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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내음 Aug 04. 2017

27.가는 사람도, 오는 사람도 틀린 사람은 없다.

할 일을 하나 끝냈다는 후련함 때문인가? 올라갈 때 마음과는 좀 다른 면이 있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 남았는데 마음은 한결 가볍다.

트래킹 8일째, 지난 며칠간의 강행군과 달리 오늘은 '경치'라는 의미의 시누와에서 '작은 언덕'이라는 뜻의 지누난다까지 4시간 반 코스다. 전날 9시간 코스의 절반이라 매우 여유롭다고나 할까. 지누난다에 도착하면 점심을 먹고 오후엔 노천 온천을 즐기면 된다.

로지에서 보이는 산의 모습. 저 산 속 깊은 곳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 나는지 다 알 수 없지만 겉에선 마냥 평화롭기만 하구나. 마을 이름과 딱 맞아 떨어지는 절경이다. 

고도가 낮아지니 산등성이에 밭도 보인다.

서투르지만 한국말이 가능했던 가이드 찬드라. 종종 한국인 산악인들을 따라 등반을 하기도 한다는 그는 이선생님과 함께 온 가이드다. 이선생님은 사진찍기를 좋아 하시는데 카메라도 그만큼 무겁고 짐도 제법 있으시다.

찬드라는 저 무거운 가방을 메고 그 와중에 꽃 사진도 찍고... 헐~

생필품을 매번 이렇게 옮겨와야 한다면 뭐하나 아껴쓰지 않을 수가 없겠군.

소나 당나귀가 걸어오면 암암 두말 않고 빨리 길을 터줘야하지.

사람이 직접 나르지 않으면 달리 방법이 없으니, 이런 파이프도 손수 날라야 한다. 이곳 사람들은 무거운 짐을 들 때 머리에 끈을 둘러 나르더군. 헐~ 이 아저씨 쪼리를 신고 있다. 

지친다 싶을 무렵 촘롱 부근에 나타난 매점. 그늘에서 잠시 당과 수분을 보충한다. 안쪽에 보니 등산화와 몇가지 등산장비들도 구비가 되어 있다. 간혹 있는 일이지만 트래킹 중에 신발을 분실하거나 망가지는 경우도 있다.

ABC 코스 중에 거의 유일한 장소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다양한 물건을 파는 곳은. 

시누와에서 한참을 내려 오는가 싶다가, 촘롱입구에서부터는 계속 오르막 층계다. 

며칠 전 촘롱에서 히말라야로 가던 날, 라잔과 나는 한참 숫자 외우기에 재미가 붙어 있었다. 그날 아침 출발할 때 라잔에게 지나가는 말로 '오늘 가면서 나마스테라고 인사를 몇 번이나 하는지 세어보자'라고 했었다. 산 안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며 눈을 마주치며 '나마스테'라는 인사를 한다. 히말라야에 도착했을 무렵 '나마스테'라는 인사를 50여번 했다고 말해준다. 사실 너무 힘들어서 내가 제안했던 것도, 카운팅 하는 일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산행을 할 때는 일반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 모두 비슷한 속도를 내어 걷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만날 확률은 적다는 얘기다. 오히려 반대로 돌아 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내가 올라가는 동안 올라가는 사람들은 거의 만나지 못했고, 내려 오는 사람만 50여명을 만났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한국 사람들은 남들과 다르게 움직이는 자신을 발견하면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모두 돌아 내려 가는데 나만 올라가고 있는 것 같으니까. 10대 후반이면 대학을 가야하고, 20대 후반이면 결혼을 계획해야 한다는 생각. 모두 자기만의 때가 있는 것이지. 산을 오르건 내리건 심지어 오지 않건 누구도 틀린 사람은 없다. 모두 자신의 목표가 있다면 자기 속도에 맞춰 가면 되는거다. 중요한 건 자신이 목적한 곳에 무리없이 즐기며 다녀 왔느냐의 문제니까. 

