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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대리 Jan 08. 2019

그래도 제 꿈은 당신입니다

스스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일지라도



광고회사 그만두면 뭐할 거야?



업계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질 때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질문입니다. 연차가 높은 사람들과 마실수록 더 자주 등장합니다. 이제 갓 대리를 단 저도, 대부분의 꿈인 시디가 된 분도 마찬가지입니다. 50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 업계라서 벌써 겁이 납니다. 딱히 잘하는 것도  딱히 다른 일을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지금이라도 다른 기술을 배워야 하나 고민스럽습니다.


어느 면접 자리에서도 이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카페에서 진행되는 다소 독특한 형식의 1:1 면접이었습니다. 공기가 제법 쌀쌀해진 어느 가을날, 일찌감치 회사 앞 카페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약속시간에 딱 맞춰 나타난 그분은 소문대로 냉정해 보이는 얼굴이었습니다. 긴장된 공기 사이로 예상한 질문들이 몇 차례 오간 후, 그분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물었습니다.



"20년 뒤엔 뭐할 거예요?"



10년 뒤는 예상했지만 20년 뒤는 까마득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뒤면 시디를 달 연차일 테고 당연히 그게 제 목표라고 대답할 참이었는데. 망설이다 결국 어디서든 글과 관련된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막연한 대답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반응은 의외였습니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광고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어느 날 갑자기 공황장애를 겪었고 지금도 종종 강박증에 시달린다고 털어놨습니다. 누군가에게 매일 평가당하는 게 우리의 삶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런 일상에 질려버린 동료들은 회사를 떠나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잘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씁쓸한 표정도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말에 저는 조금 서글퍼졌습니다.



아니다 싶을 때
일찍 그만두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요.
잘 돼봤자 나잖아요.


그분은 웃으며 농담처럼 말했지만 왜인지 웃음이 나지 않았습니다. 대학생 때부터 쭉 이름으로만 들어온 그분을 1:1로 만난다는 것 자체가 설레는 일이었는데 모르고 싶은 부분까지 알아버린 기분이었습니다. 


지원한 회사에 합격하진 못했지만 종종 그분의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여전히 같은 업계에 계셔서 다행이다 싶을 때마다 미처 전하지 못한 말도 떠오릅니다. 그날 그분이 했던 말에 그래도 당신 같은 분이 있어 우리가 계속 꿈꿀 수 있는 거라고 대답하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그날 그분에게 필요했던 말은 이게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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