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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내음 Jul 14. 2017

13.Ghorepani로 가는 길

울레리 로지에서 먹는 첫 아침식사. 빵, 삶은 감자, 계란 프라이............ 정말? 이게 전부야? 이거 먹고 반나절을 걸어야 한단 말이지? 역시 산에서 자는 건 추웠다. 해뜨기 전엔 더 춥고. 허기진 마음을 따듯한 미역국으로 달래 본다. 한 열개쯤 들고 온 것 같은데 모자랄 것 같다. 

산에서는 하루에 한 번 샤워하는 것도 호사로 생각한다. 매번 가스비를 내고 따듯한 물을 사용해야 하니까. 사실 돈을 내고 사용하는 건 내 마음이지만 가스가 떨어지면 누군가는 산 아래에서 가스통을 짊어지고 올라와야 한다. 양심상 내가 참는 게 맞다. 그러나 아침, 저녁으로 샤워하던 버릇 때문에 아침이 몹시 괴롭다. 이렇게 뻗힌 머리를 하고 가야 한단 말이지? 이 산골짜기에서 뭘 하겠다고 헤어드라이기를 끝까지 포기 못하고 들고 왔던 걸까? 전기불 켜기에도 전력이 모자랄 판인데 말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이미 이 곳에서 사용할 수 없는 몇 가지 물건들을 맡겨 놓고 가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돌아가는 코스와 달라서 모두 들고 가거나 버리거나 선택해야 한다. 물론 여기서도 쓸 사람이 없다면 쓰레기가 됨으로 쓰레기도 끝까지 들고 가야 하니 인생의 무게라 생각하며 짊어지고 간다. 생각을 잘 못 하면 손 발이 고생한다는 말이 딱 맞다.


라잔이 출발하기 전 설명하길, 오늘 코스는 4시간 정도만 가면 된다고 했다. 다음 도착지 고레파니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푼힐에 올라가 해돋이를 봐야 하기 때문인데, 서둘러 출발하지 않으면 중간에 점심 먹기가 애매해진다며 서둘러 7시 40분부터 걷기 시작했다.


오늘도 오르막의 연속이군. 

짐을 나르는 당나귀도 슬슬 출발 준비를 한다. 오늘은 또 어떤 짐을 나르게 될까? 집을 지을 때도, 음식물과 생필품을 나를 때도, 이런 동물의 도움 없이 이동시키기엔 역부족이다. 그러니 산속에서 얻는 문명의 혜택은 작건 크건 그저 감사할 뿐이다.

보다시피 길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말, 당나귀, 개, 가축들이 모두 지나가는 곳인지라 여기저기서 고향의 냄새가 난다. 물론 종종 가축이 흘리고 간 그것들도 보이는데 처음엔 눈 동그랗게 뜨고 땅만 보며 피할 궁리만 하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과 동화가 되어 버린다. 몇 날 며칠을 땅만 보고 갈 순 없으니까 말이다.

올라가다 뒤를 돌아봤다. 전날 쉬었던 로지가 신선이 머무르는 곳처럼 산하를 내려다보며 구름 위에 떠 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나는 신선이 된 기분으로 걷기로 했다.

앗! 이 녀석은 어제 입구에서부터 따라오던 개로 변장? 한 수호신이 아닌가. 그 추운 밤을 어디서 보냈을지, 밥은 먹었을지 궁금하지만 물어볼 길이 없다. 

