없었지. 쉬는 동안 다음 할 일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평소보다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들이 떠올랐고 작업에 들어가면 어느 때는 정말 힘을 1도 안 들이고 순식간에 끝낼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전반적으로 쉬워졌다. 그러면서 몸이 다른 방식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여태껏 굴려왔던 몸 전체가 긴장감이 떨어지며 농성을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안 아픈 곳이 없었다. 매일 커피와 콜라를 달고 살았던 내 입 속은 말 그대로 초토화되어 있었다. 어느 날 이가 아파서 치과에 가면 뿌리가 삭아 바로 임플란트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남아있는 치아들도 모두 시간의 문제였다. 어쩐지 구취가 심하다 했다. 


온몸의 연골들은 성한 곳이 없었는데 체력이 좋다 보니 무겁게 드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자꾸 무거운 걸 들게 되고 이는 발목과 무릎에 지속적으로 부담을 줬는데 이 습관은 되려 근육을 더 키우며 더 큰 무리를 주고 있었다. 


활동량이 많다 보니 먹는 음식 또한 엄청났었는데 기본 3인분을 먹어대던 습관이 생활이 미니멀해진 후에도 남아 점점 체중이 불어갔고 나는 무의미한 육체활동을 하며 이를 해결하려 했다. 이는 결국 또 육체건강 악화로 이어져  내 몸에는 성한 구석이 없었다. 


시간은 비는데 항상 뭔가 바쁘고, 경제적으로 쪼들리지는 않지만 항상 뭔가를 사야 하고 채워야 하고, 공허하고 아프고, 그러다 보니 나는 항상 짜증이 나있었고 초조했던 것 같다. 내 입에서는 어디가 아프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어느 날은 정말 몸이 무너지는 것처럼 아팠지만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내는 내가 아프다고 할 때마다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나는 억울했다. 정작 매일 아파서 드러누워있는 건 본인이 아니었던가. 실제로 그 말을 했었다. 내가 아프다고 뭘 안 한 적이 있냐고. 아프다는 말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그러면 아내는 내게 그럼 혼자 하라고, 그걸 들어야 될 이유는 없다며 등을 돌렸다. 그렇게 아프다는 말은 다시 한동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고 어느 순간 내 생활은 다시 하루에 일을 두세 개씩 하는 패턴으로 돌아가있었다. 


지금도 아픈가. 아프다. 


우선 왼쪽 무릎이 아프다. 어느 정도로 아프냐. 왼쪽 다리를 잘 쓰지 못해 양쪽 허벅지 근육의 크기가 눈에 띄게 다를 정도로 아프다. 그래서 어떻게 하고 있냐. 왼쪽 다리로 움직일 수 있는 정도의 활동만 한다. 오른쪽 다리의 활동이 서서히 줄어들며 근육 크기가 비슷해져 간다. 시간이 지나며 왼쪽 다리의 컨디션이 다시 좋아지고 있는데 아마 내년에는, 그 후에는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낫지 않을까. 


복통은 여전한가. 그럴 것이다. 그건 체질이니까. 하지만 지난 몇 달 동안 복통을 크게 느껴본 적은 없다. 내게 맞는 음식들을 찾아냈고 예정에 없던 과식이나 입에 맞지 않는 음식들을 거절하는 방법을 익혔다. 먹는 음식들이 단조로워지니 감정기복도 줄어 체력적으로는 오히려 이전보다 피곤을 덜 느낀다. 


이전에는 머리만 대면 잠들곤 했지만 지금은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을 때까지 머리를 대고 있다. 이전까지의 생활이 항상 머릿속에 구름이 껴있는 기분이라면 지금은 그때보다 또렷하다. 가끔 살짝 번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혼자 조용히 나를 점검한다. 대부분의 경우 잠깐의 낮잠으로 해결된다. 


치아는 여전히 진행 중인데 담배, 콜라와 커피를 줄였더니 자연히 구강건강이 좋아졌다. 이미 망가진 치아들은 어쩔 수 없지만 착실하게 임플란트로 교체 중이고 소화에 적당히 시간이 걸리는 음식들을 먹기 시작하니 충치도 극단적으로 적어졌다. 입 속이 편하니 확실히 덜 예민하며 구취가 없어지니 남들을 마주하고 대화하는데 불편함이 없다. 


