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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May 21. 2020

제주도에 사는 친구가 생겼다.

손안에 쥔 것을 놓아버릴 수 있는 용기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아이의 유치원 가방에서 나온 쪽지로부터였다. 첫째 봄이는 둘째 별이의 발달지연 판정 이후로 정서적으로 많이 불안정한 시기를 보냈다. 엄마는 동생의 치료로 매일 바쁘게 다니고, 6세였던 봄이는 외할머니와 함께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꼭 별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봄이는 불안이 높은 기질을 타고났다. 다른 아이보다 유난히 예민했고, 평소에 하던 것과 다른 것을 겪으면 견디지 못했다. 눈물도 많고 속 얘기를 잘 꺼내지도 않았다. 그래서 봄이는 유치원에서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유치원 담임 선생님은 울기만 하고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봄이에게 놀이치료를 권하셨다.
   
 봄이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었다. 혼자 힘으로 말이다. 선이는 봄이보다 조금 더 활달했다. 연극의 주인공을 맡을 정도로 적극적인 면도 있었고, 봄이에게 사이좋게 지내자는 편지도 써서 줄만큼 관계를 주도하는 듯했다. 유치원 엄마들과 거의 교류가 없었던 나는 봄이에게 선이의 이야기를 전해 들을 때마다 한 번쯤 함께 밖에서 만나도 좋겠다는 생각만 막연히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그녀가 쪽지를 보냈다. 선이의 엄마는 얌전한 글씨체로, 선이가 봄이와 꼭 놀고 싶어 한다고, 한 번 자기네 집에 놀러 오면 어떻겠냐고 물으며 연락처를 적은 쪽지를 보냈다. 나는 당장 그러겠노라고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얼마 후 나와 봄이는 처음으로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선이와 엄마는 반가이 맞아주었다.
   
 회사 생활을 하다가 1년 휴직을 시작했다는 그녀는 활달하고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나와 같은 법학도 출신이었고, 아이는 공부보다는 흙밭에서 뛰어놀아야 한다는 나의 기본적인 가치관과도 통하는 면이 있었다.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육아에 대한 고민도 비슷했다. 마음은 바깥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하고 싶지만, 나는 둘째의 치료 때문에, 그녀는 바쁜 대기업 회사 생활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늘 엄마를 그리워했다. 게다가 그녀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회사에서도 사내 방송에 관한 일을 맡느라 늘 글을 썼고, 휴직 중에도 글쓰기 수업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아직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의 나는 그녀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우리는 종종 아이들과 함께 만났다.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은 더 이상 엄마를 찾지 않고 저희들끼리 잘 놀았고, 우리는 우리만의 수다를 떠느라 바빴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책을 출간하여 정말로 작가가 되었고, 나도 그녀의 강력한 추천으로 글쓰기 수업에 등록했다. 아이에 대한 이야기, 글에 대한 이야기, 책에 대한 이야기, 남편에 대한 이야기. 우리의 화제는 무궁무진했다.
  



 두 아이를 같은 초등학교에 진학시키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둘은 각각 다른 사립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알고 보니 선이도 별이만큼 친구를 사귀는 게 어렵다고 했다. 내가 처음 보았던 적극적인 면은, 봄이와 선이의 성향이 비슷했기에 보였던 것이었다. 아이들은 낯선 교실에 가서 혼자 고군분투했다. 우리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겪은 여러 가지 힘든 일을 공유하며 서로를 격려했다. 봄이도, 선이도 조금씩 성장해가는 게 느껴졌지만 새 학기가 될 때마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엄마들은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한밤중에 이불속에서 훌쩍이며 학교에 가기 싫다는 말이라도 하는 날이면 마음이 철렁해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녀는 1년의 휴직을 마치고 다시 복직했다. 휴직 중 제주도에 가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왔었는데, 그곳에서의 밝았던 선이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고 했다. 늘 퇴직을 두고 고민해왔지만, 결국 그녀의 결론은 회사였다. 아이들은 어느새 더 자라 있었고, 전해 듣기로는 그녀도 회사에서 자리 잡아가는 것 같았다. 나도 봄이의 학원이 늘어나며 역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3학년이 되었다.
   
