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산에 간다 생각하면 특별한 일이 아니지만 열흘 동안 산을 타야 한다는 중압감, 경험해 보지 못한 고산병, 포터가 있긴 하지만 여자 혼자 간다는 생각에 시험 전날과 같은 초조함이 느껴진다. 가다가 힘들면 돌아와도 된다고 스스로 다독여 보지만 이왕 시동을 걸었으니 끝까지 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초조함을 달래기 위해 하루는 포카라에 적응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새벽 5시 반 아직 캄캄한 새벽, 호텔 앞에서 택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호텔 카운터에 미리 예약을 해 두었길 정말 잘 한 것 같다. 전날 산촌 다람쥐에서 추천해 준 '사랑곳(네와르어: सारङकोत)'으로 해돋이를 보러 가는 길이다. 사랑곳은 포카라에서 히말라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가장 조망이 좋은 곳으로 해발 1600m에 있는 언덕?이있다. 택시를 타고 좁고 꼬불 꼬불한 길을 20여분 달렸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차들도 사람도 많아진다. 내가 타고 온 택시는 해돋이가 끝난 뒤에 다시 데리러 오겠노라며 나를 내려 주고 유유히 사라졌다. 혹시 나중에 알아보지 못해 애를 먹을까 택시의 번호판 사진을 찍어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춥고 낯선 캄캄한 산 중에 혼자가 되긴 했지만 동쪽 하늘에선 서서히 동이 터 오고 있다.
해돋이를 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장소가 넓지 않은데 사진 찍기 좋은 장소들을 선점하려다 보니 서로 부딪힐까 조심스럽기도 했다. 동이 터 오면서 까맣게 보이던 산의 윤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왼쪽부터 Annapurna South(7219m), Annapurna I(8091m), 왼편으로 뾰족이 올라 온 곳이 Machhapuchhre(8993m).. 물론 저 산들의 정상까지 가는 건 아니지만 저 산자락 어딘가를 내 발로 걸을 생각을 하니 벅찬 마음이 가득하다. 트래킹의 목적지로 잡은 곳은 안나푸르나 South 쪽의 베이스캠프 (ABC).
해가 떠 오르면서 마차푸차레의 꼭대기 부분이 가장 먼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곤 붉은 기운이 다음 산으로 퍼져가는 동안 붉은빛은 점점 황금빛으로 변해갔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와~' 하며 감탄사를 터트린다. 산 위에 쌓인 만년설이 햇빛을 반사하면서 보이는 황홀한 광경이다.
그동안 숱하게 봐 왔던 해돋이와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의 순간.
'그래도 새로운 해가 뜬다' 던 말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힘들게 달려왔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새로운 시작을 삶의 터닝포인트에 선 순간이라 그랬을지도 모른다.
해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면서 산을 비롯한 모든 세상이 밝아졌다. 해돋이를 조용히 지켜보던 사람들이 서서히 움직이며 인증샷들을 찍기 시작한다. 옆에 있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나마스테'라고 인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옆에 있는 분들께 사진을 찍어 달라 부탁을 했지만 좁은 공간인 데다 다른 사람 안 나오게 신경 써서 찍어 준 사진들이라 얼굴 옆에 겨우 마차푸차레 정상만 나온 것이어도 감지덕지다.
자리가 좁다 보니 전망대에 자리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옆 건물 옥상에서 해돋이를 지켜보기도 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유난히 눈에 띄던 커플이 있었다. 언젠가 내게도 이런 미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한참 이 두 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같이 어디든 갈 수 있는 동행자가 있다는 건 정말 근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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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오르고 내리는 히말라야 같은 것이다 by 바람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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