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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환자의 복직 준비

1년 휴직을 마치고 복직합니다.

by 나즈
복직 한 달 전

복직원을 내기 위해 학교에 갔다. 복직원을 내려면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하다'는 의료진의 진단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교육청 인사규정을 살펴보면, 휴직기간 중간에 복직하는 경우에만 그런 진단서가 필요하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예정된 복직날짜에 복직하는 교사에게도 진단서를 요구하는 것이 관행이 되어버렸다. 휴직을 명했고, 그 휴직기간 종료로 복직하는데 왜 진단서가 필요한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예전처럼 문제를 제기하고 따질 에너지가 없었다. 하라는 대로 따르는 것이 세상 제일 쉬운 방법이었다. 여태 그걸 모르고 바보같이 잘못을 바로잡겠다며 따지고 그러고 살았을까, 난.

주치의 진료는 4월에 예정되어 있었다. 유방암센터 간호사에게 복직 진단서를 이야기하니, 진료 날짜를 급하게 잡아주었다. 복직 진단서 요구는 일상적인 것인지 교수는 별다른 이야기 없이 진단서를 발급해 주었다.

<진단서 문구>
환자 상기 진단으로 수술받으신 분입니다. 향후 정기적인 추적관찰 필요하며 환자 상태 변화에 따라 치료 계획 달라질 수 있겠습니다. 근로능력에 지장이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발급받은 진단서를 학교에 제출하고 복직원을 쓰면서 업무분장희망원을 썼다. 업무분장 희망원 비고란에 유방암 치료 중이라는 이야기를 굳이 썼다.

유방암 치료 중이라 학년부장은 할 수 없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일을 처리하는 업무보다 정해진 업무를 하고 싶습니다.

3학년 부장이 공석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였다. 남는 자리를 줄 것 같아 문서에 일부러 근거를 남겼다.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수시로 생기는 학년부장보다 차라리 업무 부장을 하겠다고 했다.



복직 3주 전

슬슬 복직준비를 해야 했다. 복직 루틴으로 하루를 지내보는 실험을 하기로 했다. 6시 30분에 일어나 7시 30분에 집을 나서 하루 종일 일정을 소화하고, 저녁엔 필라테스를 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랬더니 다음날 바로 구순포진이 생겼다. 휴직기간 중 등산도 하고 운동을 하던 체력이 있어 하루 루틴이 힘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일 년에 수술을 두 번이나 했던 몸은 예전의 몸이 아니었다. 예전의 나를 생각하고 움직여선 안되는다는 걸 구순포진이 말해주었다.


복직 2주 전

개학 전, 새 학기 준비하는 워크숍에 이틀 동안 참여했다. 복직루틴 실험에서 내 몸상태 배터리가 온전치 않음을 확인했으므로 그 상태를 주지하고 에너지를 많이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중간중간 한 번씩 내 상태를 잊어버리곤 했다.

'이것 해보면 재밌겠는데?'

하며 일 벌일 궁리를 또 하고 있었다.

살던 대로 살려고 하는 관성의 힘은 정말 세다. 브런치에 암환자의 머릿속을 기록해두지 않았다면 난 내 상태를 까먹고 분명 전처럼 살던 대로 살았을 거다. 몸은 돌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살면서 말이다. 브런치에 투병기록을 남겨둔 것은 질병휴직기간에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다. 그 기록들이 날 정신 차리게 잡아줄 것이다.


업무분장 발표날, 업무분장희망원 비고란에 진하게 쓴 문구 덕분인지 학년부장을 피할 수 있었다. 교육과정부장을 맡았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복직 1주 전

난 나 혼자 달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결승점을 향해 혼자 뛰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안개가 끼기고 하고, 비도 오고 눈보라도 몰아치던 길을 혼자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결승선에 내가 무사히 당도하기를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을 흐트러트릴까 봐 연락도 못하고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1년 동안 만나지 않았던 사람들을 복직 1주 전에 만났다. 그들이 가져온 메시지를 읽으며 조용히 나를 응원하고 있던 사람들이 있단 걸 알았다.

그 시간 잘 버텨줘서 자랑스럽고 감사하다고 했다.

멀리 서지만 이겨내길 기도했다고 멋지게 이겨내 줘서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의 무게보다 더 크게 힘겨웠을 1년을 잘 이겨낸 나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했다.

따로 연락한 적은 없지만 늘 안부가 궁금했는데 컴백 소식 들으니 너무 기쁘다고 했다.


복직을 축하해 주는 사람들 덕분에 큰 산 하나를 넘어왔다는 걸 알았다.

복직한다고 옷도 사주고, 밥도 사주고, 화장품도 주고, 도시락 반찬통도 사주고, 어글리어스 1년 치 야채 주문해 먹으라고 돈도 주는 사람들은 "폭삭 속았수다" 애순이네 집 부엌에 먹을 것을 두고 가는 마을 사람들이었다.


혼자였으면 골백번 꺾였어.
원래 사람 하나 살리는 데도 온고을을 다 부려야 하는 거였다.
- 폭삭 속았수다 드라마 대사 중 -



결승선에서 내가 무사히 오길 기다리던 선생님이 보내준 시

<인생> 나태주

화창한 날씨만 믿고 가벼운

옷차림과 신발로 길을 나섰지요


향기로운 바람 지저귀는 새소리 따라

오솔길을 걸었지요


멀리 갔다가 돌아오는 길

막판에 그만 소낙비를 만났지 뭡니까


하지만 나는 소낙비를 나무라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어요


날씨 탓을 하며 날씨한테 속았노라

말하고 싶지도 않아요


소낙비 함께 옷과 신발에 묻어온

숲 속의 바람과 새소리


그것도 소중한 나의 하루

나의 인생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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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