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대리 Jan 04. 2019

절 키운 건 팔 할이 오타입니다

후배가 보고 자라는 건 선배의 등



돌이켜보면 그때 꺼림칙한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내내 다시 메일을 열어볼까 하다가 재차 확인한 제 눈을 믿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기획팀 대리였습니다. 그의 번호가 뜨자마자 저는 직감했습니다. 아. 무슨 일이 터졌구나. 터지고야 말았구나.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출근했습니다. 회사 분위기는 냉랭했습니다. 분명 제작팀과 기획팀이 돌아가며 확인한 원고였는데 어느 누구도 오타를 잡아내지 못했습니다. 이미 수습이 불가한 상태였고 우리는 가만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침에 뿌려진 신문 안엔 누가 봐도 '응?' 싶은 오타가 고스란히 실려 나갔습니다. 생애 처음 겪는 오타 사고였습니다.


글을 써 내려가는 지금도 정신이 아찔합니다. 모두의 책임이라고 했지만 결국 카피라이터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만약 퇴근길에 한 번만 더 꺼내봤더라면, 아니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출력해서 확인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누군가는 그냥 지나칠 법한 글자 하나가 제겐 평생 지우기 어려운 한 글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너 이번엔 제대로 확인한 거지?'라는 말에 눈치 보는 상황도 생겼습니다. 인쇄광고 한 편도 눈이 빠질 때까지 보고 또 보는 강박증까지 생겼습니다. 정말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닌데,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전부 핑계에 불과했습니다. 그렇게 제가 우주의 먼지만큼 작아져 있을 때, 참다못한 선배가 조용히 저를 불렀습니다.



나도 그랬고 선배들도 그랬어.
난 더 심한 오타도 낸 적 있는데 그때 내 사수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이런 일 수습하라고 선배들이 있는 거야' 하더라.
기죽을 거 없어. 잘하려다 그런 거잖아. 수습은 선배들이 할게.



좋은 선배의 등을 보고 자란 후배들은 다르게 성장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선배가 건넨 말은 후배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있다가 훗날 또 다른 후배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끔찍한 기억도 따뜻한 기억으로 포장해주는 일. 언젠가는 그 일이 제 일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아직은 오타 하나에도 절절매는 대리 나부랭이에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저 말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물론, 위로를 건네야 할 상황이 오지 않는다면 가장 좋겠지만 말입니다.




이전 08화 내 상사는 질문중독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