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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수술 후 1년 정기검사

성적표 받는 날

by 나즈
MRI보다 힘든 수업교환

수술 후 1년이 지났다.

수술 6개월 후엔 뼈스캔과 유방촬영검사, 혈액검사를 했는데, 1년 후가 되니 유방 MRI검사가 잡혔다. 다른 분들은 수술 전에 하던데, 난 임상학적 진단이 상피내암으로 나와서 수술 전 MRI 검사가 없었던듯하다.

담낭 수술 전 MRI검사, 난소자궁 수술 전 MRI검사의 경험은 정말 끔찍했다. 굴삭기로 콘크리트 뚫는 소리를 내는 통 속에 들어가는 일은 고문받는 것 같았다. 그런데 고문받는 일과 비견되는 그 MRI검사보다 수업교환이 더더더 힘들었다.

하루 병가를 위해 화요일 다섯개의 수업을 선생님들에게 한 분 한 분 전화로 양해를 구하고 시간표를 교환했다. 다섯분의 선생님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허락을 구해야 했다. 그걸로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수업 교환으로 다른 날 수업이 꽉 차게 되었다. 월요일엔 1,2,3,4,5,6교시 풀로 수업하고 7교시엔 부장회의를 했다. 검사받으러 가기 전에 쓰러질 판이었다. 다행히 쓰러지지는 않았다.


유방 MRI검사는 다른 MRI검사와 달리 엎드려서 한다. 엎드린 자세라 하얀 통속에 갇힌 듯한 폐쇄공포증은 다른 MRI검사보다 한결 덜했다. 조영제를 넣지도 않았다. 시간은 30분으로 다른 검사와 비슷했다. 굴삭기 뚫는 소리도 다른 검사보다 작게 들렸다. 하얀 통이 눈앞을 가로막지 않으니 한결 수월하게 느껴졌다.


일주일 후, 검사 결과 들으러 가는 날

검사 결과 들으러 가기 전날, 아주 조금 걱정이 되었다.

‘설마 뭐가 나오진 않겠지?‘

걱정이 되서 잠이 안 올 줄 알았다. 그런데 학교생활의 고단함은 나를 쓰러져 잠들게 했다.

수업을 오전으로 몰아서 하고, 진료시간에 맞추기 위해 차를 달렸다.

진료실 앞 의자에 앉아 내 번호가 불리기를 기다렸다.

“9459번 님”

드디어 불렀다. 금방 끝날 거라 생각했다. 검사 결과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금세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진료실에 들어가자 진료실 침대에 앉으라고 했다. 의자가 아니라 침대에 앉으라고 하는 건 진찰을 한다는 의미다. 이때부터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뭐가 있는 걸까?’

‘아무것도 없으면 약 처방해 주고 6개월 후에 보자고 할 텐데…‘

의사가 오기 전 3분 동안 불안감은 계속 커져갔다.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의사가 왼쪽 유방에 뭐가 보인다고 했다.

“수술했던 쪽은 괜찮은데 반대쪽에 희끗한 게 보이네요. 양성인지 악성인지 모르니까 초음파랑 유방촬영 검사를 해야겠어요.”


“아. 그건 처음 유방암 진단받을 때에도 있었던 것 같은데요?”

“그것이랑 같은 것인지 모르고, 위치가 좀 다른 것 같아요. 그러니 추가검사해 봅시다. “


아……….

금방 끝날 거라 생각했는데, 끝나지 않았다.

끝나지 않는다.

끝이 나지 않는다.

끝이 보이는 것 같았는데, 다시 안개속이었다.


내가 환자임을 자각시키려고 이러는 걸까? 긴장의 끈을 놓지 말라고?

3월 한 달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그러다 4월이 되면서 슬슬 꾀가 나기 시작했다. 급식메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이유를 들어 귀찮은 도시락 말고, 급식을 먹어볼까 생각했다. 그런데 급식을 먹다 보면 내가 아직 치료 중인 환자라는 사실을 아예 잊은 채 살아가게 될 것 같았다. 그런 걱정을 할 정도로 복직 생활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3월 한 달을 보내고 난 후, 내 나름의 루틴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래서였나보다.

입꼬리 올리지 말라고, 발 뻗고 잠자지 말라고.

이렇게 경고를 날리나 보다.


4일이나 수업교환!

추가 검사 일정이 5월에 잡혔다.

5월에 담낭수술했던 추적검사와 진료가 두 개 잡혀 있는 데다 유방 추가검사와 진료가 잡히니 5월에 4일이나 수업교환을 해야 할 판이었다. 이 스트레스가 더 컸다.

병원 예약센터에 전화했다. 내 앞에 18명의 대기자가 있다는 신호음을 들으며,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겨우 통화 연결이 되었다.

4개의 진료와 검사 일정을 모을 수 있는 것들을 좀 모아달라고 했다. 아니면 소화기내과 진료를 다음 달로 연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소화기 내과 교수님 이번에 진료 연기하면 내년 1월이에요.”

“아…그럼 그냥 그 진료는 그대로 두시고, 시간이라도 최대한 빠르게 해 주시거나 아니면 늦은 시간으로 해주시겠어요? 제가 교사인데 수업교환이 힘들어서요.”


예약센터 선생님은 이리저리 시간을 잡아보려고 했지만, 초음파 검사 하나를 이른 시간으로 옮기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거라도 좋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다고 인사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와서 검사 일정 두 개를 토요일로 옮겨주신다고 했다. 너무 감사해서 전화기에 대고 꾸벅꾸벅 절을 하며 말했다.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

눈물이 났다.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그러다 내 신세가 불쌍해서 눈물이 났다. 병에 대한 걱정보다 수업교환을 걱정해야 하는 내 신세.


내일 또 출근해야 하니

내일 출근해야 하니 도시락 준비도 해야 하고, 아침으로 먹을 과일, 야채도 준비해야 하는데, 머릿속이 복잡하다.

글로 토해내야 정리가 될 것 같아서 브런치에 들어왔다.

별일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작년 1월 유방암 발견되었을 때, 왼쪽에도 종괴가 있는데 그건 양성이라고 했었다. 그 놈이겠거니 생각하려고 한다.

또 다른 놈이라 해도 뭐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려고 한다. 걱정한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뒷일은 검사결과가 나오면 생각하기로.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기로.

사과와 토마토, 당근과 고구마를 씻고, 계란을 삶고, 샐러드 도시락을 싸는 일.

필라테스 예약하고 가는 일.

계단 20층 오르는 일.

7시 30분에 출근하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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