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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내음 Jul 15. 2017

14.Ghorepani: 말에게 물 먹이는 곳

자! 드디어 고레파니에 도착. 전날보다 짧은 거리를 온 것인데도 숨이 더 차 오르고, 기운도 없다. 이렇게 앞으로 계속 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유난히 힘들어하는데 라잔이 한마디 한다. You don't need to worry.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여기 고도가 2800m야. 내일 올라가야 하는 푼힐은 3210m. 고도 2500m를 넘어가면 개인 상태에 따라 고산병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가장 많이 오는 증세는 식욕부족, 머리통증, 구토,ㅊ판단력 저하 등이 있다. 잠을 자다가 숨이 막혀 깨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도 산소가 모자라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고산병이 걸리는 가장 큰 이유는 고도가 높아지면 낮은 기압으로 인해 공기 안의 산소가 모자란데 사람의 신체는 원래 몸에 배어 있는 습관대로 호흡하고 움직이다 보니 낮은 고도에서 적응된 호흡으로는 필요한 만큼의 산소공급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산병 예방을 위해 천천히 가라는 얘기는 몸이 그 환경에 익숙해지도록 시간을 주라는 얘기와 같다. 호흡 주기가 좀 더 빨라지고, 적혈구도 증가하고, 모세혈관이 늘어 나는 등 몸의 적응이 필요하다. 빠르게는 며칠에서 온전히 적응이 되려면 3주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데, 무리하게 빨리 산을 오른다거나, 음주, 샤워, 머리감기 등을 하게 되면 체온이 떨어지고, 산소가 달아난다고 했다. 고산병을 예방한다고 굳이 비아그라를 구해오는 이유는, 그 약을 복용했을 때 혈관이 확장되면서 산소의 흐름을 원활하게 도와주기 때문이란다. 때문에 예방 차원에서 먹을 수 있지만, 증상이 나타난 뒤에 치료약이 될 수는 없다고. 산 좀 탄다고 몸의 싸인을 무시한 채 움직이면 사고가 난다는 얘기다. 이렇게 자세히 설명해 준 덕분에 한 시름 놨다. 한 시간쯤 올라가면 되는 푼힐을 오늘 올라가지 않는 이유는 해돋이를 다음날 봐야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단시간 내에 큰 고도차를 경험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차원이기도 했다.

고레파니라는 이름은 '말물'이라는 뜻이다. 힘들게 짐을 지고 올라온 말과 당나귀들에게 물을 먹이는 곳이라는 얘긴데, 다시 말하자면 이 동물들이 짐을 날라 올릴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기도 했다. 산 아래 있는 모든 문명이 산 속으로 옮겨지기까지 동물의 힘을 빌릴 수 있는 한계 고도라고 해야겠다. 이 곳 보다 더 높은 곳으로 가는 짐들은 모두 사람들에 의해 옮겨진다. 

내가 머무는 숙소는 윗 사진 정면에 있는 집으로 내 방은 2층 창가 방이다. 역시 2인실을 혼자 쓴다. 침대 하나에는 배낭에서 꺼낸 짐을 잔뜩 늘어놓고, 하나는 잠자는 용이다. 

고레파니의 가장 중심쯤 되는 곳을 내 방에서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횡재한 느낌이랄까?

풍경이 너무 좋아 며칠을 머물러도 좋을 것 같은 곳. 날씨 좋은 날엔 저 구름 뒤로 설산도 보인다고 했다.

금강산도 식후경, 라잔 말이 맞았다. 4시간 걸릴 거라더니 7시 40분 출발, 11시 40분 도착. 아침 메뉴를 봤겠지만 가파른 길을 계속 오르다 보니 허기가 진다. 일단 점심을 먹기로 한다. 음식을 먹고 나면 고산병 증상이 좀 가라앉을지도 모르니까. 

이번 점심도 딸밧. 역시 밥심이 필요해. 거기에 꼬마김치와 미역국이 있잖아. 진수성찬이군.

