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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내음 Jul 12. 2017

11.안나푸르나로 가는 첫 발걸음

비틀거리며 포장도로, 비포장 도로를 달려 도착한 'Nayapul'

자, 드디어 내 두 발로 걷는 시작점에 도착한 것이로군... 대부분의 승객들이 이 곳에서 내렸다. 히말라야 트래킹이 나야풀에서 시작한다는 얘길 여러 차례 들은 탓인지, 주변에 어디 알아볼 만한 표지판 하나 없는 것이 살짝 서운하기까지 했다. 

전 세계의 그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통해 다녔을 텐데 그 흔한 '입구'표시도 없다. 아니면 내가 못 봤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로 눈치껏 따라가겠지만 포터가 없으면 초반부터 긴장할 뻔했다.

이 산골짜기 마을에서 어디까지 가야 학교가 있는 걸까? 이제 겨우 초등학생이 됐을 법한 조그만 아이들이 교복을 이쁘게 입고 학교를 간다. 모든 학생은 교복을 입어야 하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교복 색이 구분되어 있다고 했다. 

한참을 걸어 들어갔을까? 이제 겨우 나타난 표지판. TIMS CHECK-POST

입산하기 전 신고를 하는 곳이다. 


산에 오르기 전에 미리 준비해야 하는 TIMS & Entry permit.

TIMS (Trekker's Information Management System) 카드는 산에 올라가는 사람의 개인 신상과 어느 코스를 어떤 일정으로 가는지 기록을 남기기 위해 작성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카트만두 여행국에서 발급받는다. 개인으로 가능 경우, 반드시 본인이 가서 그린카드를 발급받거나, 포터를 고용하는 경우 해당 여행사를 통해 블루카드(그룹 카드)를 받는다. 

Entry permit은 입산 허가서이다. 


입산 전 TIMS CHECK-POST에서 TIMS & Entry Permit을 보여주고 신고를 해야 산에 올라갈 수 있다.

첫 번째 목적은 워낙 크고 험난한 산임으로 혹시라도 실종이 되거나 사고가 났을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이고, 두 번째 목적은 입산하는 사람의 통계자료를 내기 위해서다.  

한국 드라마 '나인'에서 봤던 다리가 나타났다. 아홉 번의 시간 여행을 떠나는 주인공이 찾아왔던 곳. 왠지 저 다리를 건너면 나만의 시간 여행 속에 빠질 것 같은 생각이...

나와 열흘간 같이 걸어 줄 친구 라잔. 스물두 살 쯤이라고 했다. 뒤에 맨 배낭과 침낭은 내 것이고, 앞으로 맨 가방은 본인의 짐인데 심지어 그 가방의 절반은 아까 산 사과와 귤이다. 게다가 뒤에 짊어진 배낭 위에 옷이 그가 가져온 점퍼다. 오 마이 갓~ 너무 걱정돼서 몇 번을 물어봤더랬다. 짐이 무거우면 더 빼고 가자고... 끝끝내 괜찮다며 씩씩하게 걷는 라잔. 빨리 과일을 먹어치워 가방 무게를 덜어주는 것 외엔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배낭 외에 카메라, 휴지나 돈을 넣을 수 있는 허리쌕 그리고 장비점에서 짝짝이 밖에 없다며 무료로 빌려 준 스틱. 올라간 이 상태 그대로 내려올 수 있기를.

산 골짜기 사이로 마차푸차레가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눈 앞에 있는데 일주일 가량을 걸어야 그 앞에 설 수 있다. '만리길도 한 걸음부터' 

나야풀 입구에서부터 개 두 마리가 나와 템포를 맞춰 따라온다. 장난 삼아 '개의 모습으로 나타난 수호신'이라 불렀는데, 이 두 친구가 거의 3일 동안 따라왔다.

산의 초입인지라 주변에 집들도 많고, 밭도 있고, 밭일할 들소들도 보이는 평화로운 모습

그래도 밤이 되면 좀 무섭지 않을까?

일하는 아버지와 아무 걱정 없이 해맑게 뛰어노는 아이들.

들소를 이용해 밭 가는 풍경, 낯설지 않은 이 느낌, 우리나라 80년대쯤 분위기가 난다. 

