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내음 Jun 15. 2017

2.카트만두로 가는 길

스무 살엔 세상 물정 모르고 금전적으로도 자유롭지 못했다. 서른엔 사회적응하기 바빠 감히 엄두를 못 내고, 마흔엔 세상이 다 거기서 거기 같고 게을러져서 어렵다. 또는 가족에 묶여서 움직일 수 없게 되기도 하는 게 일반적인 생각들이지만, 핑계를 찾다 보면 끝도 없고, 그 시간에 방법을 찾아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히말라야에 가기로 결정을 하자마자 비행기 발권부터 했다. 싱가포르에서 카트만두로 들어가려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를 경유해야 했다. 그리고 다시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국내선을 타고 이동해야 한다. 국내선은 경비행기 수준이라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무턱대고 표만 예약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포카라에서 한식집을 운영하시는 '산촌 다람쥐'님이 운영하시는 온라인 카페에 많은 정보들이 있었고, 초면이지만 여러 가지 질문을 드렸더니 국내선 티켓은 그쪽에서 선불하고 예약해 주신다고 한다. 티켓 값은 도착하면 돌려주라고 하시는데 내겐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으니 일단 믿어 보기로 한다. 아니지, 그분들은 날 어떻게 믿고 선의를 베푸는지 감사하고 놀랍다. 

7년간의 외국 생활을 순식간에 정리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퇴사를 준비하며 인수인계하랴, 집 안의 모든 가구들을 없애야 하고, 연일 작별인사 파티에 여행물품 준비까지 동시에 진행이 됐다. 정신없이 보내던 중, 서울에서 태국으로 여행을 가는 중에 잠시 싱가포르에 들르겠다는 JH. 싱가포르는 태국 가는 길에 들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일부러 찾아온 것이지. 그렇게 갑자기 나타나서 책을 한 권 건네준다. '누나, 네팔 처음 가잖아. 책이라도 가져가야지'. 한글로 된 론리플래닛 '네팔'편이다.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인 것 같다 '감동'. 가끔 이런 무모한 도전에 자신의 일처럼 깨알같이 도움을 주는 친구들이 있다.  떠나기 이틀 전, H가 준비는 다 끝났느냐 묻는다. '응, 비행기표 끊었어. 배낭은 거의 다 쌌고'. 사실 다 준비가 된 게 아니라 그 이상 준비할 상황이 안 되었던 것이고, 이제부터는 상황에 맞춰 해결 방법을 찾으면서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오고 가는 비행기 티켓 외에 아무런 계획도 잡지 못했다. 트래킹을 안나푸르나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다음 계획의 전부였으니까.  '누나, 카트만두에 숙소는 잡았어요?'. '아니, 알아볼 시간이 없어서. 도착하면 오전이니까 가서 찾아도 되지 않을까?'. 어이없는 눈초리로 쳐다보는데 뭔가 잘못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거기 대통령 선거가 있어서 그 결과에 따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 생각처럼 그렇게 안전한 곳은 아니에요'. H는 그가 다니는 회사에서 서남아시아 비즈니스를 담당하고 있던 터라 그쪽 지역을 잘 알고 있는 친구다. '누나가 괜찮다면, 카트만두에 있는 친구를 통해서 대신 숙소를 잡아 드릴게요. 일단 하루라도 예약을 하고 움직이는 게 안전할 것 같아요'. 

배낭을  하나는 짊어지고 하나는 들고 옆에는 카메라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족히 23kg쯤 되는 무게다. 그리고 마침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출근시간이라 택시도 안 잡히고, 아직 집 앞인데 비행기 이륙시간 1시간 20분 전. 겨우 공항 도착해 체크인 수속 밟고 커피 한잔 마시려니 라스트콜에 내 이름이....... 집 나가면 고생이라더니 첫출발부터 예사롭지 않다. 쉬는 건 비행기 안에서 하기로 한다.


' 생각처럼 된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어린 날에는 생각지 못한 변수들로 계획했던 일들에 영향을 받는 것이

못마땅하고 이해할 수 없는 화가 날만한 일들이었으나

여행을 다니면서, 세상과 싸워 오면서 삶을 대하는 방식이 많이 바뀌었다.

생각처럼 되는 일이 그저 감사하고 경이로울 뿐이다.

그런 변수들을 기꺼이 즐길 수 있다는 게 삶의 재미가 아닐까 싶을 만큼...

어느 순간부터 위기는 늘 내게 더 큰 기회를 가져다주곤 했다.

그다음을 준비하게 했고, 더 많은 길을 찾게 했으며, 더 큰 곳으로 가게 만들어 줬다.

몸이 멀쩡해서 돌아다니는데 불편함이 없는 것에 감사하고

마주쳐지는 어려움들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체력, 정신력, 지혜에 늘 감사하다.

무엇보다 감사한 건, 그저 내가 갈 길을 계획했을 뿐인데 아무 조건 없이 격려해 주는 사람들이다. 

그들에 힘입어 그저 내가 가야 할 길을 무사히 잘 통과할 수 있을 것 같다. 

- 카트만두 가는 비행기 안에서 - '


비행기 아래로 보이는 산자락이 심상치 않다. 비행기 고도가 그리 낮지 않을 터인데 우람한 산자락이 이렇게 가깝게 보이다니...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히말라야 산맥인가?



#세계여행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배낭여행 #트래킹 #바람내음

http://resttime.blog.me


'삶이란 오르고 내리는 히말라야 같은 것이다 by 바람내음'
연재를 보실 분은 제 Brunch 를 '구독' 신청해 주세요.
https://brunch.co.kr/@resttime

매거진의 이전글 1.맙소사! 마흔 넘어 다시 배낭여행이라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