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피울 생각이 아니라면
담배를 끊으려는 시도는 종종 있었다.
그저 무지성으로 참아본 적도 있고 액상담배나 전자담배로 잠깐 바꾸려는 시도도 해봤는데 그때마다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었고 금연 기간도 제법 길 때가 많았다.
시작은 그냥 단순히 멋이었다. 어릴 적 만화책 속에 담배를 물고 분위기를 잡는 주인공들이 멋있어 보였고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흡연자를 선택했다.
주변엔 항상 담배를 피우지 않는 친구들보다 피우는 친구들이 더 많았고 술자리에서건 군대를 포함한 직장생활에서건 무리를 지어 담배를 피우는 자리에서는 유대감 비슷한 감정과 함께 여러 이야기들이 오갔었다.
잦은 회식에 질려 술을 일찍 끊었기 때문에 담배는 오랫동안 내게 몇 안 되는 유희거리 중 하나였다. 이제 끊을 때가 되지 않았냐 주변에서 물어보면 나는 술 마시는 값보다는 훨씬 덜하지 않냐고 핑계를 대곤 했었는데 사실 그냥 끊을 생각이 없었을 뿐이었다.
가끔 정말 피우기 싫을 때가 있었다.
한여름에 더워 죽겠는데 에어컨 밖으로 나가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담배를 피워야 하는 상황이라던지, 쇼핑몰에서 흡연구역을 찾아갔더니 저 멀리 보이는 흡연구역에서 뿌연 연기가 뭉게뭉게 나오고 사람들은 수용소에 격리된 사람들 마냥 갇혀있는 것처럼 보인다던지, 내가 곧 그들 중 한 명이 된다는 생각이 불쾌하게 느껴진다던지, 어느 겨울 입김인지 연기인지도 모르게 차가운 공기 속에서 담배를 태우고 따뜻한 실내로 들어왔는데 몸, 특히 손에서 구질구질한 냄새가 올라온다던지. 아 그냥 끊을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었지만. 좀 약했지.
흡연자들이 대부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난 염증을 달고 살았었다. 구내염부터 시작해 인후염 같은 각종 기관지염들이 생겼었는데 물론 양치를 잘하고 물을 잘 챙겨 마셨다면 모르겠지만 내가 뭐 그렇게까지 건강 챙겨가며 담배를 피웠을까. 그냥 시도 때도 없이 피워댔지.
어느덧 가장 육체적으로 건강했던 시기를 넘어가자 염증이 생기는 빈도가 점점 잦아지고 사회적으로도 흡연자들이 배척되기 시작했다. 갈수록 담배를 피우는 행위가 불편해졌고 그 모든 걸 감수하고서라도 얻는 대가가 잠깐의 느슨함과 고질적인 염증들이라는 걸 인지하면서 끊을 수 있다면 끊어야겠다, 정도까지는 생각이 진행됐었다.
아내가 이혼 소장을 보내기 얼마 전 아이와 함께 둘이서 나들이를 갔었다. 아이는 잠이 들었었고 나는 차를 조용히 세워둔 채 밖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혹시라도 아이가 깨어 울면 바로 알아챌 수 있게 창문을 잠깐 열어뒀었는데 내가 뱉은 연기가 차 안으로 들어갔었을까. 갑자기 차 안에서 기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모른다. 아이는 원래 목감기를 달고 살았었고 그 시기에는 항상 가래 끓는 기침소리가 났었다. 그런데 그 순간에는 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끊자. 이렇게까지 피워야 되나.
그렇게 액상담배도 시도해 보고 전자담배로 바꿔보고 몇 번의 시도를 거쳐 연초를 서서히 줄여갔었다. 거의 성공하는 듯했다.
아내가 이혼 소장을 보냈다는 사실에 나는 충격을 받아 편의점에서 담배를 세 갑 샀었다. 액상담배를 미친 사람처럼 흡입했지만 아무 맛도 나지 않았었고 전자담배를 꽂고 기다리는 몇 초의 시간 동안 전자담배를 부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역시 연초를 못 끊는 사람들은 이유가 있다.
그 자리에서 6개비 정도를 연달아 태웠다. 목에서 쉰소리가 나고 기침이 멈추지 않았지만 차라리 내 몸이 괴롭자 정신이 조금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일 년이 넘도록 나는 어떤 시도에도 금연에 성공하지 못한 채 하루에 한 갑 정도를 매일 태워야 했다.
스트레스가 올라올 때면 내 발걸음은 이미 자동적으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장소를 향하고 있었고 머리를 짓누르던 두통은 알싸한 담배 연기가 코끝에 스치는 순간부터 연기와 함께 밖으로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래. 그렇게라도 버티던 시기였지.
담배를 피울 때 특유의 호흡이 있다. 연초를 태우지 않는 사람들은 잘 모를 수 있지만 안정적인 호흡을 유지하지 않으면 이내 기침이 나오고 연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무의식 중에 호흡을 조절하게 된다.
아이러니하지만 연초를 피는 동안 호흡을 내뱉는데 집중하다 보면 일종의 간단한 명상 같은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대단한 수준의 어떤 건 아니지만 집중력을 다시 한번 모으는 그 효과는 가성비가 나쁘지 않다. 결국 호흡기에 생기는 염증은 생각만 해도 짜증 나지만.