이제 겨우 초입을 지났을 뿐인데 벌써 힘들다 싶더니 배 시계는 칼 같이 안다. 점심시간이다. 트래킹 전체를 패키지로 계약을 하다 보니 좋은 점 하나는 자고 먹는 일에 있어서 금액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평균 가격으로 계산을 했는지, 최대 가격으로 했는지 모르겠지만 메뉴 하나만 주문한다는 전제하에 메뉴에 있는 뭐든 주문할 수 있었다. 물론 가격이 비싸다고 내게 다 맞는 것은 아닌지라, 일단 점심은 모모(만두) 한 접시로 주문했다. 겨우 이걸 먹고 걷는단 말이야 생각도 들지만 욕심부리고 과식하면 걷는 것 자체가 힘들어진다. 더구나 지금부터는 오르막길뿐이니까.

식사를 하고 나왔더니 나야풀 입구에서 따라오던 개들이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이 아이들은 뭐 좀 먹었으려나? 

올라가도 올라가도 계속 이어지는 층계로 된 오르막길, 가면 갈수록 느껴진다. 이 정도는 연습게임도 안 되는 애교였다고.

마치 극기 훈련이라도 한 명이 지나갈만한 너비의 철렁거리는 다리도 건너야 했고,

보기만 해도 한숨 나오는 층층계단의 오르막길, 하지만 이곳은 그저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중간중간 서서 사진을 찍는 나를 기다려 주는 라잔, 사실 사진을 찍을 때 인물이 없는 풍경 사진을 찍거나 인물이 풍경 안에 녹아 있는 컷을 찍고 싶은 마음이지만 앞서 가던 라잔이 날 기다려 준다고 서 있게 되면 비켜달라는 얘기하기도 애매하고, 결국 이 친구가 주인공 아닌 주인공의 사진들이 많이 찍힐 수밖에 없다. 물론 가다가 기다려야 하는 라잔도 많이 힘들 테지만...

이제 겨우 입산 신고하고 들어온 지 2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부터 '내가 왜 이 고생을 시작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차라리 더 멀리 가서 후회하고 돌아 가느니 지금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여행을 핑계로 등산용품을 쇼핑하고, 비행기를 타고 포카라에 오는 것 까지는 정말 쉬운 일이었다. 가져 온 모든 것을 짊어지고 두 발로 모든 걸 버텨내며 오로지 나의 힘으로 가야 하는 지금부터가 진정한 출발이었다. 생각의 교차가 많아질즈음 휴식할 곳이 나타났다. 워낙 무거운 짐을 짊어진 사람들이 많아서 배낭을 굳이 벗어 내려놓지 않더라도 기대어 서서 쉴 수 있도록 돌을 쌓아 만들어 놓은 센스 있는 휴식처. 뒤돌아 풍경을 보니 층계만 보고 올라올 때 생각은 없어지고, 이렇게 한 발자국씩 가다 보면 ABC의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거라고 다시 한번 다잡아 본다.

오르고 쉬고를 반복하면서 나 보다 무거운 짐을 짊어진 사람들을 보며 스스로 위안을 삼기도 했다. 

가는 중에 연세 드신 분들을 꽤 여러분 만났다. 딱히 대화 없이 걸어도 앞에 가는 부인을 뒤 쫓아 걷는 남편의 모습에서 서로 의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 멀리 산등성이에 난 꼬불 꼬불한 길처럼 저렇게 긴긴 시간을 같이 걸어오셨겠구나 하는 생각에 존경심과 부러움이 밀려온다. 

고맙게도 음료수를 파는 가게도 있고, 벽에 있는 낙서를 보니 네팔에 이런 깊은 뜻이? 

NEPAL - Never, End, Peace, And, Love 

끝이 없는 사랑과 평화.... 이런 뜻으로 이해하면 되려나? 

처마 끝에 메달아 놓은 말린 옥수수. 산중에 있는 집이니 물건 조달이 어려우면 이 옥수수를 끓여서 끼니를 대신하겠구나 하는 짐작을 해 본다. 이제 겨우 첫째날 가야할 길의 중간쯤 온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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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오르고 내리는 히말라야 같은 것이다 by 바람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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