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생의 재수 라이프 3
재수생의 스무 살과 3월
1. 스무 살
혹자는 말했다.
‘스무 살. 그 자체만으로 얼마나 싱그러운가!’
나는 말했다.
‘저건 뭔 x소리인가요?’
‘스무 살’이란 단어가 함의하고 있는, 찬란하고 풋풋한 이미지. 우리나라에만 깊숙하게 박혀있는 하나의 프레임으로 느껴졌다. 오죽하면 ‘스무살’이라는 가명을 쓰는 가수까지 나왔을까.
이 이미지는 대학 신입생들에게만 해당됐다. 어여쁜 옷을 입고 화려하게 자기를 치장한,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한 미소를 품고 있는.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남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는 추리닝을 입고 기본적인 피부 관리만 하는, 그리고 누가 봐도 암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게 나의 스무 살이었다.
지금도 입에 달고 산다.
“저한테 스무 살은 없는 기억인데요?”
2. 재수생의 3월
분명 선행반이 끝났을 때 재수생의 정신이 다 잡혔다고 생각했다. 정규반에 들어오고 봄의 향기가 피어나는 3월이 되자 헛바람이 들기 시작했다. 또다시 자괴감에 휩싸였다. 60명이 한 공간에서 재수생 특유의 아우라를 뿜어내는 것도, 위와 같은 감정에 한몫을 더했다.
이제 진짜 재수생활이 시작됐다. 60명의 사람이 있는 만큼 다양한 사람이 있었다. 최상위권 반이라 그런지 스펙도 화려했다. 특목고 및 명문고 출신, 서울대 가려고 좋은 대학 버리고 온 학생들 등등. 사실 부럽지는 않았다. 어차피 나랑 같은 재수생 신분이니까.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우리 반만 한정해 60명이었지 전체 인원은 500명 정도 됐다. 문과만 해당되니 이과까지 합치면 1,000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재수를 하기 위해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있었다.
처음에는 낯설고도 우울한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담임선생은 너네는 인생의 패배자가 아니라는 등의 온갖 미사여구가 가득한 멘트로 우리들의 텐션을 올려주려 노력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도움이 1도 안 됐다. 열등감만이 존재하고 있었기에.
이때는 공부하기에 최적의 시간이었다. 애들도 서로 안 친해서 떠들지도 않고, 나는 재수학원의 시스템에 적응되어 있었기에 공부만 할 수 있었다. 물론 저 감정은 현실을 직시해주는 역할을 하여 ‘재수생=공부만 하는 사람’이라는 공식을 공고히 다져줬기에 공부에 방해가 되진 않았다. 앞으로 이런 분위기만 지속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만
세상이 돌아가면 재수를 하지 않았겠지.
이 분위기는 한 달 후인 4월부터 급속도로 깨지기 시작한다.
http://m.podbbang.com/ch/16473
본격대학전공리뷰 팟캐스트
'전공투어'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수험생분들이
성적에 맞춰 대학을 가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분들이 자신에게 맞는
전공이 무엇인지
알았으면 하는 바람에 기획을 한 방송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