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대리 Jan 07. 2019

더는 조급해하지 않습니다

조바심으로 아깝게 보낸 날들



돌이켜보면 저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첫 인턴을 했던 곳은 대학시절 내내 꿈꾸던 회사였습니다. 정직원 전환이 보장된 곳은 아니었지만 꽤 굵직굵직한 캠페인들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고 책이나 잡지에서나 볼 수 있는 선배들을 매일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습니다. 그분들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으쓱해지는 날들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곳과 비슷한 환경에서 본격적인 시작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제대로 자리를 잡기까지 반년이나 걸릴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처음 합격 통보를 받은 곳은 직원이 20명 남짓 되는 회사였습니다. 지원서와 포트폴리오로 1차 합격자를 걸렀고 필기시험과 PT, 개인 면접과 단체 면접까지 치른 후에야 최종 합격자가 결정됐습니다. 그때까지도 저는 거만했던 것 같습니다.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은 곳에서 뭐 이렇게까지 까다롭게 뽑을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반년 동안 쓴 지원서 중 최종 합격한 곳은 그곳뿐이었습니다. 그때 처음 좌절을 맛봤습니다.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구나, 나는 딱 이 정도 사람이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때까지도 자만심으로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첫 출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시기에 광고를 시작한 친구들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누군가는 대기업, 또 누군가는 프로덕션 신입사원이 되었습니다. 대학입시와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인턴은 같은 곳에서 시작했지만 그 이후의 스텝은 제각각이었습니다. 몇 군데 되지 않는 대기업 공채에 합격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는데 그럼에도 합격하는 친구들이 속속 등장했습니다. 그 소식을 접할수록 자존감도 낮아졌습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가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다지 나쁜 시작도 아니었는데 저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저를 비교하기 바빴습니다. 단순히 회사 규모나 연봉의 크기를 두고 스스로를 불행한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나는 뭐가 부족해서 시작점이 다른 걸까 그 생각에 한참 빠져 살았습니다. 


그렇게 원하던 회사에 경력직으로 입사하기까지 4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대기업 공채에 합격한 친구는 6개월 만에 그 회사를 뛰쳐나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5명뿐인 프로덕션에서 시작한 친구는 내로라하는 대형 프로덕션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광고를 계속하고 있는지보다 중요한 건 한순간의 결과가 그 이후의 삶까지 결정한다는 것은 아니란 사실이었습니다. 제 삶 역시 그랬습니다. 결코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생각보다 운이 나빴을 때도 있었지만 기가 막히게 운이 좋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건 조급해한다고 달라지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합격 소식을 전해 들은 날. 제 온갖 못난 소리를 들어준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마음 졸이며 지내온 날이 너무 아깝다고 하자 선배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선배 말을 똥으로 듣냐. 조급해할 필요 없다고 했잖아.
한 가지 일을 오래 좋아하다 보면 결국 원하는 곳에 가게 돼 있어.


첫회사에서나 원하던 회사에서나 저의 일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나은 대우나 복지는 있어도 그것에 따라 제가 달라지는 것 같진 않습니다. 최근엔 다른 바람이 생겼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주어진 일을 똑같이 좋아하고 싶다는 것, 그것뿐입니다.




이전 13화 내게 주어진 내 시간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