무릎을 예전처럼 못쓰면서 척추에 한번 디스크가 왔었는데 허리가 아프면 정말 아무것도 못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몇 달에 걸쳐 자세를 교정하고 평소 쓰던 책상과 의자의 높이들을 바꿨더니 해결됐다. 모니터와 키보드를 맞는 위치에 놓았고 운전하는 자세도 바꿨다. 고개 위치도 편하게 놓을 수 있게 헤어스타일도 바꿨으며 이제 어지간하면 누워있다. 꼭 서있거나 앉아있어야 하는 이유가 없다면 누워있는 게 습관이 됐고 누워서도 책을 읽을 수 있게 거치대와 잠망경을 샀었는데 정말 요긴하게 쓰고 있다. 누워있다 보면 졸리지 않냐고 주변에서 물어보는데 그럼 잔다고 대답하는 나를 외계인처럼 본다. 


졸리잖아. 그럼 자야 되잖아. 낮에 너무 많이 자면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도 있다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대신 일찍 깨는 경우는 많다. 일찍 깨어 다시 잠이 오지 않으면 책을 보거나 이런저런 글을 쓴다. 자연히 잠이 오면 다시 잔다. 


그렇게 살면 사회생활은 어떻게 하냐고 걱정하는 사람들, 특히 우리 어머니, 이 있는데 굉장히 잘 살고 있다. 항상 컨디션이 좋으니 내가 손대는 일은 대부분 금방 끝나고 여유가 있으니 마감도 좋다. 바쁘게 일하지 않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편하다. 자연히 감정싸움도 줄어든다. 순간 이유는 알 수 없어도 내키지 않는 일은 처음부터 받지 않으니 일에서 일로 넘어가는 흐름이 부드럽다. 예전부터 쌓아온 실력들이 있으니 업무에 관해 기본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람이고 컨디션에 무리가 갈 것 같으면 수입을 줄여서라도 일을 줄인다. 그릇만큼만 하면 아무 문제없다. 오히려 플러스로 돌아온다. 


생활 자체를 줄였다. 쓸데없이 새어나가는 돈들을 줄이거나 없앴다.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을 다 먹기 전까지 장을 보지 말자고 생각했더니 몇 달째 제대로 된 장을 본 적이 없다. 간간히 야채만 신선하게 살뿐. 먹는 양이 줄어 그나마도 어쩌다 한번 몇천 원만 나간다. 냉장고 속은 아직도 줄어가는 기미가 없다. 먹지도 않을 음식들을 그렇게도 사놓았었다. 


느긋해지며 가장 눈에 띄게 줄어든 건 자동차랑 관련된 지출이다. 예전에는 쉬는 날이면 어디 가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었는데 요즘은 쉬는 날 그냥 집에서 조용히 쉬니 따로 나가는 기름값도 줄고 예전처럼 엑셀을 꽉꽉 밟지 않으니 황당할 정도로 연비가 좋아졌다. 타지 않는 차 역시 정리해 보험료나 세금도 줄었고 오랫동안 차를 타며 소모품 관리하는 방법을 알게 되니 수리로 나가던 돈들이 극단적으로 줄었다. 예전엔 마음이 급해 교통딱지를 곧잘 떼이곤 했었는데 시간 여유가 생기니 자연히 교통법규 안에서 움직이게 됐다. 


원래가 친구를 만들고 주말마다 같이 몰려다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은 아닌데 간단히 만나 밥 먹는 일도 귀찮아서 그만뒀더니 생각보다 금적전으로나 시간적, 정서적, 체력적인 지출이 많이 줄었다. 오히려 좋은 컨디션과 여유를 유지했더니 항상 친절을 유지할 수 있었고 인간관계는 더 좋아졌다. 


기본 생활에서 나가는 지출들을 최소화하니 내게 필요한 돈들은 자연히 줄었고 이는 내 결정에서 무리한 선택을 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언뜻 보면 절간에서 사는 사람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침대에서 일어나 있는 시간에 내가 하는 일들은 결코 양이 적지 않으며 질적으로도 내 삶에서 최고다. 행동과 행동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빨라 보이지 않지만 금방 끝나며 무엇보다 같은 일을 하고 돌아섰을 때 항상 남들보다 빨리 끝나지만 여유가 남아있다. 


난 금욕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게 뭔지만 남겼더니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별로 많은 걸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나도 처음 알았다. 


자연히 내 능력과 그릇이 커지면 내 삶의 규모도 바뀌지 않을까. 삶의 가치는 아픈 걸 참고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잘 돌보는 만큼 내게 주어지는 여유라는 생각을 최근 들어 하기 시작했다. 


흔히 큰돈을 버는 건 운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걸 담아내는 건 자기 그릇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릇의 크기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아프다는 건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마치 상대가 말을 듣지 않으면 자연히 목소리가 커지는 것처럼 아플 정도로 몸이 목소리를 키울 때까지 자신이 귀를 닫고 있지는 않았는지. 


당신은 정말 아프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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