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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내음 Jul 23. 2017

18.자연과 하나 되어 사는 곳, 촘롱


가야 하는 트레킹 코스 중에는 그래도 고도가 매우 낮은 편에 속하는 곳이라 그런지 사람 사는 집들이 모여 동네를 이루고 있다. 계단식 밭도 보이고, 소, 말 그리고 당나귀도 보인다. 


먼저 말 걸어오는 아이. 네팔어라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왠지 당차 보인다. 이럴 때 사탕이 필요한거다.

언제든 만들고 치울 수 있는 간이 닭장. 갇혀 있는 것만 아니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사는 멋진 닭일 수도 있었을 텐데.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얘기는 집안에 할 일이 많아진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드디어 점심을 먹을 로지에 당도했다. 확실히 고도가 낮아지니 꽃들도 많이 보이는군.

뭘 많이 꾸미지 않아도 자연스러움이 주는 아름다움이 있다. 페인트 구하기도 어려웠을 텐데 나름 구석구석 손이 들어간 흔적들이 정겹다. 이곳에 오니 간밤에 로지 식당에서 만났던 한국분들이 모두 계신다. 점심을 동석하면서 오래간만에 한국말로 수다를 떨었다. 

그러던 중, 옆 테이블에 처음 뵙는 한국분들이 계셨다. 30대의 둘째 아들과 함께 오신 70대의 아버지. 산행 중 만난 사람 중 가장 어르신이셨다. 이렇게 층계도 많고, 쉴 새 없이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해야 하는 곳에서 가이드도 따로 없이 두 분만 오셨는데, 그 얘긴 자기 짐을 모두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얘기다.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셨겠구나 싶었다. '내가 이런 델 올 생각이나 하겠어? 아들이 오자고 하니까 왔지. 근데 이게 가기 전에 마지막이지.' 어르신께서 말씀 중에 이런 얘길 하신다. 그 문장 하나에 정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더군. 아버지께 이런 세상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던 아들, 몸은 힘들지만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세상을 떠나기 전 이곳에 왔었다는 감격스워 하시는 아버지 모습, 부자지간의 무한 신뢰와 의지하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워 보였다. 힘이 달려서 보통 사람들처럼 빨리 갈 수 없지만 두 분은 같이 동행한다는 데 더 큰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점심을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고 '길'이라고 부르지만 산속에 사는 짐승들에게는 의미 없는 '길'. 그들은 그냥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게 길이다. 염소를 치는 청년은 길 위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들이 길을 선점하고 있으면 기다리던지 옆으로 비켜 가던지 하면 된다. 보아하니 이 녀석들 비켜줄 생각이 별로 없기도 하고, 원래 그들의 집이기도 하다.

산 고개를 넘어가는 중에 쉼터. 돌아온 길도 보이고, 가야 할 길도 보이는 곳.

왼쪽편으로 온 길을 돌아보니 건너편 산 중턱 뒤쪽으로 아침 출발했던 곳이 보인다. 

그리고 오른편으로 가야 할 길을 보니, 산 중턱 길을 따라 두 구비만 돌아가면 최종 도착지 촘롱이다.

어머님 말씀이 생각난다. '눈은 게으르고 손과 발은 부지런하니, 눈을 믿지 말고 손과 발을 쉬지 말라'시던.

누군가 먼저 간 사람들이 남긴 흔적 '길'을 따라 다시 걷는다. 

사람도 걷고, 들짐승도 걷고.

산이라 평지가 없으니 밭이 모두 계단식으로 되어 있다. 그래도 제법 큰 규모의 밭이다. 규모로 미뤄 봐서 촘롱이라는 동네가 꽤 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주 큰 차이가 없다고 해도 이 정도 고도 차이면, 저 아래쪽에서 자라는 식물과 위쪽 식물은 다를 확률이 크다.

촘롱에 왔을 때 가장 앞쪽에 있던 로지 'Heaven view guest house' 천국에서 보는 풍경이란 의미인 듯. 곧 먹고 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천국'이란 말이 그대로 믿어질 지경이다. 라잔은 우리가 있어야 할 숙소는 좀 더 가야 한다고 했다.

바로 머리 위를 뱅뱅 돌고 있던 독수리. 단 한 번의 격한 날갯짓도 없이 고고하게 비행을 한다.

독수리와 같은 높이에 있다는 게 신기하다.

지나온 여느 동네보다 화려하고 잘 정돈된 느낌. 그동안 힘들었었는지 좋은 로지를 보면 그냥 그곳에 머물고 싶은데 계속 더 가야 된단다.

그 유혹들을 다 지나서 짐을 푼 곳은 'Excellent View'.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는 걸? 촘롱의 큰 마을 가장 위쪽에 자릴 잡고 있는 말 그대로 엑설런트 한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이다. 한국분들과 점심을 같이 하다 보니 결국 서로 얘기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한 그룹처럼 다니게 됐다. 가이드 없이 혼자 다니시던 두 분, 그리고 포터와 같이 오신 한 분. 나와 라잔까지 모두 6명이 한 숙소에 머물게 됐다.

아래층은 식당과 샤워실, 위층엔 게스트룸. 그중에서도 나 혼자 쓰는 방은 가장 코너에 있는 위치 좋은 방.

혼자 쓰기 미안할 정도로 깔끔하고 사방이 탁 트인 방. 물론 창이 많다는 건 밤에 추울 각오를 해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짐을 풀고, 이 멋진 경치를 보며 따듯한 핫 초코를 한 잔. 힘든 하루였지만 보람도 있는 하루.


내 방 옆, 옥상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이러하다. 마차푸차레가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 이곳에서의 해돋이는 어떨지 무척 기대가 된다. 


Chhomrong 촘롱은 지역적으로도 안나푸르나를 오가는 모든 사람이 거쳐 가야 하는 곳이고, 높이도 2170m, 여기까진 전기가 제법 들어온다. 말이나 당나귀를 통해 물건들도 공수받을 수가 있다.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 인즉은, 오늘 이후로 인터넷은 거의 사용이 불가하므로 필요하다면 오늘 모든 걸 정리해야 한다는 것. 물론 이 곳도 돈을 내고 쓰긴 하지만, 다음 묶는 로지부터는 물도 전기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고, 무엇보다 고도가 높아지므로 고산 증상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샤워도 앞으로 며칠간 못할 거라 생각해야 한다. 복합적인 상황과 이유들로, 촘롱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는 게 좋다. ABC에 가기 전, 가장 인간답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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