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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대리 Jan 10. 2019

내게 주어진 내 시간입니다

내 시간을 내 뜻대로 쓸 자유



취업하고 2년 정도는 친구들을 거의 못 만났던 것 같습니다. 2-3주 전에 잡은 약속조차 지키지 못했고 몇몇 모임에선 '늦게라도 온다고 하지만 절대 못 오는 친구'라는 수식어가 붙어버렸습니다. 심지어 제 청첩장을 나눠주는 자리에서까지 제가 지각을 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야근을 한다는 것 자체는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어느 날, 언제까지 야근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 괴로웠습니다.



"오늘은 야근 좀 해야겠는데?"



팀장님이 이 말을 할 때쯤엔 시곗바늘이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팀원들은 서로 눈치만 볼뿐,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오늘은 분명 야근 안 할 것 같았는데. 아까까지만 해도 6시 칼 퇴각이었는데. 오랜만에 다들 급하게 약속을 잡은 모양인지 난감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사정은 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장 한 시간 뒤도 예측할 수 없는 형편이라 조금이라도 칼퇴할 기미가 보이면 급으로 약속을 잡곤 했는데 그것조차 지키지 못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다들 말없이 눈치만 보고 있자 우리 중 가장 연차가 높은 분이 총대를 맸습니다. 오늘은 각자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게 어떠시냐고. 내일 오전 일찍 회의하시자고.


그래도 돌아오는 말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완강한 팀장님을 보니 오늘 퇴근은 빨라야 10시일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촉은 틀린 적이 없었습니다. 팀원들은 저마다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내용은 비슷비슷했을 겁니다. 미안해. 진짜 칼퇴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회의가 잡혔어. 늦게라도 갈 수 있으면 갈게. 매번 지키지 못한 멘트라 민망함이 밀려왔습니다. 내 말년에 남는 건 업계 지인들 뿐이겠구나 싶었습니다.



"이번 주엔 처리해야 할 게 4건 있네. 
팀 회의는 수, 금 점심 직후에 하는 걸로 하자.
그 외의 시간은 알아서 쓰도록."



하지만 이 말을 듣게 되면서부터 저와 제 주변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출근시간도 마음대로, 회의시간도 마음대로, 심지어 밥 먹는 시간까지도 마음대로였던 팀장님을 떠나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회의하고 밥을 먹는 팀장님을 만나니 이제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습니다. 대부분의 일이 예상한 대로 흘러갔습니다. 그 예상이 여러 번 맞아떨어지자 스스로 스케줄을 관리할 수 있었습니다. 평생 다닌 적 없는 저녁 운동도 시작하고 몇 년간 보지 못한 친구들도 만났습니다. 예전보다 회사에 있는 시간은 줄었지만 생각하는 시간은 늘었습니다. 내가 주어진 24시간을 제대로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내 하루하루가 꽤 마음에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생활들이 차곡차곡 쌓일수록 과거에 상상해온 어른이 되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렵 함께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내가 바라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 곁에 있어야 그와 비슷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 닮고 싶지 않은 사람 곁에 머물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그와 닮아간다는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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