층계를 오르는 일은 반복이 되고, 적응이 되도 힘들다. 비명 소리가 날 즈음 드디어 촘롱에 도착. 햇살이 너무 강해 모두 얼굴을 최대한 가린다. 숨쉬기가 좀 힘들기도 하고, 특히 내려 가는 길에선 시야를 가려 잘 보이지도 않지만 와서 보면 안다. 이게 오버하는 게 아니란걸. 

한결 더 여유로와진 모습. 잠깐이지만 음료수와 인터넷을 즐기고 다시 출발.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아슬 아슬해 보이는 집

촘롱부터 지누단다까지는 대체로 내리막길이다. 오르막에선 앞에 보이는 층계만 보면 되니까 집중하기 쉽지만

내리막에선 풍경이 같이 보이니 한편 릴렉스도 되지만 집중하기 어려워 발이 헛디뎌지기도 한다. 산에선 오르막 보다 내리막 길이 더 위험한 것 같다. 

드디어 지누단다.. ABC를 다녀 오는 사람이라면 대체로 내려 오는 길에 꼭 쉬어 가는 코스다. 고도는 1700m 정도로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니 제법 로지 수도 많다. 옥상에 테이블과 의자만 갔다 놓으면 무조건 최상의 풍경이 보이는 카페테라스가 된다. 

이전까지 보기 어려웠던 형형새색의 다양한 인테리어의 집들

그리고 우리가 짐을 푼 넓은 마당이 있는 집. 이제 정말 사람 사는 마을에 내려온 느낌이군.

허겁지겁 식사부터. 산에서 식사를 즐긴다고 표현하긴 어렵고, 살기 위해 먹는다는 정도.

그래도 과일도 나오고, 접시도 다양한 디자인.

며칠 고생한 게 전부지만 그래도 한참만에 사람처럼 사는 느낌이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휴식후, 드디어 노천온천을 경험하러 간다. 솔직히 혼자 움직이게 되면 쉽사리 가기 어려운 곳이다. 동행들과 같이 내려 간 건, 온천이 하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100% 호기심 때문이다. 일단 티켓을 사고 계곡이 있는 쪽으로 내려간다.

모디콜라강, 산 아래쪽으로 오니 강의 폭도 넓어지고 물살도 무척 세다. 만년설이 녹아 내려오는 물이니 그 온도는 가히 짐작이 되리라. 

그렇게 차가운 강물이 흐르는 옆으로 조그만 탕이 두 개 있다. 탕에 가기 전, 옷을 갈아 입을 수 있는 간이 시설이 있긴 한데, 문은 천막으로 덮혀 있어 아주 열악한 환경이긴 하다. 

탕은 두 개. 수영복이나 간단한 기본? 옷차림으로 들어 간다. 남녀 구분이 없으니까. 물론 옆에 오픈된 샤워 공간은 있으나 제대로 씻긴 어렵다. 물은 온천물이니 따듯한데 릴렉스하며 있긴 애매한 곳이다. 산에 올라갔다 내려 오는 국적불문의 남녀노소가 모두 한 곳에 들어 가 있는데다 며칠동안 씻지 못하고 다니던 사람들이 들어 오니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궁시렁 거리긴 했지만 따듯한 물에서 긴장과 피로를 풀고 나니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로지 주변에는 바삐 손놀림을 하고 계신 아주머니 몇몇분이 계셨다. 팔찌며, 조그만 손가방을 하나씩 한땀 한땀 공들여 손수 제작해서 판매를 하고 있다.

그리고 저녁이 되자, 로지 주변에서 흥겨운 네팔 음악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오가며 들었던 노래라 귀에 익은 음악 소리. 네팔의 아리랑 같은 '레썸 삐리리 Resham firiri'. 음악에 맞춰 다리를 살짝 굽히고 팔을 흐느적 거리며 춤을 춘다. 막걸리 한 사발을 걸치고 흥에 겨워 팔을 펄럭거리는 한국의 시골과 다를 것이 없다. 이 모습을 보니 이제 곧 현실로 돌아 가야 한다는 생각이 밀려 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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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오르고 내리는 히말라야 같은 것이다 by 바람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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