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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회 차, 한 살 생일

유방암수술 후 1년 정기검사

by 나즈

1년 질병휴직기간에 매주 월요일이면 ‘작가의 책상(창가 쪽에 옮겨놓은 컴퓨터 책상일 뿐이지만)‘에 앉아 늘 듣는 유튜브 채널 음악을 들으며 글을 썼다. 그래서 그 음악을 들으면, 지금도 몸과 마음이 자동으로 글 쓸 준비를 한다. 음악과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나를 휴직했을 때 글 쓰던 그 시간으로 데리고 간다.

좋은 시간이었다. 나를 다듬고 치유하던 시간.

그래서 오늘도 음악을 틀고 브런치스토리 앱을 열었다. 기념할 날을 기록하기 위해.


유방암수술 1년 후 정기검사로 MRI검사를 했는데, 수술한 반대쪽 유방에 뭐가 보인다고 했다. 담당교수는 초음파 촬영과 유방촬영검사를 다시 해보자고 했고, 그 검사를 지지난주에 했다. 그리고 수요일은 그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이었다.

괜찮을 거라고, 미리 걱정은 하지 말자고 했지만 불쑥불쑥 드는 생각을 아예 막아내지는 못했다.

5월 30일에 밴드부 애들이 학교에서 점심시간 버스킹을 하기로 했다. 어디서 할 것인지, 홍보는 어떻게 할 것인지 한창 의논 중이었다. 그 틈에도 스멀스멀 생각이 기어 나왔다.


‘진단결과를 들은 후 버스킹은 할 수 있겠지? 또 암이라고 하면 버스킹은 어떻게 될까?‘

‘그런 결과가 나와도, 공연은 해야겠지?‘

‘별 일 없을거야. 근데 모양이 안좋으니까 교수가 추가검사하자고 한 것 아닐까?’

‘모양이 안 좋으면 조직검사를 해야 하니까,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테니까 한동안은 학교 다닐 수 있겠지?’

‘또 휴직해야 하는 걸까?‘

‘유방암은 진행이 느린 암이니 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수술 후에 휴직하면 되겠지?‘

‘휴직하면 밴드부는 누구에게 맡겨야 하지?’

‘교육과정부장은 누가 하지?’


1분 동안 떠오른 생각이다. 생각의 가지들은 무서운 속도로 뻗어나갔다. 그럴 때면 생각의 가지들을 가차 없이 잘라냈다.


‘아직 아무것도 나온 게 없으니, 결과 나오면 생각하라고!’

‘모양이 안 좋아 보이면, 조직검사를 하라고 하겠지. 그 결과 이후에 생각할 일이라고!‘

단칼에 잘라버리고, 다시 일상을 살아갔다.

아니 일상을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잘라내지 못한 가지들은 불쑥불쑥 튀어나와 마음을 헤집어 놓았다.

화요일 기타 레슨 시간이었다. 수요일 병원 진료가 많은데, 기타 레슨이 화요일이라 기타레슨하는 날 복잡한 심리상태가 되는 날이 종종 있었는데 그날도 그랬다.

분명 연습했는데,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연습 안 하셨어요?”

“이 정도면 심각한데요?”

평소에 잘되던 것도 안되던 날이었다. 기타 선생님은 하고 싶은 말을 참으며, 인내하는 마음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박자를 입으로 읽어보라고 하는데 잘 안되자, 박자를 그려보라는데 그것조차 못하고 있었다.

“오늘 이상하시네요.”

나도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유독 집중이 안되는 날이라고만 생각했다.

그 이유가 진료 전 날의 두려움 때문이란 건 다음날 알았다.

다 잘라버렸다고 생각한 걱정의 가지들이 그대로 남아있었음을 진료날 터진 울음을 통해 알았다.

진료 마치고 괜찮다는 말을 듣고 난 후, 한참 울음을 토해내고서야 알았다.

마음속 가득 채우고 있던 걱정과 긴장을.


