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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온 Oct 07. 2023

말투

사소한 것에서부터

아내가 떠나고 오랫동안 혼자 집에서 공허하게 지냈다.


며칠씩 바깥으로 나가지도 않고 심리상담을 제외하고는 사람도 만나지 않았으며 그나마 친한 몇몇과 통화만 했을 뿐 집에 틀어박혀 혼자 시간을 보냈다.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시간은 의외로 잘 간다.


힘들었다기보다는 그다음 뭘 해야 할지 몰라서, 갑자기 걷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그다음 해야 할 일들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돈을 벌어야 할 이유도 떠오르지 않았고 일을 하며 얻는 보람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비어있었다. 사람들과의 대화들이 의미 없게 느껴졌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흑백사진 속에 혼자 갇힌 기분이었다.  


우연히 일할 곳이 생기며 갑자기 다시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기까지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말투가 많이 변해있었다.


이전의 나는 심드렁하지만 콕콕 찌르는 듯한 말투였던 것 같다. 내 사람과 아닌 사람을 확실히 구분 짓는 말투였으며 내 생각을 빠른 시간 안에 쌓아 올려 표현하는 식이었다.


말투는 일종의 습관이자 외모와 더불어 자신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다. 아무래도 당시 나는 무언가를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것 같다. 때로는 비속어까진 아니더라도 거친 표현을 곧잘 섞어 쓰곤 했으며 남들이 잘 쓰지 않는 어려운 단어들을 쓰는 것에 익숙해 사교적인 대화를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왜 대화하는 게 어려웠을까 생각해 보면 청소년기에 들어가면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한국에서 자라지는 않았는데 한국어로 된 잡다한 책들을 많이 읽다 보니 일반적인 사람들의 대화방식을 배우지 못해서였던 것 같다. 그래서 글 쓰는 걸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글을 쓰는 동안은 온전히 내가 원하는 단어들을 내 방식대로 쓸 수 있었으니까.


당연히 시간이 지나며 경험이 쌓이고 어떤 상황에서는 어디까지만 어떻게 말하는 게 맞는구나, 정도는 학습된다. 그렇게 점진적으로 조금씩 말투나 성격이 변해갔었던 것 같다.


소송이 시작되고 그동안의 일상이 통째로 날아가버리면서 내 성격과 말투는 이전과 많이 달라져있었다.


새 직장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사람들과 곧잘 인사하고 대화도 길게 하며 내 말투가 굉장히 부드러워졌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나를 사교적이라고 알기 시작했으며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내게 인사를 건네고 말을 걸어왔다.


저녁식사에 곧잘 초대됐으며 낮에도 쉬는 시간만 되면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다. 좋은 경험이었다. 말투와 표정만 바뀌어도 이렇게 살 수 있구나.


몇 달 가지 못했다.


초대돼서 가는 저녁식사 자리였지만 매번 얻어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사실 어디 초대될 때마다 잔고를 열어 양육비와 월세를 세어봐야 했다. 술도 마시지 않는데 초대되어 간 저녁자리는 곧잘 술판으로 이어졌고 나는 취한 이들이 자기들끼리 신나 있는 모습만 구경하다 오는 일이 반복됐다. 그렇게 늦게 집으로 돌아와 정신없이 잠에 들었다 깨어나는 아침이 너무 싫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왔다. 인사를 해도 건조하게 받는 모습이 이상했나 보다. 숨길 생각 없이 그냥 요즘은 조금 혼자 지내고 싶다고 대답했다. 웃으며 인사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냐는 말에 그마저 힘든 사람도 있다고 되려 내가 양해를 부탁했다.


아이러니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동안에는 오히려 말을 버벅거렸다.


단어와 문장을 세심히 골랐으며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억양도 조절했다. 미국사람들과 어울려 일했기 때문에 말투도 미국식 억양과 발음을 따로 연습했었는데 이따금씩 영국식 억양이 나오면 사람들이 의아해하곤 했다.


조용하지만 사교적이고 말수가 적은, 친절한 사람 정도로 보였나 보다.


그냥 태어난 대로 살기로 결정하고 인사도 그 순간 할 수 있는 만큼만, 어차피 많이 먹지도 않을 거 그냥 저녁식사 초대는 몇 번 거절하니 그 뒤로는 초대가 끊겼다. 며칠 좀 허전하더니 곧 익숙해졌다. 쉬는 시간에는 차에 들어가 혼자 조용히 눈을 감고 쉬었다.


어느 순간 말투가 영국식 억양으로 바뀌었다. 한국말 역시 고향의 말투가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쩌다 툭툭 나오는 정도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발성까지 바뀌고 성격이나 표정도 원래 모습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걱정을 조금 했었다. 난 항상 나를 조금 미성숙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행여나 내 미성숙한 모습들이 튀어나와 또 문제를 만들지 않을까 겁이 조금 났었던 것 같다. 물론 호불호는 생겼지만 막상 꺼내놓고 보자 나는 이미 내가 걱정하고 있던 모습들보다 성숙해져 있었다.


오히려 말을 편하고 길게 할 수 있었고 상대방이 말하는 동안 듣고 있는 것에 별 에너지가 들어가지 않았다. 애초에 나와 잘 맞았던 사람은 이전보다 더 편하게 나와 대화할 수 있었고 사실 별로 아니었던 사람들은 대번에 툭툭 떨어져 나갔다.


이제 와서 되짚어보면 아내는 내 말투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뱉은 문장들을 종종 교정해 줬으며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다시 한번 말해보게 시키곤 했다. 일종의 사회화 교육이었을까.


수많은 자기계발 콘텐츠들은 꾸준한 습관이 사람을 바꾸고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잠깐은 그럴 수 있겠지. 본성은 언제고 제 모습을 찾는다. 본성은 스스로 성장하고 변화하며 원래대로 되돌린다. 이를 영구적으로 바꿀 수는 없다. 바뀐 상태를 유지하려면 지속적으로 에너지가 소모되고 사람에겐 한계가 있다.


말투는 본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거울 중 하나다. 말투는 바꾸는 게 아니다. 스스로 성장함에 따라 바뀔 뿐. 한없이 더 나아진다 한들 내 말투를 싫어하는 사람은 여전히 존재하며 내가 억지로 바꾼다 한들 쉼 없이 변화하는 주변 환경을 따라갈 수 없다.


모든 행동이 그렇다. 의식적으로 집중해서 할 수 행동들은 경직되고 짧다. 머리로 이해하는 걸 넘어 몸이 이해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동들은 끝이 없고 에너지를 계속해서 만들어낸다. 말투 역시 그렇다. 타인의 호불호만 있을 뿐.


나를 다시 찾는 작업 중 하나로 내 말투를 다시 찾는 중이다. 말투가 거칠다면 내가 어딘가 화가 나있는지 궁금해한다. 날카롭다면 어딘가 신경 쓰이는 일이 있는지 되짚어본다. 말투가 지나치게 친절하다 싶으면 내가 경직되는 상황에 있는지, 왜 경직되는지 한번 살펴본다.


가장 편안한 상태를 유지했더니 말이 없어졌다. 물방울이 튀지 않고 조용히 흐르는 느낌이 들면 말투 역시 딱 그 정도로만 흘렀다.


내가 편해야 하는구나. 말투라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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