지속되는 이혼 소송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무너지던 그 순간에도 술은 마시지 않았지만 담배는 정말 참을 수 없었다. 무슨 차이였을까. 술은 내가 아예 무너지는 기분이라면 담배는 점점 또렷해지는 기분이라는 차이가 있겠지. 난 맨 정신을 유지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니코틴은 중독성이 강해 쉽게 끊을 수 없다고들 한다. 접근성이 좋고 술자리보다 훨씬 간소하게 시작하고 끝낼 수 있는 간편함 또한 담배의 무기다. 아무리 담배 값이 올랐다지만 여전히 술보다 훨씬 싸다. 담배 한 보루를 끝내는 데는 며칠이 걸리지만 같은 돈의 칵테일 몇 잔은 30분 만에 끝낼 수도 있다. 술은 능률을 떨어트리지만 담배는 능률을 올린다. 술보단 여러모로 장점이 많다.
그래서 그게 담배를 피우게 되는 이유가 되냐. 아니. 위에서 나열한 그 어떤 이유도 담배를 찾는 사람들이 결국 담배를 입게 물게 되는 첫 번째 이유가 되지 않는다. 모두 이후에 붙는 변명거리다.
담배를 찾는 그 시작에는 불안이 있다. 어떤 이유의 불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선 불안이다. 사람이 감기에 걸리면 해열제를 찾지만 왜 감기에 걸렸고 정확히 어떤 균이 들어와 감기 증상이 시작됐는지는 그리 개의치 않는 것처럼 불안이 있는 사람들이 담배를 찾고 해열제처럼 불안을 누른다.
니코틴의 중독성이 흡연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가진 불안감이 담배를 만든다.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법을 따로 찾지 못해 담배를 찾게 만든다. 평소 타인에게 제대로 의사전달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취중진담이라는 수단을 만들어 속내를 얘기한다. 술에 취해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들이 보내는 환호와 지지가 술자리를 찾게 만든다.
이혼 소송이 시작된 이후 이해가 되지 않아 완전히 헝클어졌던 내 사고는 고장 난 기계처럼 끝없이 오답을 냈었고 이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계속해서 키웠다. 마치 도박판에서 계속 돈을 잃고 있지만 판을 떠날 수 없는 노름쟁이처럼 나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고 필연적으로 내 입에는 담배가 물려있었다.
무너졌던 내 자존감과 스스로에 대한 불신은 술자리에서 오가는 가벼운 위로와 지지, 환호, 동정을 찾게 했으며 그 시간과 그 공간 속 사람들이 진정 내가 있을 곳이라는 확신을 갖게 했었다.
약물은 약물이다. 시간이 지나면 몸 밖으로 배출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의 상실감은 다시 약물을 찾게 한다.
하지만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이 온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든 어떤 계기로 인지하게 되든 그 순간은 온다.
내가 불안한 건 금단증상이 아니라 내 환경과 내 행동, 사고가 조화를 이루지 못해 생기는 불협화음 때문이다. 그게 현실이고 내가 당장 손봐야 할 나 자신이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그때마다 담배를 찾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 이 순간 내가 어디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지 구분해야 하고 가장 중요한 건 휴식이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중 무료해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많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오버페이스를 하는 경우가 잦다. 집중력이 무너진 이유는 간단히 말해 지쳐서다. 능력을 벗어났기 때문에 집중이 깨졌던 걸 담배를 통해 억지로 다시 세우는 순간 오버페이스다. 그냥 잠깐 쉬는 게 낫다. 염증이 괜히 생기나.
술이 있어야만 대인관계가 부드러워진다고 믿고 있다면 그게 본인의 문제인지 상대의 문제인지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단순하게 얘기해서 술에 취해야만 얘기가 통하는 상대가 있다면 그 사람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으려면 항상 취해있어야 한다는 뜻이 된다. 몸이 먼저 상하지 않을까. 꼭 그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상대인가. 그 상대가 만약 본인이라면 본인은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술을 마셔야만 타인과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됐는가.
나는 여전히 술이 센 편이지만 술을 마시지 않는다. 간혹 술자리에 참석하게 되면 무알콜 맥주를 마신다. 요즘 세상이 좋아진 건 내가 그런다 한들 남들은 서로에게 별 관심이 없는 세상이고 오히려 건강에 좋은 행동이라며 장려해 준다. 간혹 빈정거리는 사람도 있지만 내 알바 아니다. 내가 먹기 싫다는데.
취해서 마음에도 없는 얘기를 하고 싶지도 않고 다음 날 기억이 나지 않는 척하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열변을 토하지만 기억에도 남지 않을 단어들을 뱉고 있는 그 밤이 아깝고 숙취로 날아가는 그다음 날이 아깝다. 이건 이미 20대에 끝낸 생각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담배를 끊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더 이상 찾지 않게 됐다.
혹자는 말하죠, 담배는 끊는 것이 아니라 잠시 내려놓는 것이다. 모르겠다. 다시는 피울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끝없는 불안감은 결국 내게 공황발작을 일으켰었고 이러다간 정말 죽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내 생활, 내 사고의 가장 밑바닥부터 뜯어고치기 시작하면서부터 서서히 담배가 줄어갔다.
담배를 대체할 무언가를 찾은 적은 없다. 그저 내가 언제 편안함을 느끼는지, 어떻게 하루를 시작하고 매듭지어야 내가 나로서 행복할 수 있는지에 집중했고 여전히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나를 찾고 있다. 금연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만약 억지로 참았다면 그에 상응하는 에너지로 다른 무언가를 찾게 됐었겠지만 필요가 줄어들면서 서서히 가라앉았다.
언젠가 나는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이 놀라지 않을까 기대한 적이 있는데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다들 먼저 말하지 않으면 내가 담배를 피웠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아 딱 그 정도였구나 담배라는 건.
내가 담배를 피웠었다는 사실을 나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때가 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