1,2,3,4교시 수업을 하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또 시간은 촉박했다. 2시 30분 진료인데 병원에 2시 10분에 도착했다. 간단하게 요기하고 진료실 앞 의자에 앉아있었다. 2시 35분쯤 내 당일번호가 진료실 전광판에 떴다.

진료실에 들어갔는데, 간호사가 나를 침대에 앉게 했다. 이때부터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보통은 의사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진료를 본다. 침대에 앉게 하는 건 촉진이 필요하다는 거다.


'뭐가 있는 걸까? 뭐가 또 보인 걸까?'

옆 진료실에서 진료를 마치고 교수가 오기까지 3~5분의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몇 분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보통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인데 교수가 오기를 기다리는 그 시간 동안 심장소리가 밖으로 들릴 정도로 쿵쾅댔다.

드디어 교수가 들어왔고, 컴퓨터 화면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MRI 검사에서 보였던 것, 다시 검사했잖아요. 초음파, 유방촬영 검사 결과 깨끗해 보이네요. 좀 더 지켜보는 걸로 해도 되겠습니다."

“뼈전이 검사는 증상이 있을 때 하는 것으로 하죠. 이제 증상이 있거나 하면 언제든 진료를 받으러 오시고, 괜찮으면 1년 뒤에 보는 걸로 합시다. 1년 후에 MRI 검사 잡을게요."

“약도 1년 치 드릴게요. 20mg 한 번 드시는 걸로 드릴게요.”


그 외 다른 말을 더 한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난다. 아무 문제없다는 말에 다른 이야기들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1년 후 검사 날짜를 예약하고 수납하고 주차장에 가서 차에 탔다.

가족과 친구와 언니들에게 소식을 카톡으로 전하며 눈물이 쏟아졌다. 댐이 터지듯 참아왔던 긴장과 불안이 한꺼번에 터졌다. 차 안에서 한참을 울었다.

그러고는 집에 와서 지쳐 잠들었다.

자고 일어나니, 기분이 좋았다.

1년의 생을 다시 허락받은 것 같았다. 1년 동안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1년 말이다.

일본 드라마 "브러쉬 업 라이프"에서 주인공은 환생하여 인생 2회 차, 3회 차를 살아간다.

나에게도 암경험은 그런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한다. 그래서 이번에 맞은 생일은 나에게 한 살 생일이었다. 친구들은 캠핑장에서 한 살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한 살 생일 기념 캠핑


오월의 버스킹

밴드부 버스킹도 무사히 마쳤다.

애들이 많이 안 모일까봐 걱정하던 2학년 애들은 홍보지를 교실에 다니며 붙이라고 했더니, 자기들 맘대로 일찍 오는 사람 25명에게 선착순으로 간식을 주겠다고 써서 붙였더랬다. 동아리 회장이 상의도 되지 않은 일을 저질러버린 2학년 애들에 대한 불만을 표했다.


"열정이 넘쳐서 그런 거잖아. 열심히 하겠다는데 그냥 둬~"


일을 저질러 놓고 난 후, 2학년 애들이 와서 간식을 준비해달라고 나에게 후통보했다.

"어떻게 간식을 준비하려고 그런가 생각했는데, 결국 방법이 이거였어?ㅋㅋㅋㅋ"

"애들이 공연 안 보러 올까봐 걱정되서 그랬어요."


그러나 애들은 간식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공연을 보려고 했던 것인지 구름떼처럼 모여들었다. 많이 모여든 아이들을 보고 보컬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첫번째 곡은 '나는 반딧불'이었다. 너무 떨린다고 하더니만, 초반에 삑사리를 내고 말았다. 실수했다며 침울해하는 녀석에게 말해주었다.

"긴장했다는 것은 그만큼 니가 공연에 진심이었다는 거지. 그게 멋진 거야."

"감동이에요~ 쌤~~ㅠㅠ"

두번째 곡은 '맨정신'이었다. 2학년 학생 한 명이 무대에서 방방 뛰면서 분위기를 돋우었다. 관객들은 떼창을 부르며 박수치며 함께하며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점심시간 10분동안 이뤄진 공연이었다. 짧은 시간의 공연이었지만,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기억에 남을 만큼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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