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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의 복직 루틴

오늘 또 하루를 살아간다

by 나즈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나는 나무들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무들이 살아났다.

나뭇잎에 줄이 생기면서 다 떨어지고 두 개만 남았다. 그것도 곧 떨어지겠거니 했다.

그런데 화장실에 가서 물을 충분히 줘보라는 친구의 말대로 했더니,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 후로 이렇게 쑥쑥 자라나고 있다.

창틀에 올려놓고 창틀에 물이 넘치지 않을 정도로만 찔끔찔끔 물을 줬던 방식이 잘못이었나 보다.


내 삶에서 질병휴직기간은 뿌리까지 흠뻑 적실 정도로 물을 준 시간이었다. 삶의 방식을 바꾸고 내 몸과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었다.

복직 후에도 그런 방식을 유지하며 살려고 한다. 복직 후 두 달을 지나고 있는 지금도.

왼쪽 유방에 있다는 무언가가 신경 쓰일 때도 있지만, 난 나의 하루를 살아간다.


아침 루틴

아침에 일어나면 몽땅 주스를 마신다. 열방약국 약사가 만든 '몽땅 주스'를 내 방식대로 만들어 먹는다.

사과, 당근, 브로콜리, 양배추, 케일, 레몬, 비트를 갈아서 퓌레처럼 만들어 놓는다. 양배추와 브로콜리만 살짝 쪄서 진공블렌더로 간다. 1주일치를 만들어 놓고, 한 번에 두 숟가락 정도 떠서 물에 타서 먹는다. 양배추, 브로콜리를 먹는 게 좋다는데 챙겨 먹는 게 쉽지 않아서 매일 아침 주스로 먹고 있는 것이다.

떡볶이를 먹은 날에도 몽땅 주스를 마신다. 기분 탓인지 이 주스를 마시면 몸이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떡볶이의 진한 양념을 씻어내는 기분이 든다.

몽땅 쥬스 - 진공블렌더에 물을 조금 넣고 간다
몽땅쥬스 퓌레를 통에 담아두고 1주일동안 먹는다

아침엔 그릭요거트, 샐러드, 사과 토마토를 번갈아가며 먹고, 아침 단백질 보충으로 계란 2개를 먹는다. 중년에는 근육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매끼 단백질을 잘 챙겨먹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매끼 단백질을 꼬박꼬박 챙겨먹는다. 아침에는 계란, 점심에는 두부나 고기 반찬, 저녁에는 두유를 먹는다.


점심 루틴

점심은 야채샐러드, 콩밥, 반찬 1~3가지 도시락을 먹는다.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은 정말 귀찮은 일이다. 그래서 급식을 먹을까 생각해 봤는데, 나를 너무 잘 아는 동생의 조언을 듣고 포기했다.


"누나 넌 먹을 걸 좋아해서 청소년 권장 열량 급식을 먹으면 안 돼. 한 끼에 900칼로리도 있더구먼. 급식 안 먹어서 지금 살 안 찌고 유지하는데 급식 먹으면 바로 체중 늘 걸?"


유방건강 TV 유튜브에서 나온 유방암 환자 건강한 생활 체크리스트에서 딱 한 가지 안되고 있는 것이 '체중 관리'이다. 그래서 귀찮지만 앞으로도 도시락은 계속 싸야 할 것 같다.

유방건강TV 유방암 환자 건강한 생활 체크리스트


도시락을 준비하기 위해 일주일치 샐러드 야채를 주문한다. 일요일에 야채를 씻고 물기를 탈탈 털어서 우주인이 쓴다는 초록색 통에 소분해서 담는다. 이렇게 일주일치 도시락을 준비해 두면 매우 뿌듯하다. 아주 중요한 일을 마친 기분이 든다.

일주일치 야채 손질은 일요일에 한다. 씻어서 물기를 탈탈 털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는다.
일주일치 야채샐러드 도시락

샐러드 도시락이 있기 때문에 반찬은 간단하게 싸갈 수 있다. 병아리콩에 현미, 흑미, 백미를 섞은 밥을 싸가는데 처음엔 반공기 정도 싸갔는데, 수업하는데 너무 허기가 져서 요새는 한 공기를 꾹꾹 눌러 담는다.


