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졸업하셔도 되겠습니다
영화 암살에서 이정재가 연기한 친일파 염석진은 반민특위에 출석하여 이렇게 말한다.
내 몸에 일본 놈들의 총알이 여섯 개나 박혀있습니다. 일천구백십이 년 경성에서 데라우치 총독 암살 때 총 맞은 자립니다. 구멍이 두 개지요. 여긴 22년 상해 황포탄에서, 27년 하바롭스크에서, 32년 이치구폭파사건 때. 그리고 이 심장 옆은 33년에.
샤워하고 나와 유방 수술한 부위에 보습크림을 바를 때면 저 대사가 자주 생각났더랬다.
내 몸에 수술자국이 열 개나 있습니다. 2020년 담낭 절제술 복강경 구멍 네 군데, 2024년 유방암 수술 두 군데, 2024년 난소자궁적출수술 복강경 구멍 네 군데.
어떻게 살아온 건지 여기저기 상처투성이다.
그렇지만 상처가 조금씩 옅어져 가는 것을 보며 내 몸도 조금씩 회복해가고 있겠거니 하며 스스로를 다독거리며 살아간다.
담낭수술 후 5년째 추적관찰 중이다. 지난주에 복부 초음파 검사와 혈액검사를 했고, 이번 주에 진료가 있었다.
수업이 많아 수업교환이 쉽지 않았다. 9시 30분 진료인데 1,2교시 수업만 비우고 병원에 갔다. 그래서 마음이 많이 급했다. 진료 마치고, 차 막히지 않고 가야 수업에 들어갈 수 있을만한 빠듯한 시간이었다. 첩보작전처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예정된 대로 해야하는지라 얼마나 초조했는지 전날밤 잠을 설쳤다. 뭔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듯하다. 1시간에 한 번씩 깼다.
9시 30분 진료인데 6시 30분에 집에서 출발했다. 7시 30분에 병원에 도착해서 도착확인증 기계가 켜지기도 전부터 대기했다. 소화기내과 교수님은 진료가 빨라서 일찍 가면 일찍 진료해준 경험이 있어 그걸 기대하고 일찍부터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료실 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 책을 읽었다.
한 사람이 글 쓰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 자기를 믿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것은 삶의 자리를 되찾아 주는 일.
글 쓰는 삶, 이 말이 좋다. 몸을 보살피는 루틴으로 살면서 바쁘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은 글을 써야 마음이 개운해진다.
나도 글 쓰는 삶을 살고 있다. 브런치 벗들이 글을 읽어주고 공감도 해줘서 글 쓰는 삶은 계속된다. 글 쓰는 삶은 삶의 자리를 되찾아 주는 일이라는 말도 좋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 집중해야 할 자리를 잊지 않게 해 준다.
8시 55분 교수님이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진료가 시작되었다.
딩동, 딩동, 딩동.
바쁘게 당일번호가 전광판에 뜨고 9시 5분에 내 번호도 떴다.
일단 성공이다. 시간을 단축했다.
내가 들어가자마자, 교수님은 자료를 보며 속사포처럼 말씀하신다.
"혈액검사 결과, 당뇨 없고, 간기능 문제없고, 콩팥 깨끗하고, 초음파에서 간도 깨끗하고, 담낭 수술한 부위도 깨끗합니다. 다 문제없어서 이제 졸업해도 되겠네요. 이제 안 오셔도 됩니다."
병원에서 의사가 좋아졌다고 하는 말이 세상 가장 기쁜 말일 것이다. 이보다 더 기분 좋은 말이 있을까?
담낭수술 추적관찰은 이렇게 끝이 났다.
하나가 끝났다.
이제 다음 주 유방 검사 결과 들으러 또 병원에 가야 한다.
한 걸음씩 한 걸음씩 해결해 가야지.
무슨 일이 생기면 그건 그때 가서.
그저 오늘을 살뿐이다.
오늘도 글 쓰는 삶으로 이번 주 삶에 마침표를 찍는다.
이제 다음 주 시작을 위해 준비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