겨우 8kg 되는 배낭을 메고 헥헥 거리며 걷고 있노라면 뒤에서 잰걸음으로 뒤쫓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올라가는 이도 있고 내려오는 이도 있는데 대부분 짐을 나르는 포터들이다. 돌도 많고, 층계도 많은 이 곳을 평지 다니는 일반인보다 빨리 걷는다. 족히 30kg 이상 되어 보이는 짐이다. 라잔 얘기론 심한 경우 50kg까지도 들고 간다는데 봐도 잘 믿기지 않는 풍경이다. 실지로 산행에 도움을 주는 사람은 포터와 가이드가 있는데, 포터는 무거운 짐을 들고 목적지까지 들어다 주는 역할을 한다. 가이드는 짐은 들어주지 않고 같이 걸으며 안내해 주는 사람을 말한다. 내 경우는 인건비를 좀 더 주더라도 짐도 좀 들어주고 가이드도 해 줄 수 있는 포터를 구한 경우다. 서양인은 대부분 짐은 자기가 들고 가이드를 구해 같이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하고, 한국사람은 포터 겸 가이드를 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저렇게 큰 짐을 나르는 포터의 경우는 캠핑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의 짐일 경우가 많다고 했다. 캠핑 트레킹을 하는 사람은 포터와 가이드를 따로 고용하고, 포터에겐 캠핑에 필요한 물건을 짊어지게 해서 먼저 보내고, 적당한 속도로 가이드와 함께 산을 오른다. 먼저 도착한 포터는 약속된 장소에서 밥을 지어 놓고 기다리고, 밤이 되면 텐트도 친다. 포터는 일이니까 한다고 하지만 너무 생고생시키는 거 아닌가 싶다. 베이스캠프를 지나 설산 등반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지.

여기가 목적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걷다가 로지가 나타나면 희색이 돈다. 갑자기 발걸음도 빨라지고. 음료수도 한 잔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출발.

한참을 올라왔는데 끝도 없이 나타나는 오르막길. 한 숨이 나오다가도 누군가 만들어 놓은 돌층계에 감사하며 힘을 내 본다. 

그리고 다시 로지... 가끔 핫초코를 시켜 먹는 게 유일한 낙이다. 햇살이 너무 강해 선글라스는 필수품이다. 얼굴에 민감하다면 안경 주위만 빼고 얼굴이 까맣게 그을려질 것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정말 이 정도 무게를 달고 걷는 게 적당해서 메달아 놓은 것인지, 무리수는 아닌지 알 수가 없다. 말도 못 하는 동물이지만 보이는 무게에 겁이나 동물들이 지나갈 때면 벽 쪽으로 바짝 피해 준다.

살짝 옆으로 비탈인데 왜 나무와 돌로 벽을 만들어 놓았는지 물었더니, 그 아래에 있는 밭으로 산짐승들이 내려와 밭을 망쳐 놓는 걸 방지할 목적이라고 한다. 네팔... 왠지 우리의 시골과 크게 다르지 않은 친근한 느낌..

비석 같기도 하고, 안내문 같기도 하고. 라잔에게 물어볼걸 그랬군.

드디어 당 떨어졌다. 세계 어딜 가도 있는 초코파이. 혹시나 필요할지 몰라 포카라에서 한 상자 사 들고 왔는데, 꼼꼼한 라잔도 한 박스를 들고 왔더군. 비행기에서 받았던 사탕을 주머니에 넣어 놓고 하나씩 입에 물면 당떨어졌을 때 정말 도움이 된다. 여력이 된다면 사탕을 큰 봉지로 사 와서 산속에 사는 아이들에게 선물로 줘도 좋겠다. 어떤 이는 일부러 허름한 시계를 차고 와서 선물로 주고 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마을 입구를 알리는 기둥 문. 고레파니에 도착한 줄 알고 좋아했더니 아직 멀었다는군.

이렇게 높이 올라왔는데 생활환경이 아주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바위를 한담 한담 정갈하게 쌓아 올려 만든 벽과 층계가 예술 작품처럼 보이기도 했다.

오우, 여긴 별장인데?


그리고 문을 보고 잠시 놀랬다. 제주도에서나 볼 법한 정낭(나무로 만들어진 문)이 이곳에도 있다. 확인해 보진 않았지만 정낭 표시랑 비슷한 의미가 아닐까? 세 개 모두 열려 있는 것이 집안에 사람이 있다는 표시. 여행을 다니다 보면 세상 사람들 사는 모습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거든. 힘들어서 헥헥 거리면서도 매 순간 사진을 찍어 기록에 남긴다. 목에 무겁게 걸고 다니는 Canon 카메라보다 순간 캐치하기 좋은 휴대폰 카메라로 찍는 게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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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오르고 내리는 히말라야 같은 것이다 by 바람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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