점심 도시락


저녁 루틴

저녁식사는 당근, 고구마, 두유를 간단하게 먹는다.

그리고 3일은 필라테스 센터에 가고, 하루는 기타 레슨 받으러 간다. 그래서 평일에 약속을 잡을 수 없다. 목요일 하루 비는데 그날은 늘어져 자면서 피곤을 풀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피곤하지 않게,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운동하고 집에 와서 다음 날 출근 준비를 한다. 아침에 먹을 야채를 씻고 자르고, 도시락을 씻고 반찬을 담는다. 다음 날 출근할 때 입을 옷도 미리 챙겨둔다.

난 원래 대문자 P인데 요새는 J처럼 살아간다.


아이폰에 오른 층수 20층을 못 채운 날엔 자기 전에 계단을 오른다. 학교에서 계단으로 오르내리다 보면 학교에서 10층 정도는 채우게 된다. 자기 전에 계단운동을 하고 나서 따뜻한 물로 씻고 잠자리에 들면 더 깊은 잠을 자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이것도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수면시간은 11시 30분 ~6시 30분, 7시간을 지키려고 한다. 휴직기간 동안 8시간 넘게 잠을 잤더니 7시간으로는 잠이 좀 부족하다. 그런데 이것저것 준비하고 씻고 머리 말리고 하다 보면 11시가 금방 지나버린다. 10시대에 잠자리에 들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루틴에서 보완할 과제이다.


토요일 루틴

평일에 느긋하게 보내려면 주말에 준비해둬야 할 것이 많다. 일주일치 수업 준비도 해둬야 하고, 일주일치 도시락 준비도 해둬야 한다. 토요일엔 주로 수업 준비를 한다.

미리 수업준비가 되어 있어야 학교에서 공강시간에 갑자기 내려오는 공문처리와 메신저가 불시에 던지는 일들을 처리할 수 있다.

학교에서 최대한 힘을 빼고 주어진 일만 하려고 하는데, 수업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수업에서 효능감이 떨어지면 교사생활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다른 건 다 힘빼고 할 수 있는데 수업은 그럴 수가 없다. 수업 한 시간을 잘 기획하고 준비해서 즐겁게 수업을 해내면 그것만큼 좋은 게 없다.

학교에서 급하게 수업 준비를 하는 것보다, 토요일에 느긋하게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며 준비하는 게 더 마음 편하고 좋다. 그걸 이제야 알게 됐다. 난 원래 마감이 닥쳐야 일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변해가고 있다.

수업진도표, 이런 것을 적고 있는 대문자 P 나!


일요일 루틴

일요일엔 집에서 할 일이 많다.

- 샐러드 도시락 일주일치 준비

- 몽땅 주스 만들기

- 밥 지어서 소분하기

- 빨래

- 청소

이런 일을 하게 되면서 화분에 물 주는 일도 하게 되었다.

암에 걸리기 전에는 하지 않던 일들이다.

암에 걸리기 전에는 매일매일 약속이 있었다. 스케쥴러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빼곡하게 일정이 잡혀 있었다. 주말도 그랬다.

주말 중에서 하루는 약속이 있었다. 그래서 주말 중 집에 있게 되는 하루는 하루 종일 잠만 잤다. 그렇게 자도 자도 피곤은 풀리지 않았다. 잠을 그렇게 몰아서 잔다고 피곤이 풀리지 않는데 말이다.


그리고 일요일에 복직이야기를 쓴다.

'암환자의 머릿속'은 질병휴직하면서 아주 오랜 시간 생각해서 썼는데, 복직이야기는 그냥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할 겸 1시간 동안 휘리릭 써 내려간다.



우리 모두 암환자처럼 살아야 합니다

김주환의 내면소통 유튜브에서 들은 말이다.

암환자처럼 사세요. 어차피 내 몸에 암세포 생기고 있다니까요. 그러니까 암환자들이 하는 건강수칙, 그거 좀 따라가면서 하세요.


우리 모두 암환자처럼 살아야 한다고.

우리 몸에는 모두 암세포가 계속 만들어지기 때문에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죽일 수 있게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소개해 보았다. 암환자의 루틴!

평온하고,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이런 평온함이 암환자에게는 너무 소중하다.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https://youtu.be/mzkCeTUDpVk?si=exQrBBg2vphUqq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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