 지난 겨울, 그녀는 다시 열심히 글을 쓰고 싶다며 내가 온라인으로 참여하고 있는 매일 글쓰기 모임에도 동참했었다. 글을 통해 엿보는 그녀의 삶은 숨차 보였다. 그러다가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사상 초유의 학교 휴업이 시작되자 맞벌이인 선이네 집은 아마도 정신이 하나도 없을 듯했다. 바이러스 때문에 서로 얼굴을 보기도 힘들었다. 그나마 3학년이 되면서 아이들에게는 각자의 전화기가 생겨서 이제는 엄마들의 도움 없이도 메시지도 주고받고, 전화통화도 했는데, 며칠 전 선이가 봄이에게 보고 싶다는 문자를 남겼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걱정하던 와중에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결국 그녀는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도로 이사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동안 주변을 정리하느라 제대로 이야기할 여유도 없었다고 한다. 이사 날짜는 다음 달 말이라고, 그전에 선이가 봄이를 꼭 보고 싶어 한다고 만나자고 했다. 그녀도 나를 보고 싶다고. 나도 그녀가 보고 싶었다. 봄이에게 이 소식을 전하니 많이 실망하는 눈치였다. 제주도는 먼 곳이었다.
“그래서 언제 돌아온대?”
라고 봄이는 물었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실망하는 봄이에게 말해 주었다.
“이제 너에게는 제주도에 사는 친구가 생기는 거야.”
“응? 그런 건가?”
“선이가 제주도로 간다고 해도 엄마랑 선이 엄마도 친구잖아. 계속 연락할 거야. 가끔 제주도 가면 얼굴도 볼 거고. 너희도 통화할 수 있잖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봄이는 조금 마음을 추스르는 듯했다. 아직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봄이에게는 선이 만큼 오로지 자신만을 좋아해 주는 친구가 흔치 않았다. 누가 뭐래도 둘은 단짝이었다. 아마 며칠 뒤 선이를 만나고,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는 많이 서운해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십분 거리에 살던 그녀가 저 멀리 제주도로 이사간다고 하니 허전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그녀의 결단이 부럽기도 했다. 늘 사람에 치이고, 해야 할 공부에 치이는 봄이가 안쓰러웠다. 이제 겨우 열 살인 봄이는 영어학원, 수학학원, 피아노, 태권도에 수영까지 배우고 있었다. 학업에 욕심이 많은 봄이는 친구들보다 뒤처지기 싫어했다. 하지만 가뜩이나 사립학교라 수업도 매일 늦게 끝나는 데다가, 각 학원에 다녀오고 숙제까지 하고 나면 밤 11시가 되기 일쑤였다. 지난 학기는 그렇게 매일 바쁘게 보냈었다. 올해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유행으로 인해 학교와 학원이 휴업을 하면서 봄이는 아무 곳도 가지 않고 쉴 수 있었다. 집에서 실컷 늦잠을 자고, 학원 숙제를 할 일도 없는 몇 주간 봄이는 참 행복해 보였다.

 온라인 개학이 시작되고, 학원들이 다시 하나 둘 문을 열기 시작하자 솔직히 나는 겁이 났다. 푹 쉬던 봄이가 다시 바쁜 스케줄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 무엇보다도,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봄이를 위하는 길인지. 몹시 혼란스러웠다. 별이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재활치료센터에 바쁘게 다니는 별이를 보며, 다 그만두고 제주도처럼 한적한 곳으로 가서 자연 속에 아이를 뛰어놀게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 도시에 붙잡아 매고 있는지. 학원과 치료센터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지. 이번 휴업기간 동안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선이의 제주도 이사 소식은 누군가 뒤통수를 쿵 때린 것 같이 나를 멍하게 했다. 선이도 봄이만큼 바쁘게 살던 아이였다. 모든 것을 서울에 남겨두고 비행기를 탈 결심을 한 그녀가 역시 부러웠다.
   

 늘 발목을 잡고 있는 현실의 문제들. 어느 순간 머리를 비우고 우선순위를 새롭게 짤 수 있다면, 지금처럼 숨 가쁘게 살아가는 것을 그만할 수 있을까. 지나고 나면 나는 이 시간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그녀의 메시지를 받은 이후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결국 나는 그녀 같은 용기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내가 짠 톱니바퀴 속에서 버둥대는 내 모습을 한 발짝 떨어져 조금이라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향후 나와 아이들의 삶을 계획하는 데 있어 오늘의 그녀의 결단은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며칠 있으면 선이를 만날 것이다. 그녀도 만날 것이다. 제주도에 가면, 바다를 바라보며 편안한 마음으로 그녀가 더 좋은 글을 써주리라 믿는다. 글을 쓰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서울에 사는 친구도 좋지만, 제주도에 사는 친구도 좋다. 그곳의 파도 소리와 바다 내음을 글을 통해 전달해 준다면, 미세먼지로 가득한 서울에서의 답답한 일상에 큰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쉬운 마음은 꼭꼭 접어두고, 그녀의 용기를 응원해 주어야겠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격려일 것이다. 잘한 선택일 거라고. 뒤돌아보지 말고 걸어가라고. 그녀를 만나면 꼭 얘기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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