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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내음 Jul 25. 2017

20.빨리 가도 그 산 안이더이다.

밤에 실컷 인터넷을 써야겠다는 마음이었는데, 9시가 되니 전기선을 뽑아 버리더군. 본의 아니게 일찍 잠이든 덕분이기도 했고, 양 사이드 창문과 문틈 사이로 들어 오는 바람이 춥기도 했고, 한편으론 여기서 보는 해돋이는 어떻게 색다를지 몹시 기대도 되서 캄캄한 새벽에 일어났다. 운이 좋게도 방 바로 옆이 옥상이라 별 보기엔 정말 딱 좋은 위치다. 새벽별을 찍어 보려고 주변에 의자와 테이블을 쌓아 애를 써 봤지만 삼각대 없이는 불가능하다. 새벽별이 점점 사라질 무렵 샤워부터 마치고 왔다. 마지막이란 말이 자꾸 머릿 속에 맴돌기도 했고, 머무는 사람이 많아 서두르지 않으면 줄을 서야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실선처럼 드러나던 능선이 거대한 병풍처럼 앞을 막고 있다. 어디서 봐도 알아볼 수 있는 마차푸차레의 정상. 이쪽에서 보니 물고기 지느러미 모양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지금 시각은 6시반.

6:32

6:37

6:42

햇살이 세상에 색을 불어 넣고 있다. 그렇게 오늘 하루가 시작됐다. 감도 안 잡히게 멀게만 보이던 곳이 조금 가까워진 것 같기도 하고. 이제 이틀 후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도착이다.

이틀 뒤, ABC(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서 자려면 오늘은 히말라야까지 가야 한다. 걸리는 시간은 대략 걷는 시간 6시간 반에 점심시간과 휴식시간까지 7시간 반은 걸리겠군. 고산병이 걱정되는 사람은 ABC보다 MBC(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에서 자고 다음날 ABC를 다녀 온다고 하는데, 여기까지 와서 MBC에서 자면 좀 아쉬울 것 같다. 물론 올라가면서 상태가 따라 주지 않으면 할 수 없겠지만. 


아침식사를 마치고 어김없이 8시 출발. 이젠 길 위에 있는 소들이 개들 처럼 보인다. 등치도 크고 뿔이 있어서 피해 다니곤 했는데 좀 친숙해진 느낌이랄까.

서로 누가 비켜줄까 눈치를 보다 옆길로 비켜 후다닥 내려가는 사람을 뒤돌아 보는 소. 마치 동네 할아버지가 객들을 쳐다보는 시선이랄까?

다시 다리 앞에 섰다. 지나 온 세상을 건너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길. 

촘롱의 고도는 2170m, 오늘의 목적지 히말라야 베이스 캠프는 2920m. 다리를 건너면 죽도록 올라가는 길만이 있다. 

다리를 건너 뒤돌아 보니, 아까 열심히 뛰어 내려 왔던 돌계단이 며칠 뒤 오르막이 되겠구나 싶은 마음이 든다. 

건너 왔으면 미련없이 가는거지. 다리 건너기가 무섭게 오르막이다. 무거운 짐을 이겨내는 방법은 다리에 힘 꽉 주고, 땅을 보고 오르는 거다. 위를 보면 가기도 전에 지치거든.

촘롱을 지나와서 부터는 띄엄 띄엄 집이 보인다. 밤엔 짐승들도 다닐테니 바깥 출입도 못 할테고, 나가도 갈 곳도 없겠지만. 어찌사나 싶다. 


드문 드문 집이 있긴 하나, 하나같이 이쁜 파스텔 톤의 페인트로 칠이 되어 있다. 대부분의 집이 돌을 쌓아 만든 집이로군. 

산 아래에서 먹을 음식을 모두 충당하긴 어려울테고, 감자 아니면 마른 강냉이가 그들의 주식이 된다. 

햇살 드는 벤치에 앉아 산을 내려다 보며 책을 보는 모습을 그려 본다. 뭔가 큰 호사를 누리는 느낌이 들 것 같다. 이곳까지 와서도 난 앞으로 가는 데만 여념이 없다. 하루 더 늘어진다고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아직 이 마을까진 전기가 들어 온다. 산 아래서는 눈에 보이지도 않던 것인데, 이런 전봇대 하나에도 신기하고 감사하다. 줄 맞춰 늘어진 선을 보니 음표라도 그려 넣어야 할 것 같군.


햇살이 너무 따가와 잠시 그늘에 피해있는 중이었다. 출발한 지 2시간, 저 산자락 뒤로 촘롱마을이 보인다. 서두른다고 내가 먼저 출발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걷다 보면 앞치락 뒷치락 다시 만나지는 일행들. 삶이 그렇다. 먼저 간다고 애쓰고 출발해 봐야 결국 그 자리, 그 산 안에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것이다. 앞에 서든, 뒤에 서든, 중요한 것은 자기 인생의 무게를 짊어 지고 각자 자기 발로 터벅 터벅 걸어서 고개를 넘고, 고비들을 지나 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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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오르고 내리는 히말라야 같은 것이다 by 바람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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