사실은 꼬마김치를 사 올 때만 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방에서 배낭을 푸는데 이상한 냄새가 난다. 나름 머리 써서 준비해 온 꼬마김치 다섯 봉지가 모두 터졌다. 2800m 고도의 기압을 이기지 못하고 부풀어 올라 급기야 터져 버린 것. 가방 속에 김치 냄새가 진동한다. 그래도 그 안에 옷들이 젖지 않은 것에 진심 안도를 한다. ABC까지 들고 가기는 이미 어렵게 됐으니 먹을 수 있을 때 맘 편히 먹기로 했다. 김치가 마치 만병 통치약이라도 되는 듯 식사가 끝나고 나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아이러니하지만 산에서 야채 먹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손님이 많지는 않았다. 식사를 늦게 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식당 안은 나와 라잔뿐이었다. 로지의 인상 좋은 사장님. 눈빛이 살아 있고, 무슨 말씀을 하셔도 당당함과 패기가 가득. 에너지를 주시는 분이다. 무료로 준 차 한잔을 마시며 한참 수다를 떨었다. 그 정도 얘기를 나눌 수 있을 만큼 영어를 하는 것도 놀라웠다.

식사를 하고 오후 시간은 자유다. 동네를 둘러보러 밖으로 나왔다. 고도 2800m, 이 산중에 서점이라니. 새 책인지, 헌 책인지, 자국인을 위한 것인지, 여행객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산속에 서점은 이색적이다. 카트만두에서도 서점이나 거리에서 책을 파는 곳도 제법 있었고, 정갈하게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모습도 그렇고, 나라는 아직 후진국이지만 국민들의 정서는 앞서 살고 있다는 걸 여러 곳에서 느낀다. 그들의 눈빛이 왜 살아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대목이다. 주변엔 베이커리도 있고, 펍도 있다. 고산병에 걸리는 사람들은 술을 자제해야겠지만 사람들의 들고 남이 많은 고레파니에는 그만큼의 수요가 있다는 얘기겠지. 궁금하기도 했고 분위기가 좋으면 펍에서 맥주 한 잔 하려고 들어갔다가 슬그머니 뒷걸음질로 나왔다. 퀴퀴한 술과 담배 냄새에 놀랐고, 남자들이 거친 눈빛으로 문 쪽을 쳐다보는데 내가 갈 곳은 아니구나 싶더군. 식후라 베이커리 빵 맛을 못 본 게 좀 아쉽네.

이렇게 마을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을까? 실지로 히말라야에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오르기 시작한 건 1960년대부터라고 들었다. 근 반세기 만에 모두 만들어진 것이고, 이제 히말라야 관광은 네팔의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수익원이 됐다. 여기에 살면 그들 나라 수도인 카트만두를 가 보는 것도 평생 몇 번 하기 어려운 일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을이 크다고 해도 결국 산중 마을이라 잠깐 돌아다니니 더 갈 곳이 없다. 하루에 평균 8시간을 걸어야 하는데 모처럼 자유시간이 생기니 쉬라고 해도 다시 걷게 되더군. 어슬렁어슬렁 푼힐 쪽으로 발을 옮겨 본다.

고도가 높은 곳이라 큰 농사를 할 수 없지만, 간단한 채소나 감자들을 키우는 밭은 종종 볼 수 있다. 이러니 야채가 밥상에 올라오기 어려울 수 밖에.

푼힐로 올라가던 길 쪽으로 산책을 하다 만난 광경. 울레리 올라가는 길에 잠깐 언급했던 휴식처가 기억나는지? 포터나 산행객들이 무거운 배낭을 걸쳐 놓고 쉴 수 있는 쉼터를 만들고 있었다. 그 돌을 일일이 정과 망치로 쪼개서 크기를 맞춰 쌓아 올리는 작업이니 얼마나 손이 많이 갈까.

조금 더 올라가다 보니 길이 좁아지며 층계로 된 오르막 일부를 공사하고 있었다. 여기도 역시 손으로 큰 돌을 들고 쪼개고 하여 층계를 보수 중이다. 이 트래킹 코스 전체를 이런 돌로 길을 만들어 놨는데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과 시간이 투여된 것일까? 날씨도 추운데 우리나라에서 흔하디 흔하게 구하는 목장갑을 박스로 부쳐 주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푼힐로 올라가는 입구에선 티켓을 사야 한다고 했다. 막아 놓진 않았지만, 대부분이 새벽 동트기 전에 올라가기 때문에 낮엔 그대로 개방이 되어 있고, 아침엔 내국인/외국인을 구분해서 티켓을 판매한다. 점점 구름이 끼는 게 더 올라가면 내려올 때 비구름을 만날 것 같다. 그리고 어차피 내일 새벽 다시 올라와야 하는 코스니 오늘 일정은 이쯤에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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